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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sanasu Apr 08. 2024

평화로운 여름 바다

2023.7.20


2023.7.20 대천해수욕장


산과 바다, 어느 쪽을 선호하나요?

이런 질문의 목적은 질문 자체에 있다. 어느 한쪽을 끔찍하게 싫어하는 게 아니라면 산에 가기 좋을 때와 바다에 가기 좋을 때가 번갈아 찾아온다는 걸 안다. 그것이 궁금하다기보다는 그냥 그 사람이 궁금한 것이다. 그 질문에 어떤 식으로 대답하는지, 고민을 할 때 어떤 표정을 짓는지, 확답을 할 때 얼마나 단호한지. 질문은 수단이고 진짜 목적은 당신이다.


그렇다고 동등한 크기로 둘 다를 좋아할 수는 없다. 나는 사람들이 왜 산에 오르는지 몰랐었다. 지금은 그 이유를 점차 알게 되었지만 등산에 하루를 할애할 의향은 전혀 없다. 나에겐 언제나 바다가 옳다고 생각한다. 더운 여름의 태양 아래 해변에서 흘리는 땀은 불쾌하지 않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가 더위와 땀을 물러가게 한다. 자유롭고 평화로운, 딴 세상 같은 이 세상의 한 조각이 바다다.


사진 속 해변에 초록색 텐트가 보인다. 슬리퍼 하나가 밖에 놓여 있는데 주인이 텐트 안에 있는지 밖에 나갔는지 알 수 없다. 안에 사람이 있다면 텐트의 출입구를 열기만 하면 광활한 바다가 시야에 꽉 찰 것이다. 물 위에 반짝이는 윤슬이 눈을 가늘게 만들겠지만 감아버리지 않도록 애쓸 것이다. 그야말로 평화로운 광경이 아닐 수 없다. 그대로 시간이 멈춰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시간이 흘러가는 바다를 하나하나 느끼고 있을 것이다.






사진은 작년 여름 대천해수욕장의 모습이다. 텐트 안에서 수영복을 갈아입고 그 안에 가방과 카메라를 놔두고 출입구를 닫았다. 그리고는 바닷속에서 한참을 파도를 즐겼다. 튜브 위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는 그 시간이 가장 좋았다. 아주 딴 세상이다. 아주아주 다른 세상이다. 내가 있었던 그 세계와 며칠 뒤면 다시 돌아갈 그 세상과는 딴판이었다. 자유와 흐릿한 걱정, 평화와 비릿한 짜증이 공존한다. 그 시간이 너무 좋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기만을 바란다.


바다 위에서 각종 몽상에 잠겨 있다가 뭔가 이상한 기분에 텐트 쪽을 쳐다보니 초록색 텐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바닷물의 경계가 모래사장 안쪽으로 많이 들어가 있었다. 이윽고 바다 위에 쓰레기처럼 쓰러진 채 둥둥 떠있는 나의 텐트를 발견했다. 순간 태양빛을 정면으로 응시한 듯 정신이 하얘진다. 카메라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시체와도 같은 텐트를 겨우겨우 모래 위로 끌어왔다. 드디어 안을 들여다봐야 하는 시간. 암 환자의 배를 열 때 의사들이 이런 기분이 들까 생각했다. 문을 열어보니, 예상보다 처참하진 않았다. 텐트 바닥의 방수력 때문에 아무것도 젖지 않았다. 천만다행이었다.


카메라를 살렸다는 안도감은 잠시였고 이내 분노가 치밀었다. 텐트가 떠내려 갈 동안 아무도 보지 못했단 말인가. 해변에 앉거나 누워있던 사람들은 물의 접근에 따라 뒤쪽으로 이동했을 것이고 나의 텐트를 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근접에서 대기 중이었던 안전요원들. 사람이 아니라 구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을까. 텐트를 수습할 때도 핸드폰만 바라보고 있던 그들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평화로운 마음은 일순간에 깨지고 말았다.


그러나 모든 건 나의 불찰이었다. 바닷물이 그렇게 빨리 불어난다는 각성지니고 있지 못했다. 다음에 바다를 갈 때는 평화로움이 손상되지 않도록 뒤늦게나마 몸으로 한 가지를 배운 셈이다. 또한 다른 이를 도와주려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매정한 현실도 배웠다. 안다는 것이 때로는 바닷물보다도 짭짤하다. 침을 뱉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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