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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sanasu Apr 29. 2024

그냥 이렇게 지겠구나 할 때쯤

2024.4.28 vs. 경남 @수원월드컵경기장


4월의 성적들이 너무 좋았기에 4월의 마지막 경기는 별 긴장감도 없이, 당연히 이길 것이라는 다소의 자만심을 품게 되었다. 때마침 축구를 즐기기에도 승리를 누리기에도 너무 좋은 날씨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었다.


박대원의 짧은 머리가 보인다. 최근 들어 경기력이 눈에 띌 만큼 좋아졌는데 입대를 하게 돼서 몹시 아쉽다. 수원에서의 마지막 경기를 승리하고 다음날 입소하기를 바랐다. 골이라도 넣는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전반전에 기회는 쏠쏠하게 있었지만 골문을 빗나가거나 골키퍼 정면이었다. 골문 밖에서 저돌적이던 선수들이 골키퍼만 맞닥뜨리면 자신감을 폭삭 잃는 것만 같다. 김주찬과 툰가라의 단점은 그들이 가진 장점을 못 살리는 게 아니라 그 장점을 중단할 판단을 못 한다는 것이다. 모든 수비수를 드리블로 제칠 수는 없다. 적당한 시점에 슛이든 패스든 결단을 해야 한다.


카즈키의 프리킥이 아쉬웠는데 이 골이 들어갔다면 경기가 매우 쉽게 풀렸을 것이다. 카즈키 개인적인 측면으로도 골맛을 느껴야 할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축구선수에게 골은 직장인들에게 가끔씩 생기는 보너스와 같지 않을까. 그다음 날을 더 열심히 잘 달리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전반전은 그렇게 어느 누구의 성과물도 보지 못한 채 끝나버렸다.



후반전에도 수원이 우세한 분위기를 이어갔으나 결정적인 순간은 늘 피해갔고 경남의 역습은 매서웠다. 그러다가 결국 실점을 했다. 정상적인 슈팅은 아니었고 수원 수비수에 맞은 공이 다시 경남 공격수의 발을 맞고 골문으로 들어갔다. 양형모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골 문까지 만들어진 경남의 역습 플레이를 칭찬할 수밖에 없었다. (골을 넣고 흘러나온 공을 관중석으로 걷어차는 바람에 관중이 다쳤다는 얘기를 들었다. 골을 넣은 기쁨으로 잠시 흥분했겠지만 위험한 행동이었다)


오래간만에 투입된 이기제는 여전히 인상적이었다. 골문 앞에서 공을 안착시킨 트래핑이 일품이었다. 그러나 그의 위협적인 크로스는 경남 수비수가 아닌 리치에게 막혔다. 이후에도 리치는 잦은 실수와 소극적인 플레이로 관중들의 욕을 많이 들어야 했다. 그의 신체조건에 기대하는 역할을 제대로 행해주지 못하고 있어 답답했다.


경남의 골문 바로 앞에 참 여러 번의 결정적 찬스가 있었다. 골대를 맞거나 고스란히 골키퍼의 손으로 전달되는 공을 보면서 오늘의 게임은 이런 식으로 끝날 거라는 예감을 받았다. 추가시간 7분이 주어졌으나 시간은 매우 빠르게 흘러갔고 경남의 역습이 골로 이어지지 않은 것에 오히려 안도해야 했다.


추가시간이 거의 다 소진되었을 무렵 박대원의 발끝에서 출발한 공이 이 경기의 마지막 공격이 될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중간에 수비수에 걸린다면 그대로 경기가 끝나는 시간이었다. 수원의 오른쪽 수비수가 중앙 쪽으로 공을 길게 넘겼고 김현이 그 공을 기어코 머리에 맞추었다. 패스라고 하기엔 다소 길다 싶었는데 뮬리치가 그 공을 쫓아갔고 논스톱이 아니면 슈팅의 기회가 없을 거라고 숨죽이던 순간 뮬리치의 오른발이 공을 갈겼다. 골문 쪽 구석에 꽂히는 극장골이 터졌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속에 있던 모든 것을 토해내는 순간이었다. 경기는 끝났다.


경기는 비겼지만 감정적인 승리는 수원이 가져갔다. 결과가 확정되기 전까지 형성된 기대감이 그 결과의 질을 결정한다. 경남과 수원의 골의 순서가 뒤바뀌었다면 어땠을지 상상해 보면 끔찍하다. 그나저나 최근 수원의 극장골이 많아졌다. 집중력이 살아있음을 보여주고 극적인 상황을 연출해 줘서 고맙긴 한데 늘 불안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계획된 극장골이 아니라면 80분 정도에는 승리를 확신해도 되는 경기를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가끔씩 맛보는 극장골은 샐러리맨의 인센티브보다도 짜릿한 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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