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만만해 보이는 거리 때문에 원정 직관을 결심한 것 같다. 스포츠 덕분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지역에 가보게 된다. 목적지가 있는 출발이다. 그리고 낯선 장소를 향한 호기심이 있다. 그것으로도 여행인데 어떤 형태의 사건들이 일어날지 알 수 없기에 스포츠 여행은 매력적인 여정이다.
2부 리그에서 수원의 원정 경기는 홈팀의 관계자들을 긴장하게 만들고 있다. 팀 창단 이후 경험해보지 못한 규모의 원정팬들이 몰려오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구장을 가득 매운 원정팬들을 보기 위한 홈팬들까지 가세되어 관중수 기록을 깨뜨리기 일쑤다. 경기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그들을 수용할 좌석을 확보해야 하고 화장실과 매점등의 편의시설이 충분한지 점검해야 한다.
경기장에 입장 후 매점의 운영 방식을 보고 참 많은 준비를 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음식을 구입하는 속도는 빅버드보다도 빨랐다. 신속함과 친절함을 보여주는 점원들은 수원의 유니폼까지 입어주는 센스까지 갖추고 계셨다. 혹시 모를 사고를 위한 보안요원들도 여러 군데 배치되어 있었다. 피치 위의 극적인 사건 외에는 어떤 사고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여러 가지 시뮬레이션을 통해 이 하루를 대비해 온 사람들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원정석은 자유석이라 마음에 드는 자리에 앉기 위해 세 시간 전에 들어갔다. 무지 덥고 습했다. 경기가 시작되자 덥고 습함은 더 심해졌다. 수원의 공격은 자주 끊겼고, 천안의 선수들은 개인기와 스피드가 탄탄하여 위협적인 기회를 자주 만들어냈다. 무엇보다 뮬리치가 골을 못 넣는다. 골대도 맞힌다. 세 골 정도는 넣을 수 있던 찬스들이 지나고 나니 전반 종료 직전 천안에게 골을 먹혔다.
날씨가 덥고 습하고 이 많은 원정팬들이 찾아줬다는 사실은 하나의 상황일 뿐 게임의 결과는 그것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냥 이렇게 지겠구나 싶었다. 후반전에는 젊은 선수들이 투입되었다. 박승수가 보이니 동점골은 나오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왼쪽에서 수비수를 괴롭히던 박승수가 순간적으로 스피드를 내니 크로스 찬스가 생겼다. 짧고 낮은 패스가 들어갔고 수원 데뷔전을 치르는 이규동이 센스 있게 찔러 넣었다. 동점골 성공. 5천 명의 관중이 천안을 들썩이게 했다.
박승수와 이규동이 세리모니를 하는 동안 김상준이 공을 안고 뛰어나왔고 아이들에게 세리모니 마무리를 재촉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역전승의 그림이 있었기 때문일 테다. 기세가 넘어왔다. 박승수의 움직임은 더욱 빨라졌고 왠지 역전골이 터질 것 같은 예감이 피어올랐다. 이윽고, 머릿속에 역전승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김상준의 결승골이 터졌다. 천안이 다시 5천 명의 함성으로 균열을 만들어냈다.
경기가 끝났다. 1:2 역전승. 그런 결과로 경기가 마무리되니 덥고 습한 날씨와 뮬리치의 거듭된 실패마저 승리를 직조하는 데 필요한 과정처럼 느껴졌다. 여기서도 저기서도 온 수많은 사람들이 선수들과 함께 발을 동동 구르며 기뻐했다. 굳이 기뻐하는 율동을 하지 않아도 기뻐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다. 짜릿한 사건에 의한 치명적인 쾌감. 이게 스포츠 여행을 떠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