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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절대신비 Oct 05. 2024

존재는 너와 나 사이에서 꽃처럼

절대 접점의 법칙 1


존재란 '나' 혹은 '너'가 아니다.

너와 내가 연결되었을 때

그 사이에서 꽃처럼 피어날 뿐

'나'라는 존재는 단지 '나'가 아니라 '너'와의 접점


세계와 연결되지 않은 '나'는 아직 존재가 아니다.

전체와 맞닥뜨리지 않은 '나'는 부분이자

나사 하나일 뿐.


연결되지 않았다는 것은 결정되지 않았다는 것.

결정된 것은 아직 아무것도 없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상자 뚜껑 열 때 결정된다.


세계와 연결되지 않았다면

전체와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짐승인지 인간인지 아직 결정되지 않은 것


그렇다면 언제 결정되는가?

짐승 짓 하는 순간 짐승으로 결정 나고

인간 행세 하는 순간 비로소 인간으로 결판난다.

나쁜 것도 좋은 것도 결정지어지지 않았다

좋은 놈과 나쁜 놈은 따로 있지 않다.


나쁜 짓 하는 순간에,

그 접점에 나쁜 놈 되는 것이다.

좋은 놈도 마찬가지.

유효기간은 오로지 순간이다.

한 번 인간 탈 썼다고 끝까지 인간인 것은 아니다.

진리에 철밥통이란 없다.


세계 모든 것은 변한다는

변하지 않는 법칙이 이 우주에는 있지 않은가? 

우주 제1 관문 엔트로피 증가 법칙 말이다.

배우가 배우인 것이 아니라

무대와 배우가 만나는 접점이 배우다.

글과 작가가 만나는 접점이 작가고

방아쇠와 누군가의 손가락이 만나는 접점이 스나이퍼다.


마동석이 좀비나 악의 무리 물리칠 때

그 타격점에서 비로소 마동석 주인공 탄생한다.

한 나라의 영토와 개인 간의 접점이 국민이라면

민주주의 혹은 독재세력과 세차게 만나는 접점이

시민이다.


주인공 배역과 혼연일체로 만나는 자가 주인공이고

구름에 달 가듯 스쳐 지나가는 자가

'있는지 없는지 모호한' 엑스트라다.

눈치 보며 슬슬 피해 가는 자들,

점잖은 척 입 꾹 다문 자들,

공정한 척 중간지대에 숨어드는 자들,

비겁자, 구경꾼, 방관자들은 그러므로

그 순간 비존재.


다시 구름 뚫고 나타나면

세계와 연결되면


존재다.


 



이는 최첨단 물리학이자 고도의 철학. 내 온 생 응축시켜 한 점에 구겨 넣은 것이다. 이른바 절대 접점의 법칙.


이 접점 이론은 결정론 혹은 이분법 타파하며 양자역학 세계관으로 다이렉트로 진입한다. 아니 실은 나의 접점 철학이 양자역학과 한 점에서 만나 접점 이룬 것이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 상자 안에 고양이와 독성물질을 같이 넣어놓고 하는 방사선 감지 사고 실험을 말한다. 방사선을 감지하면 병이 깨져 독성물질이 흘러나오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상자를 열기 전에는 고양이가 살아있는 상태와 죽어있는 상태로 공존(양자중첩)하고 있다. 즉 '양자 중첩' 상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뚜껑 열기 전에는 모른다는 설명인데 이 실험은 원래 양자 역학의 불완전한 면을 비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시간이 지나자 양자 역학을 묘사하는 가장 대표적인 사고 실험이 되어버렸지만. '고양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상자뚜껑 열 때 결정된다'가 더 정확한 철학적 물리학적 워딩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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