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형당한 시인에 대한 애도
어떤 글을 쓸 것인가?
좋은 글은 좋은 글이 아니다.
희망 주는 글은
희망 주는 글이 아니다.
긍정만을 말하는 글은 사실
긍정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눈 가리고 귀 막으며
내 입에 달콤한 말 해주는 것
사탕 하나 물려주는 것
거기에는 오로지 갑을 관계 있을 뿐이다.
독자의 갑질에 순응하는
작가 아닌 작가 있을 뿐이다.
팔려 나가려는 몸짓 있을 뿐이다.
그것은 독자에게 아부하는 것
간신배 사이의 왕과 같이
작가에게 길들여지는
독자의 권력이 있을 뿐이다.
지금 우리의 인문학은 어떤가?
내 입에 달콤한 것을 넣어봐, 외치는 독자와
자신을 헐값에 팔아넘기는 작가의
허가된 난전은 아닌가?
저기서 을이 작가가 아니라
독재자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살기 바쁘니 대충 물려주는 사탕이나 빨며
어리석은 백성이 될 것인가?
아니라면 주권 있는
능동적 의미의
깨어있는 시민이 될 것인가?
달짝지근 희망만을 말하는 건
신흥종교의 교주 되는 것
희망으로 장사하는 것
위로로써 고문하는 것
그것은 차라리 독재자의 구호
과거를 지우고 미래를 미끼로
현재를 집어삼키는 것
철학도 과학도 아니다.
문학도 종교도 아니다.
비전도 영감도 주지 않는
독자의 눈멀게 하는 가짜다.
왜냐고?
독재자를 죽여 보지 않은 자가
봄날을 노래하는 것은 반역이므로
세상 후미진 곳
그 서러운 냄새 맡아보지 않은 자가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은 거짓이므로
오로지 사익에 목숨 걸었던 자가
떨치고 일어서 정의 부르짖는 것은 허무이므로
부정 통과하지 않은 긍정은
출발한 적 없는 순례
태어나지 않은 일생
사지 않은 차표
겁쟁이의 상상이므로
생각하자.
기어이 잠든 이 깨어나게 하는
역설이라야 진짜다.
역설 거치지 않은 모든 긍정은
허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