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교사를 꿈꿨다. 그래서 첫 발령을 앞두고 이왕이면 험지로 발령이 나기를 감히 기도했었다. 기도는 통했고(꼭 그런 기도는 잘도 통하더라..) 나는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달동네 학교로 발령이 났다. 서울서 일하는 딸내미 학교에 한 번 와보고 싶으시다던 부모님이 시골서 올라와 나의 근무지를 방문하고 말씀하셨다.
"서울 학교가 어째 시골보다 더 후지냐."
나는 발령 첫해에 교내 교사가 아무도 지원하지 않은 학년, 그러니까 6학년에 배정되었다. 우리 학년은 나와 같이 신규교사이거나 아니면 올해 다른 학교에서 전근 온 전입교사로 구성되었다. 기존 교사는 아무도 우리 학년에 없다. 이 말인즉슨, 올해 6학년은 모두가 매우 비선호하는 골칫덩어리 학년이라는 뜻이다.
뭣도 모르는 나는 그 6학년을 처음 만난 날 아이들 앞에서 이야기했다. 너희들을 사랑하겠다고, 너희들을 사랑하기 위해서 내가 교사가 되었다고. 내 말을 듣고 피식거리는 몇몇 아이들의 표정을 보면서 기쁨인가 비웃음인가 잠시 헷갈렸다. 하지만 이내 그 피식거림의 의미를 알게 되었으니. 그날 수업 후 다 함께 청소를 했는데 청소를 마치고 나니 5명이 자리에 없었다. 5명이 청소 중간에 집에 가버린 것이다. 5명이나. 그것도 첫날에.
나는 충격을 받았다. 첫날부터 교실은 위태로웠다. 붕괴된 교실에서 사랑이 피어날 리 만무하다. 참교사건 뭐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나는 일단 교실을 장악해야 했다. 교대(*교육대학교)에서 배웠던 것들 중에 지금 이 상황에 적용할만한 것은 1도 없다. 교대 4년간 배워온 전과목 교육과정과 교육학개론, 교육철학, 교육심리, 교육행정 같은 것들이 지금 이 상황에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출처 : adobe stock)
폭풍 같은 첫날 이후 집에서 혼자 뜨거운 눈물 몇 방울을 흘리고 나서 나는 모드를 바꿨다. '친절모드'에서 이른바 '생존모드'로. 나의 강점이 무엇이더냐. 나는 시골에서 자라서 생존력이 강하다. 최근 유행하던 드라마 [소년시대]에 비유하자면 나는 '강원도 흑거미'쯤 될 것이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체육부장을, 고3 때는 전교 선도부장도 했던 내가 아니더냐. 이대로 교실이 무너질 바에야 본래 내 모드로 교실을 바로 잡으리.
동학년(*같은 학년을 이르는 말) 선생님들이 말씀해 주셨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군은 아이들이 거칠어서 고학년이 어렵고, 경제적으로 괜찮은 학군은 학부모 민원이 많아서 저학년이 어렵다고. 만약 네가 이 학교에서 고학년 학급운영에 성공한다면 이제 웬만한 고학년은 다 다룰 수 있다는 뜻이라고.
첫날 아이들 앞에서 너희들과 잊지 못할 1년을 만들고 싶다고 선언했는데, 말 그대로였다. 나에겐 정말로 잊을 수 없는 1년이었다. 우리 반의 실상은 이랬다. 우리 반의 거의 절반이 교육복지 대상자였다.(국가에서는 기초수급자, 차상위계층 등 저소득층 가정을 교육복지 아동으로 분류해 방과후수업을 무료로 듣는다든가하는 여러 복지혜택을 준다.) 그리고 1/3은 학습부진아였다. 학년으로는 6학년인데 알파벳은 고사하고 기초적인 곱셈, 나눗셈도 할 줄 모르는 아이들이 허다했다. 경제적으로도 어렵고, 정서적으로도 방치된 아이들이 많은 동네였다.
아침에 출근을 하면 여기저기 골목에서 등교하는 아이들이 튀어나와 인사를 한다. 인기척을 못 느꼈는데 어디서 왔냐고 물으니 자기 집은 반지하란다. 출근 길에 걷고 있으면 아이들이 반지하방에서 뿅뿅 튀어나온다. 우리반에는 그런 곳에 사는 아이들이 많다. 이 동네에서는 다 떠나서 일단 아파트에 살기만 하면 부르주아 행세가 가능하다. 그래서 첫날 내 소개를 할때 대뜸 선생님 집이 아파트인지 아닌지를 묻는 아이가 있었나 보다.
쌍욕은 기본에 담배 피우는 어린이들, 학폭에 연루된 어린이들, 가출하는 어린이들을 만났다. 그런 아이들의 겉모습은 여느 보통 아이들과 다를 것 하나 없다. 신규 선생님의 열정과 젊음을 갈아 넣어 혼신의 힘을 다한결과 아이들의 마음을 얻을 순 있었지만 아이들은 이내 본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후회의 눈물을 흘리며 담배를 끊었다가도 다시 담배를 피우는 어린이, 가출 후 집으로 돌아왔지만 끊임없이 가출의 충동을 느끼는 어린이, 정서적으로 완전히 방치된 가정에서 동생들을 돌보다 원형탈모가 온 어린이까지... 이 아이들에겐 스스로 감당해야 할 삶의 역동이 너무나 컸다.
(출처 : adobe stock)
가난에 찌든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대개 정서적으로 학대받거나 방임되는 경우가 많았다. 생업만으로도 지친 부모들은 아이들을 돌볼 여력이 없다. 적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학교에서 먹는 급식이 하루 중 가장 양질의 식사이기도 했다. 위에선 자꾸 학습부진아를 없애라고 성화지만 지금 이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건 공부 이상의 무엇일 테다. 어떤 아이들의 삶을 개인적으로 바라보자면 적지 않은 슬픔을 느낀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아이들을 대할 때는 아무렇지 않게 대하려고 노력한다. 아이가 자기를 보는 내 눈에 슬픔이 있음을 느끼면 아이는 교실 안에서마저 가정의 삶을 연장하게 되므로.
선생님은 어려운 직업이다. 이 직업은 열심히 해도 해도 끝이 없는 류의 직업이다. 교육의 성과를 무엇으로 나타낼 수 있겠는가. 사람의 잘됨을 어떤 지표로 나타낼 수 있겠는가. 아이 한 명이 마음을 치유하고 제대로 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다면 그건 아마도 우주전체의 기쁨쯤이겠지. 하지만 그런 기쁨은 어떤 지표에도 들어갈 수가 없다. 교육부에서 만든 데이터 어디에도 들어갈 데는 없지만, 사람이 사람답게 살게 해주는 것이 교육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여느 때보다 선생질하기가힘든 때임을 뉴스 기사들이 증명한다. 한 사람을 키우는데 온 동네가 필요하다는데 수십 명을 대하는 선생님은 오죽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