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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Feb 22. 2024

솔직한 그들이 몰려온다

* 등장하는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1

우리 반은 수업 시간과 쉬는 시간이 극명하게 다르다. 수업 시간에는 아름다운 자태로 수업에 참여하도록 독려하는 대신 쉬는 시간 확실히 풀어준다. 그래서 아마 재보진 않았지만 쉬는 시간 데시벨이 어마어마할 것이다. 오죽하면 옆반 선생님이 쉬는 시간에 우리 반에 잠깐 들렀다가 애들 떠드는 걸 보고는 선생님이 안계시구나 생각하고 돌아갔을까. 애들 틈바구니 속에 떡하니 있었는데. 하하하.


그런데 도기시장 같은 그 속에서 어느 날 나는 똑똑히 들었다. 9살짜리 재준이의 망언을.


"야, 너 입에서 방구 냄새나."


와. 면전에 대고 저런 말을 하다니. 요즘 어린이들 무섭다 무서워. 재준이 그렇게 안 봤는데 팩폭이 너무 심한 거 아냐? 재준이는 심지어 저 말을 뱉고 나서도 얼굴에 오만상을 짓고 있다. 진짜 뭔 냄새를 맡긴 맡았나. 대처할 새도 없이 짝꿍으로부터 순식간에 치욕을 당한 어린이는 우리 반 모범생 예나다. 예나는 대꾸도 안 하고 한 곳을 응시한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아는가? 예나는 기를 모으고 있다. 예나는 이제 곧 빵 터져서 교실이 떠나가라 꺼이꺼이 울고 말 것이다.


당장 재준이를 불렀다.


나 : 너 친구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입에서 방구 냄새가 난다니. 예나 얼굴 좀 봐. 울려고 하잖아.

재준 : 선생님! 진짜 냄새났어요!

나 : 아니, 아무리 냄새가 났어도 그렇지 그걸 그렇게 말하면 어떡해.

재준 : 아니, 사실은 예나 입에서 똥냄새 나는데 예나 울까봐 방구냄새라고 한 거란 말이에요!!


아... 재준아... 이게 네 나름의 배려였던 거니...

두 번만 배려했다가는 큰일 나겠는걸?

(출처 : adobe stock)


#2

내 지인의 경험담이다. 이 분이 어느 날은 교회 여름 성경학교에서 초등부 설교를 맡게 되셨단다. 주로 대학생을 대상으로 설교하시던 분이라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어떻게 설교해야 할지 주변의 교대생들에게 조언을 들어가며 열심히 준비를 하셨다. 각종 소품과 발표자료를 잔뜩 준비해서 강단에 섰는데, '여러분, 안녕~'을 말하기도 전에 한 아이가 외쳤다.


"와, 돼지다!"


그 순간 그분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얼음이 되어버렸다... 준비한 모든 것들이 머릿속에서 하얗게 증발해버리고 말았다. (분은 결코 뚱뚱하지 않다. 건장한 분이다.) 그런데 아이들의 이런 쨉을 그냥 그대로 두면 어떻게 되는지 아는가? 예상치 못한 아이의 말에 순간 머뭇머뭇거리고 있는데 이제 더 많은 아이들이 외친다.


"와, 돼지다~"

"돼지 선생님이다~"

"돼지래요~ 돼지래요~"


그날 어떻게 설교를 하고 왔는지 모르게 후다닥 강단을 내려왔다며 그분은 말씀하셨다. 다시는 다시는 초등부 설교는 안 할 거라고.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덧붙이셨다. 솔직히 좀 상처받았다고.


(출처 : adobe stock)




아이들은 솔직하다. 그 솔직함의 강도는 어린 학년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어린아이를 대할 때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으로 나긋나긋 대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 것 같다. 그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어린아이일수록 단호함과 친절함을 겸비해야 한다.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의 경계를 알려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 경계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어서 하나하나 경험하며 체득하는 수밖에 없다. 그 경계를 어른들의 말로 하자면 common sense(상식) 쯤이 될 것이다.


경계 안에 있을 때는 '아유, 이뻐~'를, 경계를 벗어나면 삐뽀삐뽀를 울려주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상식이 통하는 어린이'로 성장한다. 어린이들은 경계의 지점을 알려주는 어른에게 안정감을 느낀다. 이럴 땐 이러저러하면 된다는 어른의 코칭을 통해 아이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익힌다. 그리고 말이지, 아이들 특유의 솔직함과 태연함이 경계 안에서 발현되면? 것이 어른들이 애정해 마지않는 '동심'일 것이다.


우리 할머니 손은 쪼글쪼글한데 할머니 손으로 해주는 음식은 세계최고라는 어린이, 우리 아빠는 양치를 잘 안 하는데 아빠가 엄마한테 혼나기 때문에 같이 양치 안 한 자기는 덜 혼난다고 좋아하는 어린이, 통통한 친구를 두고 친구 볼때기가 말랑이(*쪼물쪼물 만지는 장난감) 같아서 좋다는 어린이. 이들은 매우 솔직하고 또  매우 사랑스럽다. 


그래서 교사로서 나의 모토

'친절하지만 단호한 선생님'이다.


(출처 : adobe 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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