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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뜰아이들 Feb 19. 2023

저기요, 듣고 있어요?

두리안 02. 마음을 들킬 수 있는 사람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했다. 나는 새와 쥐가 나오는 장면을 꽤 많이 봤다.


< 새 유형 >

자몽 씨는 한 걸음 한 걸음 찍어내리 듯 옥상 계단을 오른다. 옥상 문을 벌컥 열어젖히고 난간으로 성큼 뛰어간다. 그리고 이렇게 외친다.

"정말 재수 없어! 뒤로 넘어져서 확 코나 깨져 버려라!"

자몽 씨는 아직 분이 덜 풀렸는지 씩씩 거린다. 이때 뒤에서 '풉' 하는 소리가 들린다. 뒤를 돌아보면 때마침 구석에서 쉬고 있던(심하다 싶은 경우엔 옥상 맨 꼭대기에서 책으로 얼굴을 덮고 낮잠 자던) 키위 씨가 웃고 있다.


< 쥐 유형 >

자몽 씨는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집 근처 놀이터 그네에 앉아 발끝으로 바닥을 콩콩 찍는다.

"나도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고"   
"……내 얘기하는 거예요?"

자몽 씨가 화들짝 놀라 돌아보자, 키위 씨가 있다. 둘은 그네에 앉아 쭈쭈바를 먹으며 대화를 이어간다.
(이때 BGM이 흘러나오기 때문에, 둘의 입모양만 보일 뿐 구체적으로 어떤 얘기를 하는지는 알 수 없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데, 내 말은 누가 들어주나.

고층 아파트가 들어선 까닭일까. 요즘엔 쥐도 새도 찾아보기 힘들다.


혹은 쥐도 새도, 잘 참는 어른으로 변화한 걸 수도.

 

참는 게 미덕이라고 배웠다.

어떨 땐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냐" 같은 말들을 되뇌며, 잘 참는 어른으로 성장했다. 적어도 나는 똥이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 참는 어른들 사이에서 생활하다 보면,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봐도 잘 모르는 지경에 이른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조금씩 억울하고 조금씩 화나며 또 많이 참아내고 있었다. 학창 시절까지만 해도 내가 이해하려는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같이 떡볶이를 먹고 밤새 이야기하는 몇몇 친구들. '내 편'이라는 울타리를 만들어 매일매일 나무를 덧댔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삐죽, 울타리 밖으로 다른 사람들의 얼굴도 보이기 시작한 거다. 옥상에서 깊은 한숨을 내쉬는 사람이나, 모두 웃고 있는데 유독 혼자만 웃지 못하는 사람. 언젠가 내가 그러했듯 둥둥 떠다니는 사람.


잘 참는 어른들을 보면 괜히 "밥 먹었어요?" 물어보고 싶고, 정작 잘 참는 어른들을 보면 모르는 척한다.

 

잘 참는 어른들은 '모르는 척' 하는 데 능하다.

배려와 무관심 사이에 자리한, 이 '모르는 척'은 "그러려니" "다들 그렇지" "이런 건 실례지" 같은 말을 낳는다. 말없이 자리를 떠나는 경우도 많다. 다른 사람에게 그러려니, 하는 일이 많아질수록 스스로에게도 그러려니, 하고 만다. 모르는 척 눈감아주는 일에서 시작해 결국엔 다 아는 척 넘겨짚고 마는 것이다.   


"원래 그런 거고, 다들 그런 거야."   

이따금 울컥하고 '무언가' 치밀어 오른다.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처럼 외부에서 오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의외로 스스로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다. 어제와 별 다르지 않은 하루를 보낸다거나 만날 수 없는 사람이 보고 싶을 때, 그리고 생각만 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 대뜸 친구에게 연락해 밥 먹자, 술 먹자 불러냈다가 별말 없이 돌아온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한다. '원래 그런 거고, 다들 그런 거야.' '시시껄렁한 얘기야.' '그런데 이걸 일목요연하게 말할 수나 있어?'


모르는 척에 익숙해지면, 정작 어떤 얘기를 하고 싶은지 모른다. 아는 척에 익숙해지면, 내가 어떤 감정인지 잘 들여다보지 못한다. 나중에는 이런 생각에 다다른다. '휴대용 대나무숲이나 확성기가 있다면 고민 없이 꺼내 들 텐데. 가장 사소하고 가장 눈치 없이 떠들어댈 텐데.'


자몽 씨가 쥐도, 새도 만날 수 있었던 건 '척'하지 않았기 때문일 거다.

기꺼이 들킬 각오로 옥상에서 자기감정을 이야기하고 놀이터에서 심정을 드러냈기 때문일 거다. 그렇다. '이게 고민인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나' 싶은 걸 꺼내들 때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자몽 씨라면, 꼭 키위 씨가 아니더라도 딸기 씨나 블루베리 씨에게 들킬 운명이었던 거다.  


자몽 씨처럼 공공장소 예절을 못 지킨다 한들, 키위 씨나 또 다른 누구처럼 눈치 없이 끼어든다 한들, 그래서 잘 참지 못하는 어른이 된다 한들, 열 번 중 한 번은 척하지 말자.


열 번에 한 번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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