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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y Aug 05. 2024

Tango 구도자들

왜 그렇게 열심히 할까?

이제 땅고를 배우기 시작한 지 6주가 지나고 있다. 처음의 축을 세우고, 편안하게 걸어보라는 말을 듣고 아무생각없이 걸었던 것이 꽤 오래전의 일처럼 느껴진다. 시작한 이후로 생활의 중심축이 조금씩 땅고로 이동을 하더니 점점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는 것 같다.


수요일 쁘락(Practice의 스페인어), 목요일 목초밀(목요일 초급 밀롱가, 또는 베지밀이라는 애칭), 금요일 수업과 뒷풀이, 토요일 수업과 뒷풀이, 마음을 먹는다면 적어도 일주일에 4번은 연습을 할 수 있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번 수업을 갔었는데, 하루씩 늘어나고 있다. 지난주는 화요일에 갑작스러운 연습모임이 생겼고, 밀롱가의 옆방의 연습실에서 같이 배우고 있는 동기들과 그동안 배운 것을 연습했다. 뭔가 세상에는 두개의 별개의 세상이 있는 것 같았다. 돈을 벌어 생활하는 일반 세상과 땅고를 추는 세상. 연습이 끝나고 살짝 조명을 어둡게 하면서 연습한 동작으로 춤추도록 유도하기 위해서 가르치는 쌉님들 두분이서 살짝 춤을 보여줬는데, 1~3미터 앞에서 음악에 맞춰서 은은한 조명에 춤추는 모습이 너~~~~무 멋있었다. 여기는 뭔가 다른 세상같다는 인상이 머릿속에 확 퍼지는 것 같았다.


이번주에는 원래 참석해야 할 금요일 수업에 참석을 못하고 토요일수업을 들으러 갔다. 새로운 피구라(=땅고의 모듈형 패튼)을 알려주었고, 그것을 남자와 여자의 관점에서 몇번을 반복해서 시범을 보이면서 가르쳐줬다. 이번에 배우게 된 것은 오초에 이은 히로(GIRO), 그 중에서도 반만 도는 메디나 히로라는 것이었다. 머릿속으로는 이해가 갔다. 이렇게 움직이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연습할 때도 엄청 잘못되는 것 같지 않았다. 조금만 연습하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연습시간이 금새 끝나고 다시 그 동작을 떠올려보니, 놀랍게도 나의 기억력이라는 것에 대한 믿음이 사라졌다. 이렇게 저렇게 될 것 같던 동작이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같이 배운 사람들끼리 뒷풀이를 가는데 따라갔다. 왠지 다른 세상의 사람들과 만나서 나누는 얘기는 나의 다른 모습이 나타나는 듯 해서 신기하고 즐겁다. 뒷풀이의 주제는 초보파티였다. 얼마후로 다가온 초급파티 준비는 어떻게 해야하고, 운영은 이런 부분을 신경을 써야 하고 등등 나는 살짝 방관자로 남아 있던 파티에 대해서 열과 성을 다해서 토론하고 할일을 나누고 있는 동기들의 얘기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대화처럼 듣고 있었다. 난 파티에 주류가 되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끝나고 청소하는 것을 도우는 게 내가 할 일이라는 소극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얘기를 나누는 데 어울리지 못하고 듣고 있다가 우리가 배운 곳에서 춤을 출수 있는 밀롱가가 열린다고 한번 구경하러 가자는 의견이 나왔다. 


다들 간다고 하고, 나는 아무 생각없이 머뭇거리다 같이 가게 되었다. 나는 아직 한 딴따(3~4개의 땅고 음악)를 출 수 있을 만한 준비가 되지 않은 달걀이다. 누군가의 표현에 의하면 땅게로스를 와인에 비유한다고 했는데, 나는 아직 알이 맺혀지지도 않은 포도넝굴에 메달려있는 언젠가는 포도가 될 수 있을 지도 모르는 가능성이다. 조금은 친해지고 얼굴도 익힌 같이 춤을 배우는 사람들과 함께 미니-밀롱가로 향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곳에서는 우리와 같이 배우던 사람들 중의 몇명이 이미 춤을 추고 있었다. 그것도 뭔가 그럴듯하게 추고 있었다. 나와 같이 간 사람들도 잠시 살펴보더니, 춤 대열에 들어선다. 난 신발을 갈아신어야할지 슬리퍼를 신고 있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한 채 멍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도, 기회가 온다면 춰봐야 하지 않을까? 나에게 땅고를 가르쳐주고 있는 쌉님들은 계속 나에게 춰보라고, 시도해보라고 등을 떠 밀어준다. 두려운 마음에도 한발씩 내딛기도 하고, 한번 제안해서 춰보기도 한다. 우리 마음씨 착한 이본느쌉님이 한딴따의 끝부분에 나에게 같이 춰보자고 제안을 하고, 한곡을 같이 걷다가 끝이났다. 춰보고 나면 확실히 내가 어떤 상태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자기객관화가 이루어진다. 


뒷풀이에서 어떤 땅게라(여성 댄서, follower)가 춤을 추다가 조그마한 실수에도 정색을 하면서 사과를 하면 왠지 춤의 리듬도 같이 깨어지는 것 같다는 말을 했었는데, 지금은 내가 그런 정색하는 사과를 10번은 넘게 한 것 같았다. 어느 정도의 기본기가 갖춰져야 가벼운 실수에 대해서 넘어가고 나중에 사과할 수 있을 정도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들과 이끌려서 들어온 미니밀롱가에서 나만이 홀로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본 나루 쌉님이 나를 동기들과 맺어주기 위해서 이분 저분에게 신청해 볼 것을 권한다. 그러다 한분과 춤을 추게 되었고, 정말 죄송하다는 말이 계속 나오는 것을 꾹 참고, 얼굴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진 채로 30분 같은 한딴따를 보내게 되었다. 겨우 끝을 내고 들어올 때, 신청해 볼 것을 계속 권해주시던 쌉님이 물어보셨다.


"어땠어요?" 

"....." 

"실망스럽죠? 그래도 계속 춰봐야 해요." 

"동기들이 다들 너무 잘 춰요." 

"그래도, 그 중에서 시작하는 동기들에게 계속 신청해서 춰봐야해요. 그럴 수 밖에 없어요. 그래야 조금씩 조금씩 늘어날꺼예요. 그럼, 앞의 기수의 선배들과도 춰보고, 다른 초급들과도 춰보면서 조금씩 올라가는 거예요"


추고 들어올 때의 나의 감정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열받는다.'였던 것 같다. 일본어로 된 문구, (むかつく, 울화가 치밀다)가 떠올랐다. 그건 나 자신에 대한 분노였던 것 같다. 어슬프게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넘어서 하려고 한 것도 바보같았고, 배운 것도 제대로 되지 않고, 음악도 들리지 않고,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 대한 짜증과 상대편에 대한 미안함도 복합적으로 들어있는 감정이었던 것 같다.


내가 지금까지 만난 땅고를 추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런데, 그 모든 사람들이 뭔가 땅고를 잘 추고 싶어하는 열망같은 것을 표현하는 것을 들었다. 심지어 가르치는 쌉님들도 모두 다른 강좌를 듣거나 들어야 한다고 했고, 땅고를 잘하기 위해서 헬쓰와 요가를 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브런치에서 발견한 땅고를 오랫동안 하셨던 분으로 보이는 저자도 지속적으로 강습을 듣고, 조그마한 자세의 차이도 개선하고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왜 다들 그렇게 땅고에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것일까? 땅고를 추면서 인간관계가 땅고인으로 좁아졌다고 말하는 쌉님의 얘기를 들으면서, 1시간 30분이상의 거리를 오가면서 일주일에 3~4번을 홍대로 온다고 하고, 땅고를 잘추기 위해서 홍대근처로 이사를 고려하는 것을 보면서, 도대체 무엇이 사람들의 삶의 중심을 땅고로 계속 끌어당기는 걸까? 한편으로는 궁금하면서도 내가 경험한 그 열받는 경험이 땅고에 대한 열정의 연료 중의 하나일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얼마나 대단한 땅고를 출 수 있는 사람이 될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나 스스로에게 화가 나는 땅고는 다시 추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열받는 감정 속에서 살짝 생겼다.


처음에 땅고를 배울 때 적었던 <축, 컨넥션, 텐션>을 통해서 내가 바로 서고, 상대편과 축을 공유한 채, 커넥션으로 공간을 만들어주면서 텐션을 유지한 채로 상대편을 이끈다는 것이 얼마나 터무니없이 어려운 과정인지,땅고는 머리로만 배우는 춤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땅고를 열심히 연습하는 이유에 대해서 물었던 마리오 쌉님의 대답은 머릿속에 화두처럼 남는다.


"땅고를 연습하다보면 한계가 오기도 하고, 내가 아무리 연습을 하더라도 마이스터가 될 수 없을 수도 있다.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손흥민이나 박지성이 될 수는 없고 될 필요도 없다. 나만의 한계를 조금씩이라도 넘어보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다."


나는 나의 삶을 살면서, 나의 땅고를 추기 위한 일상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나에게 화나지 않고, 파트너에게 부끄럽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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