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읽고 분석하고 그 방법을 나누는 독서법
오늘은 이언 맥큐언의 소설로 독서토론을 했습니다. 발제하신 jstory님의 탁월한 소설 요약과 주제선정으로 읽었을 때는 머리에 들어오지 않던 구조가 굉장히 선명하게 떠올라서 놀랬습니다.
1. 소설 작품의 전체적인 평과 특히 공감 가는 인물에 대해 얘기해 봅시다.
좋았다는 전제 하에서 삶의 판단기준을 찾는 것, 선택의 어려움을 생각하면서 읽게 되었고, 잭의 용감함에 대해 공감하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마치, 카르페 디엠을 실천하는 현재에 사는 사람 같다는 말도 나왔고, 35년간의 결혼생활을 참다가 터뜨린 것이라는 자의적이나 재미있는 해석도 있었습니다. 판사의 삶을 대리 경험하는 데 훌륭한 책이었다는 것, 판사로서의 판결의 어려움과 판결에 따른 결과에 대한 책임 등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는 공감도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형사물에서 변호사와 검사 또는 형사와 검사가 주인공이 되고 판사는 배경인 경우가 많은 데, 이 책은 판사의 시점에서 볼 수 있어서 사건을 보는 다른 시각을 느낄 수 있었다는 얘기도 해주셨습니다. 넷플릭스의 '소년판사'를 말해주셨는데, 비슷한 느낌이었다고 공감되었습니다. 칠드런 액트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소설의 느낌을 헤칠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종교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소년의 부모에 대해서 이해가 안 된다는 말도 해주셨습니다. 부모들의 얘기를 좀 더 상세히 했으면 어땠을까라는 말도 해주셨습니다.
종교의 터부와 절대성에 대한 간단한 설명도 있었지만, 종교를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세계관과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에 대한 것은 굉장히 폭넓은 주제가 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잠시 얘기하다 시선을 돌린 것이 잘한 결정이라 생각됩니다.
저자의 다른 책 '암스테르담'이 맨부커상을 수상했다는 얘기도 들었고, 직업의 세부적인 묘사가 좋고, 애덤 핸리에 감정 이입해서 사랑의 결이 다른 작가의 문학적 장치를 설명한 것은 감탄을 자아내는 훌륭한 해석이었습니다. 특히, 잭과 멜러니의 사랑을 육체적 사랑, 피오나와 애덤핸리의 관계에서 피오나의 사랑을 풋풋한 사랑, 로맨스적 사랑, 애덤 핸리의 사랑을 같은 종에 대한 사랑으로 정리해서 설명한 부분에는 살짝 공감하면서도 애덤 핸리의 사랑에 대해서는 존경과 종교적 사랑에 가깝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바이올린, 시를 이해하는 순간을 애덤이 피오나에게 사랑에 빠지는 순간으로 말한 것도 많은 찬성과 작은 반대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애덤 핸리의 케이스를 법률로 결정하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는 의견과 최선의 선택이라면 성인 이후에도 똑같은 판결을 내려야 하는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한편 공감하고 한편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옳지만 힘든 것을 하게 하는 것이 종교라는 부분과 공익을 위한 행동이 강한 사람이라는 말은 독특하게 기억에 남는 말입니다. 완벽한데, 너무 꽉 차서, 치밀하지만 마음을 울리는 부분은 없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마음을 울린다는 것은 어떤 것일지 살짝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소설가 김영하처럼 취재하는 작가로서 한 5년은 판사생활을 한 것 같은 상세한 서술이 다른 책도 읽을 만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하는데, 굉장히 공감하면서 김영하님의 소설을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했습니다.
이언 맥큐언이라는 작가의 치밀한 구성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작가적 장치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중 한 가지 예시로 이름과 직업을 얘기했습니다. 피오나 메이의 메이를 5월의 한창때인 현재의 사건을 다루는 판사로, 그에 비해서 잭은 고대사 교수로 피오나와는 시간의 시점이 다른 직업을 부여함으로써 갈등이 시작되도록 했다는 설명이 있었습니다. 멜러니의 직업인 통계학에 대해서 3가지 거짓말(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통계학)이라는 말로써 속기 쉬운, 거짓을 나타내는 직업이라는 은유를 가진다고 했습니다. 이에 대한 통계학의 거짓이라는 말에 대한 거센 반발이 잠시 있었습니다. 또한, 소설에 나오는 2가지 사건이 샴쌍동이와 종교가 다른(유대교와 이슬람) 부부의 이혼에 대한 판결 이후에 애덤핸리의 사례가 나오는 것이 생명과 종교에 대한 판단을 다루기 위한 생명 판례, 종교 판례 이후 생명과 종교 판례의 순서를 따랐다는 설명에는 완전 감탄했습니다. 또한, 구성에 대한 치밀함을 음악과 시라는 장치로서 더 강화하고 있다는 해석은 정말 좋았습니다. 특히, 어떤 소설이든 이름에 대한 의미는 작가의 의도가 드러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다른 소설의 예시는 훌륭했습니다.
2. 미성년자인 소년(애덤 핸리)이 신념을 갖고 수혈거부를 하지만 피오나 판사는 애덤의 이익에 가장 부합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하고 병원 측이 요구하는 강제 수혈을 허락합니다. 이에 대한 각자의 의견을 얘기해 보고 신념과 생명 중에 더 우위에 둬야 하는 것이 무엇일지 논해 봅시다.
이 주제와 관련된 얘기를 하면서 옛날에 자살이 범죄였던 사례를 알게 되었고, 그때는 자살을 시도하다 실패하면 더 힘들게 죽게 했다는 것은 신선한 상식이었습니다. 사람의 신념과 생명의 중요성에 대한 판단에서 피오나의 생명 우선적인 판단에 동의하는 사람도 있었고, 사람의 신념에 따라 살게 놔둬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그 사람의 신념이 치매에 걸린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행동을 그냥 두어야 할지? 막아서 자살방조죄를 피해야 할지? 고민되게 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결과론적으로 자살한 애덤을 보면서 생명을 살리기 위한 판결의 무용성을 얘기하신 분도 있었습니다.
그에 더해, 종교에서 핵심적인 가치가 사랑인데, 수혈이 오염이라는 판단을 내린 '여호와의 증인'의 교리에 대해 이해가 안 된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엄마의 기독교에 모태신앙으로 끌려갔던 종교의 무서움에 대해서 얘기해 주신 분도 계셨지만, 우선 생명을 구해서 또 다른 방향의 삶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개체의 차원에서는 자신의 생명을 중요시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천주교 박해와 같이 집단의 목표가 정해질 경우 전쟁과 종교의 순교와 같이 도덕적 공동체가 집단경쟁에서는 우위에 서는 것이 진화론적 결론이라는 설명은 '여호와의 증인'의 신도들이 수혈에 대해서 반대하게 되는 교리를 정하고 따르는 행동에 대한 적절하고 멋진 해석이었습니다.
선택과 판단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주제로 잭의 연락이 없는 것을 확인한 피오나의 면담요청 기각하는 부분(P78)을 지적해 주셨던 것도 기억에 남는 지점이었습니다. 애덤의 종교적 신념과 피오나의 법적 신념의 충돌이라는 구조적 분석에는 약간 반대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신념이라는 것에 대한 해석으로 신(信)이라는 글자는 사람의 말이라는 형성자로서 추상적이고, 확고하지 않고, 과학적이지 않다는 설명으로 연결되고, 세뇌를 얘기하면서 판단의 합리성에 대해서 다시 한번 불확실하다는 것을 얘기하면서 신념이라는 것이 비합리적이고, 불확실하다고 설명한 부분에는 전적으로 동의했습니다.
이 주제에 대해서, 나는 애덤과 부모들이 자기들의 진정한 욕구에 대해서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고 그 숨겨진 욕구를 여러 가지 단서를 통해서 찾은 피오나의 통찰력에 감탄했었고, 그로 인해서 수혈을 허락하는 판결을 내리는 부분은 훌륭했다고 생각합니다. 생명과 신념의 문제라기보다는 현실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부재했던 것을 되짚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애덤의 시를 쓰고, 바이올린을 배우는 것에서 삶에 대한 욕구를 읽어낸 부분이 가장 인상 깊게 남았습니다.
3. 소년은 수혈과 추가 치료를 받고 회복하면서, 기존의 가치관이 변화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피오나 판사나 내린 ‘상식적이고 올바른 판단’에 대해 찬탄과 경의를 넘어 그녀를 사적으로 추종하게 됩니다. 한편 현실 속에서는 삶의 여러 가치관들이 수평적으로 존재하고 각각의 가치체계나 가치관은 경쟁을 합니다. 소년의 경험은 더 나은 가치관, 강제할 수 있는 가치관이 있음을 암시하게 됩니다. 여러 가치관 중에 더 나은 가치관의 조건은 있을까요, 있다면 무엇일까요?
이에 대한 답이라고 할만한 내용은 오늘의 얘기 중에서 세계관 또는 가치관에 대한 유연한 태도라는 얘기였던 것 같습니다. 너무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는 세계관은 삶을 포기하게 하는 이유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얘기들이 나왔습니다. 하나의 가치관이 무너졌을 때, 그 가치관을 대체할 수 있는 적당한 가치관으로 발전 유지할 수 있었다면 애덤은 치료거부를 통한 실질적 자살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4. 소년의 병이 재발하고, 성년이 되었기 때문에, 이후 그의 수혈거부에 대해 누구도 말리지 못하게 되어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그의 행동은 자살에 가깝다고 주변에서 생각하지요. 그 자살은 누구의 책임일까요?
애덤의 종교적인 세계관의 혼란으로 인한 자살에서 법이 개입할 부분은 없었다고 보입니다. 피오나는 판사로서 할 도리를 다했다고 동의했고, 결식아동을 돕는 것처럼 기관의 도움을 더 받도록 애덤을 도울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피오나의 개입과 애덤의 자살을 막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얘기로 연결이 되었습니다. 왜 피오나는 애덤을 만나러 갔던 것일까? 그 배경에는 잭과의 갈등으로 인한 피오나의 자존심 타격과 그로 인한 직업에의 몰두를 이끌어내지는 않았을까? 판사로서 애덤의 사건에 대한 판단은 만나러 가지 않더라도 결론을 내리는 데 문제가 없었지만, 자신의 잭과의 가정사의 갈등으로 복잡한 마음을 해소하기 위한 refresh 또는 직업에 대한 더 충실한 몰입을 위해 애덤을 만나기 위해서 이동을 결심했고, 대화 도중에 바이올린에 맞춰서 노래를 부르며, 애덤의 시를 읽고 그 의미를 이해하면서 애덤이 현재의 종교적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판결을 내렸고, 그로 인한 애덤의 새로운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판사로서의 판결은 역할을 다했다고 할 수 있지만, 판결 전의 만남과 판결 후 키스로 이어지는 인간적인 감정의 흔들림에 대해서는 애덤에게 한발 더 나아간 관심과 돌봄이 필요하지는 않았을까?라는 주장에 대해서 공감하게 됩니다. 감정에 대한 매듭을 통해서 새로운 세계관을 형성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한 발자국이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 얘기와 함께, 개인적 환경의 영향이 판사의 판결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이 소설의 짜임새는 개인사의 갈등에서 직업적 판단과 행동의 영향을 이끌고, 그 행동의 결과 감정과 관계없어야 할 재판에 만남과 감정이 개입되고, 그 개입이 한 사람의 가치관을 바꾸는 영향을 미치지만, 어느 순간 한발 더 나아가는 감정의 매듭에서 회피함으로써 비극으로 결말이 나는 빈틈없이 짜인 구성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보게 됩니다.
5. 작품은 전체적으로 세련되고 치밀하지만, 뭔가 활력이 부족해 보이는 안정된 구도입니다. 각자의 상상력을 동원해서 더 재밌는 작품이 되도록 이 작품을 재구성해보는 얘기를 나눠봅시다.
애덤의 살부모 작품은 오래 기억될 것 같습니다. ^^
소설을 읽고 얘기를 나눈다는 것은 소설 속에서 내가 찾은 작가가 만들어 낸 소설적 장치를 나만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그 해석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면서, 어떤 장치에는 공감을 다른 장치에는 반대를 얘기해 보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각자 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소설을 읽고 다르게 느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작가들은 소설을 쓰고 난 이후에 그 소설에 대한 해석을 독자들에게 넘깁니다. 그것은 소설을 어떻게 해석하든지 그건 독자의 몫이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오늘은 내 맘대로 소설을 읽는 것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배운 듯해서 뿌듯합니다.
But I was young and foolish
And now am full of tears ..
예이츠의 이 시를 통해서 작가의 페르소나인 피오나는 판결을 위해서 애덤을 만나고, 이해하고, 같이 노래를 부르는 개입을 한 이후, 애덤으로 인해서 흔들렸던 감정(키스)에서 도피하며, 도움이 필요한 애덤을 외면하고, 감정적 매듭을 짓지 못한 행동에 대한 후회를 나타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Down by the salley gardens>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Down by the salley gardens
My love and i did meet
She passed the salley gardens
With little snow-white feet
She bid me take love easy
As the leaves grow on the tree
But I, being young and foolish
With her would not agree
In a field by the river
My love and I did stand
And on my leaning shoulder
She laid her snow-white hand
She bid me take life easy
As the grass grows on the weirs
But I was young and foolish
And now am full of tears
And now am full of tears
Down by the salley gardens
My love and i did meet
She passed the salley gardens
With little snow-white feet
She bid me take love easy
As the leaves grow on the tree
But I, being young and foolish
With her would not agree
But I was young and foolish
And now am full of tears ..
버드나무 정원을 지나
내 사랑과 나는 만났습니다
그녀는 눈처럼 흰 귀여운 발로
버드나무 동산을 건넜지요
그녀는 내게 나무에서 나뭇잎이 자라듯
느긋하게 사랑하라 했지만
그때 나는 젊고 어리석었던 까닭에
그 말을 곧이듣지 않았습니다
시냇가 어느 들녘에서
내 사랑과 나는 서 있었어요
기울어진 어깨 위에
그녀는 눈처럼 흰 손을 얹었습니다
그녀는 내게 언덕 위에 풀들이 자라듯
인생을 여유롭게 살라 했지만
그때 나는 젊고 어리석었던 탓에
지금은 눈물이 가득합니다
버드나무 정원을 지나
내 사랑과 나는 만났습니다
그녀는 눈처럼 흰 귀여운 발로
버드나무 동산을 건넜지요
그녀는 내게 나무에서 나뭇잎이 자라듯
느긋하게 사랑하라 했지만
그때 나는 젊고 어리석었던 까닭에
그 말을 곧이듣지 않았습니다
버드나무 정원을 지나
내 사랑과 나는 만났습니다
그녀는 눈처럼 흰 귀여운 발로
버드나무 동산을 건넜지요
그녀는 내게 나무에서 나뭇잎이 자라듯
느긋하게 사랑하라 했지만
그때 나는 젊고 어리석었던 까닭에
그 말을 곧이듣지 않았습니다
그때 나는 젊고 어리석었던 탓에
지금은 눈물이 가득합니다
그때 나는 젊고 어리석었던 탓에
지금은 눈물이 가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