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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전북스 Mar 12. 2023

『카탈로니아 찬가』를
이해하는 책 속 문장 10가지

<조지 오웰> 3편


한 권의 책에는 황금 같은 문장들이 여럿 존재합니다. 그러나 주제와 내용을 중심으로 독후감을 정리하다 보면, 몇몇 문장들은 언급되지 못한 채 사라지곤 합니다. <독후감>을 통해 줄거리와 몇 가지 주제에 대해 다뤄보았다면, <책 속 문장> 시리즈에서는 빛나는 문장들이 사라지지 않도록, 그것들을 하나하나 곱씹어 보고자 합니다. 문장 하나하나의 아름다움과 의미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작품의 줄거리나 주제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내가 인상 깊게 보았던 문장들을 기록하고, 그 문장이 의미하는 바와 저의 생각을 풀어보고자 합니다. 이 글을 통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카탈로니아 찬가'를 더 잘 이해하는 책 속 문장들 ]  *페이지는 민음사 출판사책 기준입니다.



■ 무엇보다도 혁명과 미래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갑자기 평등과 자유의 시대로 들어섰다는 느낌이 있었다. 인간은 자본주의 기계의 톱니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13p)


영국인 조지 오웰이 갑자기 스페인 내전에 뛰어들게 된 이유를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그의 말마따나, 그는 바르셀로나의 생활상을 목격하며 '새로운 미래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평등과 자유의 시대에 대한 희망'을 보았습니다. 특히, 인간이 자본주의 기계의 톱니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행동하게 되었다는 표현을 보면, 당시 바르셀로나의 자유로운 분위기에 크게 감화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본격적인 근대화가 시작되고 자본주의가 퍼져가며, 열강의 제국주의가 강화되던 20세기 초에 개별 구성원은 국가에 뜻에 복종해야 하는 부품으로 취급받았습니다. 특히, 오웰이 집중하던 사회 밑바닥의 노동자 계급은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대우조차 받지 못한 채, 그저 주어진 역할만을 따르는 것이 유일한 존재 이유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러한 시대 속에서 오직 노동자들의 힘으로 이뤄낸 혁명, 오직 노동자들만으로 구성된 새로운 도시는 오웰을 감화시키기에 충분해 보입니다. 특히 독일과 이탈리아에 강한 파시즘의 물결이 흐르던 유럽의 사회상을 고려한다면 이 혁명이 지닌 의미는 어마어마합니다. 


이렇게 글의 초반부에 오웰이 바르셀로나를 묘사하는 부분을 읽어보면, 오웰이 지니고 있는 강한 기대감과 희망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가 타국에서 기꺼이 목숨까지 바치고자 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그가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했던 사회의 모습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 그들은 혁명적 열정은 가득했지만, 전쟁의 의미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지했다. 줄을 제대로 세우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규율은 존재하지 않았다. (17p)


하지만 노동자 계급은 기득권층을 전복시킨다는 혁명적 목표에만 지나치게 매몰되어, 사회 건설과 운영에 대해서 실패하고 맙니다. 그들은 정상적인 사회 시스템을 만들지 못했으며, 기본적인 물자 부족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단지, 서로의 명칭을 동무라고 부른다고 노동자의 사회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적절한 사회 기반 시설, 외부 세력과의 연결고리, 장기적인 목표 수립에 실패하면서 표면적인 부분만 잠시 변화시켰을 뿐입니다. 


노동 계급의 문제를 지적하는 이 초반부 대목을 통해, 오웰과 노동자들이 꿈꾸었던 새로운 사회 건설이라는 목표가 사실 잘못된 방향으로 진행되었음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단순히 전쟁 초기의 혼란으로만 이해하기에는 많은 부분에서 문제가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부르주아 계급이 잠깐 노동자의 편인 척했다는 것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그들의 복귀를 막지 못했습니다. 기본적인 시스템조차 갖추지 못했다는 이 묘사에서 그들의 사회 조직이 가지는 문제점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 <혁명적> 규율은 정치적 의식에 달려 있다. 왜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지 이해하는 것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정치적 의식을 확산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 사실 의용군이 전장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것 자체가 <혁명적> 규율의 힘이다. (42p)


혁명이나 전쟁과 같은 거대한 일에 참전하기 위해선 큰 사명감과 목적의식, 집단의식이 발휘되어야 합니다. 오웰의 시선에서 노동조합의 의용군은 저마다의 정치적 가치와 신념을 지키기 위해 참전했고, 그곳에서 오웰은 다시 새로운 물결에 대한 희망을 얻습니다. 그들의 정신은 공포와 징집으로 인해 구성된 부르주아의 군대와는 분명히 다른 것이었으며, 갖은 고난 속에서도 끝까지 자신의 뜻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의미했습니다. 비록 물리적인 자원은 현저히 부족했지지만 노동 계급 개개인이 지니고 있는 자유에 대한 목적의식, 정치적 의식은 그들의 또 다른 힘이 되어줄 것입니다.



■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스페인 노동 계급이 <민주주의>를 지키고, 현상을 유지하기 위해서 프랑코에 저항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의 저항과 병행하여 분명히 혁명적인 성격을 지닌 폭동이 일어났다. (68p)


바로 앞 문장과 연결되는 표현으로, 노동 계급이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들은 분명히 스페인 정부의 존속이나, 민주주의나 시장경제의 수호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직 노동 계급의 인간다운 삶과 자유를 얻기 위해 투쟁했습니다. 이를 고려하면, 노동 계급은 비록 인민 전선의 측에 속해있었지만 그들과 같은 진영은 아니었습니다. 노동 계급에게는 프랑코뿐만 아니라 정부 권력과 공산주의자들 역시 자신을 억압하는 권력자에 불과했습니다. 큰 관점에서 프랑코에 싸워야 하면서도, 인민전선 내부의 정치적 갈등에서도 살아남아야 했던 것이 그들의 임무였습니다.


사실 노동 계급뿐만 아니라 모든 진영의 모든 그룹은 자신의 이익 추구를 우선하여 행동했습니다. 인민전선 세력의 여러 이념들은 프랑코에 저항하면서, 동시에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서로를 견제하고 억압하는 혼란스러운 상황에 있었습니다. 이러한 진영 간의 갈등과 혼란한 투쟁 상황을 고려하면, 노동 계급에게 주어진 어려움과 임무가 얼마나 달성하기 어려운 것이었는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 혁명이 진행되면 영국은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거나, 받아도 아주 조금밖에 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만일 자본주의 공화국이 승리하면 외국의 투자 자본은 안전할 것이다. 따라서 혁명을 진압해야 했기 때문에, 상황을 무척 단순화하여 혁명 같은 것은 일어나지도 않은 듯이 호도했다. (72p)


스페인 내전을 둘러싼 외교 관계에서는 이러한 이익 추구 행위를 더 분명하게 관찰할 수 있습니다. 정부군에 편에 있었던 영국은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 스페인 노동 계급의 혁명을 의도적으로 은폐했습니다. 영국은 스페인의 정부에 많은 투자를 했고, 만약 노동자 계급이 혁명에 성공하여 정부가 무너진다면 자신의 투자는 사라질 위기에 처합니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한 영국은 프랑코의 파시즘을 막기 위해 지원하는 한편, 노동 계급의 혁명 역시 적극적으로 방해하는 스탠스를 취하게 됩니다. 결국 스페인 노동 계급은 대내외적인 동맹 모두에게 환영받지 못했고, 저마다의 이유로 은폐되거나 억압받았습니다. 기존 노동계급이 가진 낮은 사회적 지위와 그들을 도움으로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미비하다는 점에 기인한 근본적인 문제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 전 세계의 공산주의 또는 친공산주의 언론에서 전파하는 통일사회당의 노선은 이런 것이었다. "현재는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 외에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다. (..) 우리는 우리 편에서 싸우고 있는 중간 계급들을 놀라 달아나게 할 여유가 없다. (..) 이 단계에서 우리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의회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다. (81,82p)


앞서 설명했던 것처럼 노동 계급의 혁명을 가장 적극적으로 막아선 이들은 소련과 스페인의 공산주의자들이었습니다. 



소련과 스페인 공산주의자들은 오히려 노동 계급의 혁명을 가장 일선에서 막고자 했다. 그들의 명분은 당장 주어진 최고의 적 프랑코를 이기기 위해선, 각자의 이익 추구행위를 멈추고 단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잘 살펴보면 노동 계급의 희생만을 강요할 뿐, 그들 스스로의 이익은 포기하지 않는다. 소련은 스페인의 파시즘화와 경제적 이유, 프랑스 등의 주변 동맹 관계를 모두 고려하여 스페인 공화정부의 존속이 필요함을 깨닫고 지키려는 것뿐이다. 즉, 여전히 자신의 이익 추구는 포기하지 않았으며, 그럴싸한 명분을 통해 노동 계급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 철학적으로 공산주의와 무정부주의는 양극단이다. 실제적으로 목표로 하는 사회의 형태라는 점에서 둘 사이의 차이는 주로 강조점의 차이이다. 그러나 그 차이 때문에 절대 화해할 수가 없다. 공산주의자는 늘 중앙 집권과 효율을 강조한다. 무정부주의자는 자유와 평등을 강조한다. (84p)




오웰은 노동자 계급의 목적, 무정부주의의 목적이 공산주의의 지향점과 분명히 차이가 있음을 설명한다. 얼핏 같은 목적을 공유하는 듯 보이는 이들이 실상 전혀 다른 목적을 지니고 있었음을 설명하면서, 노동 계급이 공산주의와 같은 편에 설 수 없음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공산주의는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간다는 명목으로 중앙집권과 효율을 강조한다. 우리가 많이 접해온 공동생산, 공동분배의 원칙처럼 국가 차원에서의 통일성과 규율을 강조한다. 그러나 노동계급이 추구하는 무정부주의는 규율과 통제에서 벗어난 모두의 '자유'를 추구한다. 억압의 대상으로 존재했던 노동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모든 억압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온전히 느끼는 일이었다. 얼핏 비슷한 이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둘 간의 갈등 양상을 정확히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 더 중요한 것은 전쟁이 <민주주의를 위한 전쟁>으로 좁혀지자, 국외 노동 계급에게 대대적으로 원조를 호소하는 일이 불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사실을 직시한다면, 세계의 노동 계급은 스페인 전쟁에 거리를 두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93p)




노동 계급의 실패를 야기한 원인 중 가장 중요했던 것은 노동 계급은 그 어떤 사회적, 대외적 목소리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외적인 프레이밍에서 패배하자, 그들의 혁명은 대외적인 명분을 순식간에 잃어버린다. 파시즘에 대항하기 위한 단결을 강조하자, 그들의 행위는 도리어 파시즘을 옹호하고 정부를 혼란에 빠뜨리는 행위로 규정된다. 실제로 큰 목적과 규모를 띄는 사회적 행위일수록, 정당한 명분을 세우는 것이 핵심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 상황에 따라 대외적인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된 스페인 노동자들은 다시 돌아온 부르주아에 대항할 수 있는 가능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 그럼에도 일방적인 편견만 받아들여진 이유는 스페인의 혁명적 정당들이 외국 언론에 아무런 발판도 없기 때문이다. (..) 그들은 체계적으로 모욕을 당했다. 나도 경험을 통해 알지만 그들을 옹호하는 기사를 싣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206p)




조지 오웰은 자신의 저서에서 지속적으로 진실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미를 중요하게 전달하고 있다. 여기서 핵심은 '진실'이라는 것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기보다는 그것을 증명해 내는 과정의 싸움이라는 것이다. 다른 저서에서 진실의 객관적 증거에 대해 다루었다면, 이 작품에선 진실을 알릴 수 있는 목소리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글이 쓰인 대로, 스페인의 노동 정당들은 자신들에 대한 악의적인 편견으로만 판단되었다. 그들의 혁명적 가치와 의의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게 되었고, 본래 존재하지 않았던 불순한 의도만이 존재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을 해명할 수 있는 수단조차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편견이 곧 진실이 된다. 모든 것은 그것에 대처하지 못한 노동 계급의 잘못이다. 소수자로서 그들이 승리하기 위해선, 대외적인 명분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 "다른 여느 전쟁과 마찬가지로 이 전쟁은 사기요." (..) 이제 점점 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사실 모든 전쟁은 진행되는 과정에서 점차 타락해 간다. 개인적 자유나 진실한 언론 보도는 군사적 효율성과는 절대로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232p)




같은 맥락에서 개인적 자유나 진실한 언론 보도라는 것은 극한의 상황에서 존재하기 어렵게 된다. 정부는 군사적 목적과 효율성을 무기로 개개인의 인권과 언론 및 표현의 자유를 마음껏 말살한다. 누군가 그것에 반기를 든다면, 앞선 소련의 주장과 같이, 지금은 당장의 적을 물리치는 것이 우선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면 그만이다. 물론, 그것이 실제로도 시급한 문제일 수 있다. 여기서의 핵심은 그 목적만이 절대적인 것으로 판단된다는 것이다. 위급성에 차이가 있다고 해서 다른 모든 가치가 훼손되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전쟁의 상황에선 언제나 목숨이 최우선 가치라는 이유로 다른 모든 것들이 권력을 위해 파괴된다. 노동 계급은 이처럼 절대적인 주장에 대해 반박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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