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카프카> 4편
16살의 카를 로스만은 하녀를 임신시켰고, 가난한 그의 부모는 그를 미국으로 보내야만 했다. 이 소설은 전혀 다른 세상에 던져지게 된 로스만의 고군분투를 그린다. 배가 뉴욕에 도착해 내릴 준비를 하던 카를은 선실에 두고 온 우산을 찾으려다 배에 갇힌다. 화부의 일에 얽매이게 된 카를은 그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선실에 들어갔다가 미국 상원의원인 외삼촌과 조우한다. 미국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외삼촌과의 만남은 카를에게 성공과 부를 보장해 주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보장되었던 그의 삶은 외부의 개입으로 인해 순식간에 파괴된다. 폴룬더 씨의 초대에 꺼림칙한 승낙으로 응답했던 카를의 행동은 곧 삼촌의 뜻에 대한 반항으로 해석되었다. 카를을 쫓아낸 외삼촌의 조치로 인해, 카를은 외톨이였던 처음 상태로 돌아간다. 카를은 어쩔 수 없이 가방 2개와 함께 길을 떠난다.
여정이 시작된 지 얼마지 않아서, 로빈슨과 들라마르샤라는 두 명의 한량과 마주한다. 거리에 떠도는 무일푼에 불과한 이들은 카를을 이용해 자신들의 배를 채우고, 일을 떠넘길 궁리만 한다. 이러한 비극 속에서 카를에게는 또 다른 구원의 기회가 주어진다. 인근 호텔의 여지배인이 카를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에게 호텔 내 일자리를 보장해 주었다. 외삼촌과의 갑작스러운 조우처럼 자신이 알지 못하는 새로운 행운이 카를을 찾아왔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처럼 호텔 속에서의 삶조차 외부의 개입에 의해 파괴된다. 카를은 느닷없이 호텔에 찾아온 로빈슨을 숨기는 과정에서 근무지를 이탈하고, 외부인을 숙소로 들이는 죄를 범했다. 지배인의 보호에도 불구하고, 그가 저지른 명백한 잘못으로 인해 그의 보금자리는 또 한 번 붕괴된다. 지배인은 끝까지 카를의 안위를 위한 조치를 취한다. 그러나 그는 수위장의 강압적인 태도를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에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포기하고 다시 맨 얼굴의 세계로 뛰어든다.
다시 로빈슨과 조우한 카를은 그와 함께 들라마르샤를 찾아간다. 이전과 달리 부와 힘을 얻은 그는 다른 이들을 강압적인 태도로 대한다. 특히 경찰의 심문을 받던 카를이 들라마르샤의 도움으로 그의 집에 숨어들게 되면서, 둘은 완전한 종속 관계에 놓이게 된다. 이에 로빈슨은 카를이 어떠한 대우를 받더라도 현재의 세계에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 경고한다. 실제로 그는 탈출을 시도하거나, 들라마르샤에게 저항하지만 그들에게 패배하고 복종하고 만다. 옥탑에서 만난 학생조차 권력의 세계에 복종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답이라고 주장한다. 그동안의 카를이 행복의 세상에서의 붕괴를 경험했다면, 지금의 카를은 비극의 세상에서의 탈출을 꾀해야 하는 정반대의 상황에 놓여있다.
어느 날 카를은 오클라호마 극장에서 연기자를 채용한다는 벽보를 읽는다. 특히, '그 누구나 환영한다'는 문구는 그에게 새로운 세상의 가능성을 보여주기 충분했다. 그 말은 곧 카를이 지금까지 살아왔던 과거를 탓하거나 비난하지 않을 것임을 보장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잠깐의 면담을 거친 뒤 바로 극장의 일원으로 채용된다. 여기서 카를은 자신의 과거와 이름을 숨긴 채, 전혀 다른 존재로 살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드디어 진정한 홀로서기에 도달한 듯한 카를을 비추며 이 소설이 끝난다.
이 소설 <실종자>의 서사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주인공 카를에게 주어지는 세상이 행복과 비극 사이에서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으며, 세상의 변화는 개인의 노력 여부와 상관없이 외부에서 불가항력적으로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카를이 직면한 모든 상황의 공통점은 '외부성'에 있습니다. 외삼촌이나 여지배인과의 만남은 그의 노력보다는 우연함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반대로, 그 세상이 파괴되는 사건 역시 카를의 중대한 과실이나 잘못 보다는 갑작스레 다가온 외부 요인에 응답하는 과정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에 오게 된 계기였던 하녀의 임신조차 어린 소년이 피할 수 없었던 사고처럼 그려지면서, 그가 직면한 모든 장면이 외부에서 '주어진' 것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는 지금까지 다루었던 카프카의 다른 작품들 <변신>, <소송>, <성>에서의 적극적인 주인공들과 분명히 다른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이전의 주인공들은 갑작스러운 선물은 존재하지 않았고, 거대한 비극의 운명 앞에서 끝까지 투쟁하다 파멸했던 인물들입니다. 이에 비해, 본 소설의 카를은 어떠한 노력도 없이 커다란 행운을 여러 번 맞이하였고, 한 두 번의 시련에서 자신이 가진 모든 행복을 전부 잃어버리는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카를 로스만은 그저 16살의 나약한 소년에 불과하며, 주변인들의 명령에 복종하며, 유의미한 저항을 보여주지 못하는 인물입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이 소설에서는 특히나 정해진 운명에 종속되어 주어진 대로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비극적인 운명을 강조하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죄 없는 자와 있는 자. 이 양자는 결국 별 차이 없이 처벌받고 죽게 된다." (프란츠 카프카)
카프카가 자신의 일기에 밝혔듯이, 인간에게 주어진 비극은 개개인의 잘못이나 역량, 운의 있고 없음에 따라 결정되는 종류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직면하는 비극과 희극의 세상은 개별 인간의 요소는 고려하지 않고 무목적으로 무의미하게 주어집니다. 인간은 그 속에 영원히 종속되어 주어진 환경에서 살아갈 뿐입니다. 인간으로서 저마다의 해결책을 찾고자 노력하지만, 그 노력조차 무의미하다는, 카프카의 실존주의가 다시 강조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본 소설은 '아메리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지만. 카프카가 생전에 작성했던 소설의 본래 제목은 '실종자'입니다. 실종자의 사전적 정의는 '어디에 있는지 모르게 되어버린 사람'을 의미합니다. 소설을 읽은 우리는 제목이 말하는 실종이 카를의 정체성에 해당되는 단어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카프카는 여러 소설을 통해 인간의 본질이 사라지고, 직업과 경제 생활로만 규정하는 근대 사회의 세태를 비판했습니다. 소설의 배경을 자본주의 사회의 상징인 미국으로 설정하고, 소설에서 경제적 상황을 통해 카를의 정체성을 묘사했던 것 모두 이러한 근대 사회의 현실을 비판하고자 했던 의도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카프카는 소설 <변신>에서 경제적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인간이 결국 소외될 것이라는 비극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소설을 살펴보면, 카를이 외삼촌의 보호를 받으며 경제적 안정성을 획득했을 때, 엘리베이터 보이로 직업과 잠자리를 얻었을 때는 문제에 당당하고 열정적인 카를이 나타납니다. 이에 반해, 외삼촌에 쫓겨나 길거리에 가게된 장면, 호텔에서 쫓겨나 들라마르샤의 하인이 되었던 장면에서는 외부인의 억압과 명령에 주늑들어 자신의 의견조차 제대로 개진하지 못하는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생존의 문제에 직면한 상황에서 개개인의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는 일은 오직 경제적 안정성을 획득하는 일 뿐입니다. 이 곳에서 인간으로서의 요소가 끼어들 자리는 없습니다.
특히, 가족이나 고향으로 대표될 수 있는 따뜻함과 인간성의 상징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미지의 공간에서 사건이 펼쳐진다는 것은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입니다. 오직 직업과 사회적 지위로 모든 것이 결정됨을 깨달은 카를은 극단에 들어갈 때, 자신의 과거와 이름을 포기한 채 전혀 새로운 존재가 되고자 합니다. 이것은 이전까지 그의 삶을 지탱해오던 여러 가치가 무의미해졌으며, 근대적 사고 방식 속에서 새로운 인간상을 추구하게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혹자는 이 소설이 <고독 3부작>으로 불리는 카프카의 다른 작품에 비해 다소 명량하고 희망찬 분위기를 가진 작품이라고 해설하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성>과 <소송>은 어떠한 희망도 존재하지 않았고, 결말에 이르러서는 주인공이 소설 내내 추구하던 가치가 파괴되는 것을 목도하게 됩니다. 이에 비해, 실종자의 카를 로스만은 여러 차례 희망적인 상황 속에서 안정감을 경험했고, 마지막 순간에는 새로운 출발을 상징하는 극단의 단원으로 취직에 성공합니다. 극단 생활의 시작을 엿볼 수 있는 결론 부분이 다소 밝은 목소리로 그려지며, 새로운 환경에서 펼쳐질 그의 삶을 응원하는 듯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러한 장면을 통해 카를에게 희망찬 삶이 주어질 것이라는 결론은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번 독후감에서 가장 강조하는 부분처럼, 운명의 변화는 우연적이고 인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그에게 긍정적인 미래가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보다는 또 다른 외부의 요소에 의해 지금 느끼는 안정성마저 파괴 될 것이라는 해석이 더욱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즉, 앞서 설명한 작품에서는 '극복'이 핵심이었다면, 이번 작품은 '불가항력적인 변화'에 초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카를이 앞으로도 끊임없이 자신의 운명에 휩쓸리며 고통과 안정 속에서 살아갈 것이라는 점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