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전북스 Feb 28. 2023

『동물농장』을 이해하는
책 속 문장 12가지

<조지 오웰> 2편

한 권의 책에는 황금 같은 문장들이 여럿 존재합니다. 그러나 주제와 내용을 중심으로 독후감을 정리하다 보면, 몇몇 문장들은 언급되지 못한 채 사라지곤 합니다. <독후감>을 통해 줄거리와 몇 가지 주제에 대해 다뤄보았다면, <책 속 문장> 시리즈에서는 빛나는 문장들이 사라지지 않도록, 그것들을 하나하나 곱씹어 보고자 합니다. 문장 하나하나의 아름다움과 의미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작품의 줄거리나 주제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내가 인상 깊게 보았던 문장들을 기록하고, 그 문장이 의미하는 바와 저의 생각을 풀어보고자 합니다. 이 글을 통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동물농장을 더 잘 이해하는 책 속 문장들 ]  *페이지는 민음사 출판사책 기준입니다.



■ 한마디로 문제의 핵심은 <인간>이오. 인간은 우리의 진정한 적이자 유일한 적입니다. 인간을 몰아내기만 하면 우리의 굶주림과 고된 노동의 근본 원인은 영원히 제거될 것이오. 인간은 생산하지 않으면서 소비하는 유일한 동물입니다. (11p)  +  그러므로 우리 동물들에게는 완벽한 단결과 투쟁을 통한 완벽한 동지애가 필요하오. 모든 인간은 우리의 적이며 모든 동물은 우리의 동지입니다. (13p)


풍자(Satire) 장르의 주제의식은 비유의 대상과 상징이 뚜렷하게 나타날수록 강해집니다. <동물농장>이라는 작품은 뚜렷하게 소련의 사회주의를 비판하고 있는 작품이며, 독자는 책의 곳곳에서 소련 사회의 전형적인 상징을 엿볼 수 있습니다. 특히 책의 초반부에 언급되는 '동지', '단결', '투쟁' 등의 단어나 핍박받는 노동자들의 혁명 등의 스토리는 소련의 탄생 역사를 강하게 비추고 있습니다. 이를 발견한 독자들은 소련의 사회주의를 생각하면서, 오웰이 무엇을 지적하고자 하는지, 어떤 사회가 문제가 발생했는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특히, 모두가 자유로운 세상을 꿈꾸지만 결국 일부 돼지들의 독재로 끝나버린 동물농장의 실패는, 소련의 사회모델이 결국 실패할 것이라는 냉철한 비판을 담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소련이 망하기 훨씬 전인 1945년에 쓰였습니다!)



■ 그 밖의 농장 동물들은 알파벳 첫 글자 <에이> 이상으로는 나가지 못했다. 또 알고 보니 양, 암탉, 오리 등 머리가 둔한 동물들의 경우는 <일곱 계명>조차도 다 외우지 못한 상태였다. (33p)


오웰이 대표작 <1984>와 <동물농장>에서 꾸준히 강조하는 부분은 정보 독점이 곧 권력 독점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동물 농장의 정보 독점 문제는 우화 형식에 맞게 각색되었는데, 돼지를 제외한 나머지 동물들은 글을 읽고 쓰고 생각하는 능력이 현저히 부족합니다. 특히 절대적 사회 규칙으로 제정한 동물 7계명조차 읽고 기억할 수 없다는 문제가 발생하면서 오직 돼지만이 사회 시스템을 이해하고 만들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후반부에 가면, 나폴레옹이 마음껏 규칙을 바꾸어도 다른 동물들이 그것을 지적하거나 불평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1984>의 이중사고가 다소 비현실적인 부분이 있다면, <동물농장>에서 말하는 정보에 대한 무지는 꽤나 현실적인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너무 복잡한 법체계, 권력-정치 구조, 경제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또한, 매일 엄청난 정보가 생산되고 유통되고 있습니다. 관련 전문가가 아니라면 우리는 수많은 정보를 알지 못하고, 대표적으로 보도되는 극히 일부분만을 인식할 뿐입니다. 특히, 각자의 정보 습득 채널이 파편화되는 오늘날 이러한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수 있습니다.


만약 특정 집단이 법의 허점을 이용하거나, 정치적 결탁을 통해, 경제적 조작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면 대중들은 그것을 인지하지도 못한 채 이용당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동물농장의 무지는 우화 속에만 존재하는 장난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매일같이 발생하는 정보 불균형의 문제를 상징합니다.



■ 동무들, 여러분은 설마 우리 돼지들이 저들끼리만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 또는 무슨 특권을 행사하기 위하여 그러는 것이라 생각하진 않겠지요? (..) 돼지들이 우유를 마시고, 사과를 먹어야 하는 것은 바로 <여러분의> 이익을 위해서입니다. 돼지들이 그 의무를 수행하지 못하면 어찌 되는지 아십니까? 존즈가 다시 오게 돼요, 존즈가! (35, 36p)    

                                                      +


■ 지금부터 동물농장은 인근 농장들과 거래를 트기로 한다. 이는 상업적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긴급 물자들을 구입하기 위해서다,라는 발표였다. (..) 나폴레옹은 암탉들이 그런 희생을 풍차 건설을 위한 특별 공헌으로 알고 환영해야 할 것이라 말했다. (59p)


권력층의 행동은 언제나 <공공의 이익>, <모두의 행복 증진>을 천명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과 제도가 절대 스스로의 이익이 아니라 모두의 행복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작품에서 돼지들은 우유와 사과를 독점하지만, 그것은 사회 시스템을 잘 만들기 위한 노력이라고 설명합니다. 권력층이 이러한 이유를 천명하는 순간, 그들에게 반항하는 입장은 모두 사회의 이익을 해치고 자신만의 이익을 원하는 이기적 존재로 매도됩니다. 사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독재 권력층이지만, 그럴싸한 이유를 선점한 탓에 자신들을 정의로운 존재로 포장할 수 있게 됩니다.


민주주의 사회가 정의롭게 작동하기 위해선, 공동의 이익을 위한 행동과 개인의 이기심을 위한 행동을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구성원의 역량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정부가 그럴싸한 이유를 주장하더라도,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을 정확히 지적하고 적극적으로 반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조지 오웰은 동물들이 초창기 시점에 적극적으로 저항했다면 돼지들의 권력 독점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 말했습니다. 그러나 동물들은 정의에 대한 분별력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행위를 온전히 용인하고 맙니다. 


정보에 가까이 있고, 정보와 특화된 이들에 대해 일반 대중이 온전한 판단력을 갖추고, 그들을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어렵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특정 계층의 이익 추구행위를 막는 것은 매우 어렵고, 우리 사회는 언제나 그러한 문제를 품은 채 운영되고 있습니다.



■ 사치스러운 인간 다섯 명을 부양할 필요 없이 동물들만 먹이면 된다는 것은 보통 큰 이점이 아니어서 웬만한 실패가 있기 전에는 세상 어느 것도 좀체 그 이점을 압도할 수 없을 것이다. (58p)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로 천명하고, 평생 사회주의의 실현을 추구했던 조지오웰이 소련의 사회주의를 비판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오웰의 시각에서 소련 사회의 시스템을 사회주의라고 부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있어 소련 사회는 사회주의의 이름을 빌린 또 다른 독재 사회였을 뿐입니다. 평등한 세상을 꿈꿨던 노동자들은 여전히 핍박을 받으며 가난한 통제 사회에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는 '사회주의'의 탈을 쓴 독재정치가 올바른 사회주의를 훼손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이를 비판하고자 했습니다.


글의 첫 부분에는 '인간을 몰아내고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로운 동물만의 세상'이 그려집니다. 그들은 자신의 불행은 주인과 동일시하고, 현재의 억압자를 몰아낸다면 모든 것이 자유로워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며 혁명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혁명의 궁극적 목표는 지도자를 몰아내는 것에 그쳐선 안되며, 평등하고 자유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것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동물농장의 동물들은, 소련의 프롤레타리아들은 일차적 목표에 매몰되어 궁극적인 목표에 다가가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어떤 핍박과 불평등이 일어나도, 옛 억압자를 몰아내었다는 과거에 취해 스스로를 위로할 뿐입니다.



■ "동무들, 그거 혹시 동무들이 잠결에 꾼 꿈같은 거 아니오? 아니라고 확실히 장담할 수 있소? 동무는 그 결의에 관한 기록을 가지고 있소? 어디 그런 기록이 있소?" 아닌 게 아니라 그런 것이 문서 기록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사실이었다. 그럼 그렇겠지, 동물들은 자기들이 잘못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60p)


<1984>와 같이 <동물농장>에서도 객관적 증거에 대한 의문을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습니다. 기억은 주관적이고 왜곡되기 쉽기 때문에 믿을 수 없는 것이며, 사실을 증명해 줄 수 있는 것은 객관적인 자료와 기록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료들 역시 결코 객관적이라고 할 수 없으며, 언제든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 오웰이 지닌 문제의식입니다. 돼지들은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7계명을 수정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행동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다른 동물들은 객관적인 증거가 없어, 자신의 기억이 아닌 조작된 기록을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록을 빼앗긴 이들은 결코 권력을 무너뜨릴 수 없고, 주어지는 벌을 맹목적으로 믿고 따라야만 합니다.



■ 동무들, 이게 누구 소행인지 아시오? 밤중에 숨어들어 우리 풍차를 무너뜨린 적이 누군지 아시오? 스노볼이오, 스노볼! 이건 스노볼의 짓이오. (65p)  +  동물들은 완전히 겁에 질렸다. 스노볼이 마치 보이지 않는 유령처럼 허공을 떠다니며 온갖 위험한 일로 그들을 위협하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72p)


가상의 적을 만드는 일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매우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외부의 존재는 내부를 결속하면서, 개인의 주체성보다는 사회의 시스템에 따르는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강화합니다. 극한의 상황에서는 개인의 자유가 말살되고, 전체를 위해 희생되어도 타당하다고 여겨집니다. 나폴레옹은 모든 문제를 스노볼과 존즈에게 돌리면서 본인이 정한 규칙에 따를 것을 강요합니다. 개별 동물들은 외부의 적으로 물리칠 방법이 없기 때문에 권력층에 자신의 안전과 권리를 위임했습니다. 사회적 이익뿐만 아니라 개인의 안전과 삶의 모든 것을 권력층에 위임하고 나면, 구성원은 완전히 권력에 종속되고 맙니다. 



■ 계명은 <어떤 동물도 '이유 없이'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 된다>로 되어 있었다. 어찌 된 일인가. 그 <이유 없이>라는 두 단어를 동물들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81p)


동물농장의 법과 규칙을 적어놓은 <동물 7계명>은 다른 동물들의 예상과 달리, 권력층의 필요에 의해 얼마든지 수정되는 과정을 겪습니다. 하지만 동물들은 돼지들이 규칙을 조작하고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한 채, 그저 자신들의 기억이 온전치 않아서 생기는 문제라고 여길 뿐입니다. 이는 앞서 언급했던 '정보의 불균형'과 '구성원의 무지'가 가장 대표적으로 나타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부터 돼지들은 사회의 모든 법과 규칙을 스스로의 희망에 따라 조작할 수 있는 권위를 부여받기 때문입니다. 


우화에서 보이는 이 어리석은 동물들의 행동은 우리들과 얼마나 다를까요? 우리는 사회 시스템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법이 제정되거나 수정되어도 큰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잘 모르는 영역에서 발생하는 일을 이해하지 못하며, 심지어 그것이 의도적으로 조작되고 사용되어도 알 수 없을 것입니다. 동물농장의 동물들이 자신의 기억을 탓한다면, 우리는 정보의 불균형과 이해불가능성을 언급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경우라도, 사회 시스템의 특정층을 위해 사용될 수 있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 그러나 지난날 존즈 시절에는 사정이 훨씬 더 나빴던 것임에 틀림없다고 동물들은 생각했다. 그들은 즐거이 그렇게 믿었다. 게다가 존즈 시절에는 모두가 노예였지만 지금은 누구나가 다 자유롭지 않은가. 그거야 말로 엄청난 차이가 아닌가. 스퀼러는 언제나 이 점을 빼놓지 않고 지적했다. (99p)


추구해야 하는 이상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당장의 맹목적 목표에만 사로잡힌 동물들의 어리석은 혁명을 상징하는 장면입니다. 그들의 삶이 인간의 아래에서보다 나아졌다고 하더라도, 돼지가 집권하는 여전히 불평등한 사회를 허용할 수는 없습니다. 이들의 궁극적 목표는 '모두가 평등한 사회'를 구상하는 것이었고, 돼지들의 행태는 분명히 그에 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과거보다는 지금이 낫다"는 그들의 궤변에 넘어가 돼지들의 독재를 자발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지금은 누구나가 다 자유롭지 않은가'라는 표현에서 그들이 진실로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 있다는 무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문장을 읽으며, 러시아 왕권을 몰아내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한 소련 국민들이 느꼈을 감정과 자부심은 무엇이었을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적폐를 몰아냈다는 사실에서 엄청난 해방감을 느꼈을 것이라 예상하고, 그것은 곧 새로운 사회가 이전보다 절대적으로 나은 이유를 제공했을지 모릅니다. 그에 따라 소련 사회의 권력층이 지닌 행태들이 그들의 희열에 의해 상당 부분 가려질 수 있었을 것이라 예상하게 되었습니다. 



■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 (117p)


"네 발 동물은 좋고, 두 발 동물은 나쁘다."와 더불어 책에서 가장 유명한 문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평등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누군가에게 차별 없이 모두가 골고루 나누어 가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더' 평등하다는 말은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성립할 수 없습니다. 제가 이 문장에서 매우 큰 인상을 받았던 것은 '더' 평등하다는 표현을 통해 그들이 말하는 정의가 유명무실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명목상으로는 모두 평등하며, 어떤 동물도 노예로 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자유는 오직 문서 속에서만 존재하고, 실제 동물들은 여전히 피폐하고 모든 것을 빼앗기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기득권층은 인간에서 돼지로 변했을 뿐 실제로 변한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더 평등하다는 것은 곧 어떤 동물들은 여전히 하위 계층에 존재하며, 어떤 계층은 특권층을 가지고 있는 상황을,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평등해 보이는 사회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동물농장』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