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Clara 클라라
Mar 03. 2023
달리기가 늘 두려웠다
달리지 못해도 내 인생은 괜찮을 거다
달리기나 요가 등 하나의 운동을 20~ 30년 이상 꾸준히 해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존경심이 제일 먼저 생긴다. 곧이어 좌절감과 두려움이 따라온다. 일단 내 나이를 고려할 때 달리기를 20년 이상 못할 거라는 건 누가 봐도 자명하다. 그리고 생업이 아닌 것 중 오랫동안 지속해 온 게 없는 나의 과거를 돌이켜보면 달리기 또한 한 때의 변덕쯤으로 끝나버릴 가능성이 다분히 있다. '나의 달리기가 어느 날 문득 끝나버릴지도 모른다' 는 두려움과 '달리지 않는 내 인생은 의미가 없을거다' 라는 좌절감이 스멀스멀 찾아오더니 내 마음속에 또아리를 틀어버렸다. 그리고 나의 달리기에 위기가 찾아왔고 그 두려움을 정면으로 맞닥뜨려야 하는 순간이 왔다.
달리기 시작한 지 5개월이 지난 시점에 장염에 걸렸다. 평소대로라면 일주일 정도면 극복했을 병이 이번에는 한 달 반 이상동안 나를 괴롭혔다. 처음 며칠은 아픈 배를 억지로 달래 가며 뛰었다. 증세가 심할 때는 중단했다가 조금이라도 나아지면 다시 뛰었다. 여기서 달리기를 중단하면 다시는 못 달릴 것 같은 불안감 때문에 나를 몰아붙였다. 장염이 지속되면서 체력이 약해지니 5킬로미터를 뛰어야 한다는 자체가 공포로 다가왔다. 결과적으로는 어떻게든 뛰어냈지만 출발선 앞에 서면 이번에는 실패할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먼저 들었다.
허리도 아프기 시작했다. 왼쪽 허리를 쿡쿡 찌르는 통증이 생기더니 그 통증이 무릎과 발목의 관절까지 내려왔다. 예전 같으면 이 정도의 이상으로 병원을 찾아가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즉시 정형외과를 찾아가서 정밀검사를 받았다. 뼈는 튼튼하고 디스크도 아니며 근육이나 관절에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아픈 허리 때문에 걷는 것도 절룩거리는 지경이었지만 이상이 없다는 결과만 믿고 계속 뛰었다.
장염과 허리통증에 시달린 지 한 달 만에 뛰기를 중단했다. 마음이 아무리 달리라고 해도 내 몸이 더 이상 달릴 수가 없었다. 그런 와중에 코로나에 감염이 되었다. 이제는 한강으로 달리기 하러 나가면 나는 벌을 받게 되니 당연히 달리기를 중단해야 했다. 그 결정에 나의 의지나 선택이 관여할 틈이 없다.
그 순간부터 내 몸과 마음에 평화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3주 정도 달리기를 쉬었다. 스트레칭도 근력운동도 모두 접었다. 아픈 내 몸을 푹~ 쉬게 내버려 두었다. ‘여기서 그만두면 실패하게 되는 거야’라고 계속 다그치던 내 마음도 진정시켰다.
이 기간 동안 나는 내 몸을 유심히 관찰했다. 어떤 음식이 내 몸을 아프게 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음식을 한 가지씩 실험하듯이 투여해 봤다. 몸에 좋다고 믿었던 생야채나 과일이 나에게는 독이었고 특히 아침 공복에 좋다는 달걀이 나의 장염을 계속 악화시켰다. 장 건강을 위해 섭취했던 유산균 영양제나 요구르트 등이 내 약한 장에는 해가 되었다.
탄수화물, 특히 나쁜 음식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흰쌀밥이 나의 속을 편하게 했고 소고기나 돼지고기 등의 붉은색 고기가 내 몸을 기운 나게 했다. 야채는 익혀먹으면 탈이 없고 과일은 공복 때가 아닌 매 식사 사이에 먹으면 무난하게 내 몸에서 소화가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어떤 음식이든 첫 한 입에 향기로운 냄새가 나며 식욕이 돋으면 내 몸에 좋은 음식이고, 좋다고 알려진 음식이라도 불쾌한 기분이 들면 내 몸이 받아들이지 못한 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허리의 통증 양상도 분석해 보았다.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통증은 없지만 오래 쉰다고 해서 통증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걷거나 경사진 곳을 오르내릴 때 통증이 느껴지지만 그 통증 범위가 넓어지거나 통증 강도가 높아지지는 않는다. 달리기 자체가 허리 통증을 악화시키지는 않을 거라는 자의적 판단을 내렸다.
몸이 회복되기 시작하면서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스트레칭을 해봤더니 그동안 키워두었던 유연성이 몇 주 사이에 나빠지지 않았다는 게 느껴졌다. 근력운동을 다시 하면서 온몸을 살펴보니 그동안 저축해 두었던 근육의 손실이 크지 않은 것도 확인했다. 그리고 다시 트레드밀 위에 섰다. 달리기 앱의 처음 시작하는 플랜을 8개월 만에 다시 열고 5분간 달리기부터 시작했다. 달리기 시간을 서서히 늘려갔고 2주 만에 다시 30분을 달릴 수 있게 되었다.
이 회복 과정을 거치면서 달리기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달리기를 못하게 되는 미래의 그 시점을 미리 두려워하고, 그때가 되면 달리기로 인해서 달라진 내 인생이 무너질 것 같아 두려워하고, 달리기가 나의 몸과 마음을 구속할까 봐 두려워했다.
첫 번째 위기를 지나면서 나는 조금 더 현명해지고 강해졌다. 그리고 나 자신을 더 이해하고 믿게 되었다. 조금이라도 뒤로 미룰 수 있도록 애를 쓰고는 있지만 내가 달리지 못하게 되는 그날이 오긴 할 거다. 그때 나는 수영을 하거나 ‘차차차’ 춤을 추고 있을 것 같다. 아니면 광교 산자락의 숲 속 길을 걷고 있을 것도 같다. 적어도 나 자신을 비하하며 소파에 누워 탄식만 하진 않을 자신이 있다.
달리지 못해도 내 인생은 괜찮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