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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ra 클라라 Feb 22. 2023

달리기 하는 시인

달리면서 글쓰고 글쓰면서 달린다


더러는 옥토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는 오직 이뿐!    

 

더욱 갑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 제,

나의 가장 나아종 지닌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눈물, 김현승        


사춘기 때 김현승 시인의 ‘눈물’을 읽고 나서 나는 소위 말하는 ‘문학소녀’가 되었다. 눈물을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라고 표현할 수 있다니, 그때부터 시인들은 나의 우상이었다.

     

대학생일 때 한 동아리에서 책을 읽고 토론을 했다. 80년대 학번의 대학생들에게는 다양한 책들을 읽고 사고를 넓힐 수 있는 자유가 없었다. 음지에서 어둠의 경로로 입수한 책들을 읽던 운동권 학생들의 책 목록과는 또 달랐지만 우리들에게는 ‘어둠의 자식들’,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등의 사회적 부조리가 주제인 책들이 필독서였다.  

    

어느 날 나는 김승옥 작가의 ‘무진기행’과 ‘서울, 1964년 겨울’을 읽었다. 그 감수성, 그 표현력, 그 문체라니. 난 김승옥 작가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김현승 작가와 김승옥 작가 때문에 정작 나는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안간힘을 써서 몇 줄을 끄적거려 보면 유치한 문장들만 남을 뿐이었다. 그들처럼 쓸 수 없는데 글을 쓰는 건 세상에 쓰레기를 더하는 행위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글을 써볼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용기를 얻게 된 것은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흐른 후에 한 웹소설을 읽고 나서였다. 그 단순하고 유치한 표현, 그 과장된 전개, 그 진부한 클리셰라니. 혀를 끌끌 차며 읽다가 말았는데 그게 베스트셀러라고 했다. ‘왜 이렇게 가벼운 세상이 된 거야!’라며 꼰대 세대다운 한탄을 하는 중에 나의 내면에서 은근한 희망이 싹트고 있는 걸 느꼈다.  

    

내가 글을 쓴다면 그것의 주제는 단연코 ‘달리기’여야 했다. 영어선생으로 살아온 세월이 짧지 않으니 영어 학습에 관련된 이야기 또는 두 아이를 키우며 겪은 국내와 미국의 입시에 관련된 이야기가 더 전문성이 있을 텐데 왜 나는 달리기를 이야기하고 싶을까? 20~30년 이상의 경력을 갖고 국내외의 유명마라톤 대회에서 풀코스를 수십 차례 완주해 낸 마라토너들도 침묵하고 있는데 풀코스는커녕 10킬로미터 부문에 딱 1번 참가했을 뿐인 초초보 러너주제인 내가 무슨 객기로 달리기 이야기를 하겠다는 걸까?   

  

‘가벼운 세상’이 내게 용기를 준 것 같다. 프로여야만, 적어도 프로에 근접한 사람만이 얘기할 자격이 주어지는 세상이 더 이상 아닌 것 같다. 사람들은 어설픈 아마추어들에게도 박수를 보내는 것 같다. 그 아마추어들이 뜨거운 가슴으로 진짜 이야기만 하고 있다면.   

     

내 자신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왜 달리고 있는지, 왜 계속 달리고 싶은지를.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아직까지 알지 못한다. 누가 달려야 한다고 등 떠민 적이 없다. 달리기를 안하면 생계가 곤란한 것도 아니고 건강에 큰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달리기가 즐거움만을 주는 것도 아니다. 고통스럽게 느낀 순간도 많았고 두려움이 몰려들 때도 자주 있었다.  

    

“Because it is there” (산이 거기 있으니까’) 산에 왜 오르는지에 대한 질문에 영국의 한 유명 산악인이 이렇게 대답했다. 왜 달리냐는 질문에 나도 이런 식으로 밖에는 답할 수가 없다. ‘달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달린다.’ 무심코 트레드밀 위에서 걸어봤고, 어쩌다 보니 30분 동안 달릴 수 있는 훈련을 해내게 되었고, 한강변에 달릴 수 있는 길이 있었고, 아침이면 버릇처럼 러닝화의 줄을 묶고 있었고, 5킬로미터 달리기를 끝낸 내 모습이 대견스러울 뿐이었고, 달리지 않는 미래의 내 모습은 상상하기 싫을 뿐이었다. ‘내 한계를 시험한다, 도전 정신을 기른다, 인생을 바꾸겠다’ 따위의 거대한 의도는 결단코 없었다.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한 가지 단서는 있다. 얼마 전에 ‘행복’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행복이란 실체가 없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정의될 수 있고 정답도 있다’라는 것이 강의의 핵심이었다. ‘행복’은 관념적인 생각이나 가치가 아닌 구체적인 ‘pleasure, 쾌의 합’이라는 것이다. 소소한 pleasure (쾌)를 자주 느끼는게 행복이란다. 그리고 이 pleasure를 느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변수는 ‘외향성’ 이라고 한다.   

   

성격유형검사(MBTI)의 결과로 판단하면 나는 내향적인 인간이다. 행복해 질 수 있는 가장 큰 변수를 잃었으니 나는 행복해지는데 아주 불리한 입장이다. 작더라도 많은 행복변수들을 찾는 노력을 할 수밖에 없다. 5킬로미터 달리기의 끝은 성취감이고, 그 성취감이 주는  pleasure는 작지 않아서 상쾌한 기분을 하루 종일 유지시켜준다. 그 pleasure를 일주일에 3~4일은 느끼고 있으니 나에게 꽤 큰 행복의 변수를 선물해주고 있는 셈이다.     

 

‘달리기’라는 단어를 연상하자마자 내 머리 속에서 수많은 생각들이 폭포처럼 쏟아져 나오며 발화시켜 달라고 아우성을 친다. 얼른 카테고리를 만들어 그 생각들을 각각의 방에다 분류시켜 놓고 나니 많은 재물을 창고 속에 쌓아놓고 자물쇠를 채워놓은 것 같이 든든하다. 방을 하나씩 열어 아무렇게나 쌓여있는 단어와 문장들을 이리 저리 엮어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는 이 작업이 나에겐 많은 의미와 pleasure를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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