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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ra 클라라 Feb 21. 2023

11월 아침의 잠원 한강 공원은..

만추의 한강변에서 아침마다 나는 나르시시스트가 된다.

     

 “잘했어!” “정말 대단해!” “오늘도 해냈구나!”라고 소리 지르며 자신의 얼굴과 머리를 쓰다듬고 가슴을 어루만지는 초로의 여자가 있다. 

아담한 키에 빈약한 몸매지만 반 팔 티셔츠와 짧은 팬츠 사이로 제법 단단한 근육질의 팔과 다리가 드러난다. 온몸은 땀으로 젖어있고 호흡은 여전히 가쁘지만 그녀의 얼굴은 기쁨으로 반짝거리고 있다. 이 여자가 바로 '나'다. 잠원 한강 공원에는 넓은 잔디밭을 가운데로 두고 그 둘레로 400미터 정도 길이의 트랙이 있다. 그 위에서 나는 12바퀴 반, 5 킬로미터의 달리기를 끝낸 자신을 축하하고 칭찬하는 아침 행사를 벌인다. 별난 구경이라도 벌어졌다는 듯이 걸어가는 무리들이 힐끗~ 쳐다보지만 행복한 나는 그 시선들조차 고맙다.  

   

후드 달린 코트를 머리부터 뒤집어쓰고 잔뜩 움츠린 채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한 처자가 마지못해 걷고 있다.

엄마에게 등짝 한 대 맞고 운동하라고 내쫓긴 게 분명하다. 아침잠 이겨내고 한강변에 나온 것만으로도 기특하다. 40대 부부 한 쌍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트랙을 돌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아침에 여유가 있다는 게, 그리고 그 여유를 함께 즐긴다는 게 신기하고 부럽다. 초로의 신사들이 3~4명으로 무리 지어 진지한 대화를 나누며 트랙 위를 걷는다. 귀동냥으로 전해지는 오늘의 주제는 주식이다. 조찬모임의 퇴직 후 버전 같다. 세 마리의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부지런한 총각도 있다. 잔디밭에서 잠시 목줄로부터 풀려난 녀석들은 그 행운이 어리둥절한지 방향도 못 잡고 껑충거린다. 집에서 무료함에 겨워 발가락만 핥고 있을 내 강아지 ‘밍키’ 생각에 미안해진다. 정장 슈트를 단정하게 입고 운동화를 신은 30대 여자가 생각에 젖어 걷고 있다. 그녀는 분명 유능한 직장인일 거다.   

    

트랙을 벗어나서 한남대교에서 잠수교까지의 도보 길을 왕복으로 달리는 날도 있다.

옆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자전거 크루들의 단단한 근육을 훔쳐보면서 나도 속도를 더 내본다. 만추의 한강변은 낙엽으로 덮여있다. 그 위를 뛰어가는 내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 같이 근사할 거라며 믿고 잠시 나르시시스트가 되어 본다. 같은 시간에 같은 지점에서 늘 만나는 한 러너에게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파이팅!”을 외친다. 그 파이팅 소리에 나 자신이 더 용기를 얻는다.  

    

한강공원 편의점 근처는 살찐 비둘기들과 까치들 그리고 까마귀들이 주인이다. 

먼저 피하지 않기에 내가 그들을 조심히 피해 가야 한다. 휴일 다음날의 그곳은 몸살을 앓는다. 새들은 더욱 극성을 부려 도로의 점령자가 되어서는 풀어헤쳐진 음식물쓰레기로 만찬을 즐기고 있다. 턱없이 부족한 쓰레기통들이 도로 게워내는 쓰레기가 길바닥 여기저기서 나뒹굴고 쓰레기와의 한판 전투를 벌이는 공원관리자들은 힘이 달려 보인다. 괜히 미안한 마음에 가쁜 호흡을 자제시키며 조용히 그들 곁을 지나간다.      


강변의 마지막 꽃이었던 백일홍이 요란한 기계소리와 함께 잘려나가고 있다.

알록달록 화려한 꽃들을 감상하는 것도 뛰는 즐거움 중의 하나였기에 쓸쓸함이 밀려온다. 마른풀들만 남아있는 빈 화단을 바라보며 내년 봄에 심길 꽃들을 상상해 본다. 튤립과 수선화라면 정말 좋겠다.

     

잠수교 남단 끝이 반환점이다.

한강에서 가장 인접한 길을 택한다. 태극기와 고운 빛깔의 생화들 사이로 한 앳된 청년의 모습이 사진 속에 담겨있다. ‘손정민’, 내가 부모라서 그의 부모의 절망과 슬픔이 먼저 와닿는다. 다른 진실이 있다면 그 진실이 밝혀지기를, 정민이가 하느님 나라에서 안식을 누리기를, 애끓는 부모에게 하느님의 위로와 평화가 함께 하기를 기도하며 성호를 그어본다.

     

돌아올 때는 피곤해진 종아리 때문에 콘크리트의 길 상태를 원망한다. 나이 먹은 나의 관절이 걱정되고 올해 내가 냈던 세금을 따져보게 된다. 한남대교 교각 밑에 마련된 다양한 운동기구 위에서 스트레칭이나 가벼운 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 두 감정이 교차한다. 여유로운 표정으로 담소까지 나누는 그들을 보면서 ‘왜 나만 달려야 해! 내 팔자야~’라는 한탄이 먼저 나온다. 내 두 발이 동시에 공중에 떠 있는 걸 감지하는 그 순간의 파워풀한 느낌을 억지로라도 소환해서 ‘뿌듯함’으로 얼른 바꾼다.

     

마지막 200 미터를 전력질주하며 5 킬로미터의 달리기를 끝낸다. 

달리는 내내 잔소리만 해대던 달리기 앱 속의 남자가 멋진 목소리로 ‘You’ve done!’, ‘Great!’하며 마구 칭찬해 준다. 한껏 고무된 나는 소리를 지르며 온몸으로 기쁨을 내뿜는 자축의식을 하고 나서야 잠원 한강공원을 떠난다. 이 기운을 그대로 간직해서 하루를 살아내는 에너지로 쓰고, 남은 건 다음 날을 위해 비축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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