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평생 유일하게 1년 가까이 꾸준히 해오고 있는 운동이 ‘달리기’이다. 한여름의 뙤약볕 아래서도 한 바가지만큼의 땀을 쏟아내며 달렸고, 겨울 내내 그 무심한 트레드밀 위에서의 지루한 달리기도 견디어냈다. 달리기가 재밌냐고 물으면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좀 더 솔직히 얘기하면 재미는 없는 것 같다. 나의 달리기가 언제든지 중단될 수 있는 위험에 처해있다는 의미이다. 그 위험에 대처하기 위한 두 가지 방도를 마련해 두었고 아직까지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첫 번째는 ‘나 요즘 달리기 해~’라고 여기저기 자랑해 두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의 평가와 시선에 마음을 많이 쓰는 사람이다. 사람들에게 내가 달리기를 한다는 걸 말해두면 다음번에 만날 때 그들은 꼭 물어본다, 아직도 달리기를 하고 있냐고. 그때 ‘이제는 안 달려’라는 말을 하게 된다면 속된 말로 진짜 쪽팔릴 것 같다. 남의 시선 때문에라도 나는 달리기를 계속할 수 있도록 장치를 해두고 있는 거다.
두 번째는 마라톤 대회에 참가 신청을 해두는 것이다. 유명한 메이저 마라톤 대회뿐 아니라 지역별, 테마별로 달리기 대회가 정말 많다. 풀코스나 하프코스는 아예 엄두도 못 내고 10km 부문에 1~ 2달 간격으로 신청해 둔다. 막상 당일이 되면 사정상 참가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자주 있지만 달리기를 계속하게 해주는 역할은 제대로 해주고 있다.
나의 첫 번째 마라톤 대회는 맑고 따뜻한 10월의 어느 날에 열렸다. 네 명의 친구들과 함께 참가했다. 첫 대회다 보니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옷은 어떻게 입어야 할지, 아침 식사는 무엇을 얼마큼 먹고 가야 할지, 준비운동으로 몸을 풀어줘야 할지 아니면 몸을 쉬게 하는 게 좋은지... 머리가 복잡했는데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42.195 km 풀 코스를 뛰는 것도 아니고 하프도 아니고 고작 10km, 그것도 힘들면 5km만 달리겠다고 마음먹고 있는 신세인데 걱정은 보스턴마라톤 풀코스에 참가하고 있는 것 마냥 하고 있었던 거다.
마라톤 대회장은 축제장이었다. 유명가수와 프로야구 치어리더팀이 나와서 분위기를 돋우고 있었다. 대회 티를 입고 기록체크를 위한 칩을 달고 관절을 가볍게 풀며 주위를 돌아보니 군살 없는 상체와 단단한 다리를 드러낸 중년 이상의 여자마라토너들이 많이 보인다. 한강변에 나가보면 걷는 사람은 많아도 뛰는 사람은 적다. 여자가 뛰는 건 더 드물고, 특히 내 나이대의 여자가 뛰는 것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내가 알고 있고 경험한 세상이 다가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다.
출발을 알리는 총소리가 터졌다. 일부의 사람들이 튕기듯 내닫는 것을 한참 동안 바라보며 응원의 소리만 지르고 있었는데 나도 뛰었어야 하는 거다. 10km 주자들이 먼저 출발하고 5km는 다음 순서였다. 10km를 신청한 친구와 나는 허겁지겁 앞서간 사람들을 뒤쫓기 시작했다. 1km 지점쯤 되니 내 달리기는 안정을 찾아가는데 친구는 쳐지기 시작한다. 한강변의 평지에서만 달리기를 해온지라 경사가 있는 코스는 좀 힘들었다. 멀리 언덕이 보이면 겁부터 덜컥 났지만 그 언덕을 넘어가면 내리막이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몸소 경험했다.
늘 혼자서만 뛰었는데 무리를 이루어 함께 뛰는 느낌이 확실히 달랐다. 동지애 속에서 응원과 위로를 받는 기분이었다. 3km도 채 달리지 않았는데 반대편 길에는 반환점을 돌아오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선두에는 여자도 있었다. 그 멋진 모습에 ‘파이팅!’과 함께 기괴한 샤우팅이 내 입에서 쉴 새 없어 나왔다.
일정한 간격으로 남은 거리와 방향을 알리는 이정표가 있다. 5km와 10km를 가르는 갈림길에 도착했다. 직진하면 10km, 좌회전하면 5km 길이었다. ‘무리하지 말고 축제로서 즐기자~’라는 마음을 먹고 좌회전 선으로 들어왔는데 내 다리가 어느 순간 직진 길로 달리고 있었다. 내 마음은 그 사이에 변심해서 ‘못 먹어도 고!’를 외치고 있었고.
5km 이상을 달려본 적이 없었기에 10km가 어떤 거리인지 나는 가늠할 수가 없었다. 금세 타협을 했다. 6km까지만 달리고 그다음부터는 걷기로. 6km가 지나도 호흡이나 다리가 괜찮은 걸 확인하고는 1km마다 다시 목표를 세웠다. 9km를 달리고는 피니쉬 라인에 도달할 내 모습을 상상해 봤다. 우아한 모습으로 그 라인을 통과하고 싶었다. 1km를 남기고 뛰기를 멈추고 걸으며 모자를 고쳐 쓰고 머리와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남은 500m 지점에서 내내 뛴 것 같은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다시 달리기 시작했고, 피니쉬 라인이 보이면서는 전력질주를 해서 10km 달리기를 마무리 지었다.
내 생애 최초의 장거리 달리기 대회였고 나는 목표한 대로 완주를 해냈다. 이 기쁨을 무엇에 비교할까, 아이들이 대학에 합격하고 큰 아이가 원하는 직장에 들어갔을 때 이만큼 기뻤을까. 남편이 진급을 하고 좋은 자리를 제안받았을 때의 기쁨이 이 정도였을까? 기쁨의 크기가 비교될 수는 없겠지만 수상쩍은 다른 감정이 끼어들지 않고 순수하게 기쁘기만 했던 순간은 이때뿐이었던 것 같다. 내 온몸과 온 마음이 정말 기쁘다는 것을 정직하게 표현하면서 소리 지르고 팔을 치켜들어 만세를 하고 발을 굴리며 환호한 유일한 순간이었다.
나의 10km 달리기의 첫 기록은 1시간 4분! 빠른 건지 느린 건지, 같이 뛴 사람들 중 몇 등이나 한 건지는 알 수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이 기록이 대견했다. 공식기록 인증서를 프린트해서 액자에 넣어서 잘 보이는 선반 위에 메달과 함께 올려두었다. 지금도 수시로 들여다보고 먼지를 닦아주고 윤을 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