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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ra 클라라 Feb 17. 2023

나는 달리기 하는 여자야

쉰아홉에 달리기를 시작한 여자 이야기

아홉에 달리기를 시작해서 10개월째 달리고 있다. 이틀에 한번 5킬로미터씩 30분 정도 달린다. 러너라고 부르기에 낯간지러운 거리와 시간이지만, 지인을 만나거나 첫 모임에서 내 소개를 해야 할 때 나는 꼭 ‘나 요즘 달리기 해요~ ’라고 말한다. ‘달리기 하는 사람’에 담긴 이미지로 사람들이 나를 이해하고 기억해 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단하다’라고 말하면서도 ‘나이 생각 못하네, 관절에 무리가 갈 텐데’라는 염려의 표정은 숨기지 못한다. 그들이 염려하는 문제점들을 물론 겪고 있지만 나는 달리면서 극복해내고 있다. 내 나이 때문에 달리기를 멈추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남편과 나는 모든 공적인 짐을 내려놓고  전원에 집을 마련하고 은퇴자로서의 여유로운 삶을 누리고 있었다. 텃밭도 가꾸고 근처의 산을 함께 오르기도 하면서 꿈꾸던 제2막의 인생을 시작했다. 더불어 ‘조그만 동네에 벽면을 영어동화책으로 가득 채운 조그만 영어 도서관을 열어서 동네 꼬마들을 모아놓고 동화책을 읽어주고 싶다’ 던 나의 오랜 꿈도 실현했다. 꿈이 너무 쉽게 이루어진 게 문제였을까. 남편이 예상하지 못했던 자리를 제안받고 졸지에 서울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다. 압박감을 느꼈던 나는 피난처가 필요했고 그게 달리기였던 것 같다.    

  

새로운 거주지에 트레드밀이 있었다. 무심히 올라가서 걸어보는 내 표정이 딱해 보였나 보다. 작은 딸아이가 달리기 훈련 앱을 소개해주었다. 1분간 뛰고 2분간 걷기를 시작으로 일주일에 3번, 하루 30분씩 24회를 하고 나면 연속으로 30분 달리기가 가능해지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이었다. 1분을 뛰어보니 달리기는 도저히 내가 해낼 수 있는 운동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다. 30분을 뛰게 되는 날은 절대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하루하루 그 프로그램을 따라갔다. 정확히 8주 뒤에 나는 30분을 쉬지 않고 달려냈다. 그리고 어느 여름날 새벽에 한강변으로 달려 나갔고 그때부터 러너로서의 나의 삶은 시작되었다.    

  

이불을 박차고 나와 운동화의 끈을 묶고 현관문을 열었다면 러너가 되기 위한 여정의 반 이상은 해낸 것이다. 다음은 굳은 의지를 갖고 많은 에너지를 들여 한 달을 유지해야 한다. 그 한 달 사이에는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내 몸 여기저기서 오늘 달릴 수 없는 이유를 찾아낸다. 감기 몸살 기운이 있거나, 코로나 증세를 보이거나, 관절이 삐걱대거나, 맥주를 과음했거나, 잠이 부족하거나, 이도 저도 아니면 ‘오늘은 도저히 달릴 수 있는 기분이 아니야’라는 결론이라도 낸다. 날씨도 한몫한다. 너무 춥지 않으면 덥고, 바람이 불고, 비나 눈이 오고, 미세먼지가 심하다. 상쾌하고 푸르른 날도 적당한 날씨가 아니다. 달리기보다 훨씬 중요한 일들이 줄지어 생겨나기도 한다. ‘난 이 소중한 아침 시간에 달리기 같은 사소한 걸 할 사람이 아니야’라고 소리도 지르게 된다. 이 모든 것들을 이겨내고 1달 정도 달리면 체중이 감소되고 하체 근육이 단단해지는 등 신체에 긍정적인 변화가 느껴진다.      


이제는 달리기가 하나의 습관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훨씬 적은 에너지를 들여서 계속하는 힘만 유지하면 된다. 2~3 개월 정도 달리면 ‘난 달리는 사람’ 이야 라고 여기저기 말하고 다닌다. 달리기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고 달리기 하는 나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자화상이 자리 잡는다. 오랫동안 달고 다녔던 나쁜 버릇이나 중독에서 벗어나기도 하고 화를 내거나 충동적인 짓을 하는 횟수가 많이 줄어든다. 4~5개월쯤 되면 달리기에 대한 자신감이 최고도에 다다른다. 달리기를 사랑하게 되고 지구 어디라도 달려갈 수 있을 것 같다. 6개월쯤 되면 위기가 찾아온다. 초기에 맹렬하게 에너지를 쏟아낸 후유증이 하나 둘 드러난다. 몸 여기저기에서 문제가 생겼다는 신호를 보내오고 눈에 띄는 진전이나 성과를 보이지 않는 달리기 자체에 대한 회의가 찾아온다. 그러나 습관이 된 달리기가 멈춰지지는 않는다. 달리면서 문제점들을 찾아서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10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다.

     

달리기를 끝낸 후의 성취감은 그 어떤 것보다 크다. 한껏 자신을 칭찬해 주고 축하해 준다. 머리와 얼굴을 쓰다듬고 가슴을 다독이면서, “또 해냈네, 역시 너야, 정말 대단해~!”라고 외친다. 이런 세리머니를 일주일에 3~4번을 하고 있다. 이 축하의식이 하루를 힘내서 살게 하고 일주일을 버티게 해 준다. ‘나 5킬로미터 달리는 여자야’라는 자신감이 내 의식 밑자락에 굳게 자리를 잡고 있다. 남들로부터 부당한 공격을 받는다고 느낄 때,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 생기고 자존감이 상처를 받을 때 이 자신감이 방어기제로 작용한다.

     

달리기는 내 몸과 정신을 긍정적으로 변화시켰다. 무엇보다도 남편과 아이들 중심의 삶에서 나 자신이 중심이 되는 삶으로 인생에 대한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어주었다. ‘내 인생은 달리기 전과 달리기 후로 나뉘는 것 같다’라고 나는 말한다. 나는 자신을 살뜰하게 보살피며 살아온 사람이 아니었다. 필요한 것도 원하는 것도 많지 않았고 내가 충족되면 가족들에게 돌아갈 몫이 적어지기라도 하는 양 나를 위해 돈과 시간을 쓰는 것을 아꼈다. 나의 성공과 행복은 염두에 없었다. 아이들과 남편이 기뻐하면 그게 내 성공이고 행복이었고 그들이 좌절하면 그게 내 실패였다. 그런데 갱년기의 신체 증상이 찾아오면서부터일까, 나는  자꾸자꾸 화를 내고 있었다. ‘내가 드디어 미쳤구나’ 싶을 만큼 화를 내는 순간도 있었다. 내가 불치병에 걸려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쯤 달리기를 시작했다.  

   

달리기는 내 인생에서 나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최초의 경험을 하게 해주고 있다. 잘 달리려면 잘 먹어야 하니 나를 위해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들고 있다. 철 따라 운동복과 장비를 계속 구비해야 했고 신체적인 변화에 따라 옷과 가방과 구두와 액세서리도 새로 장만했다. 달리기를 하면서 발견하게 되는 나의 새로운 모습이 낯설면서도 대견해서 글쓰기도 시작했다. 어느 날 문득 내가 더 이상 화를 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엇 때문에 나는 그렇게 화가 났던 걸까? 내 인생에 정작 내가 없어서 그랬던 것 같다. 내 자아가 ‘나 여기 있어, 나 좀 보살펴줘~ ’ 하고 비명을 질렀던 것이다. 이제 그 자아가 고분고분해진 거 같다.   

   

평생을 안고 살았던 나의 약점들이 예순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극복되는 것을 목격하는 것도 기쁘고 대견하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손톱을 물어뜯는 습관이 있었다. 손톱깎이가 필요 없었고 평생 동안 매니큐어를 발라보질 못했다. 발 상태는 더 심각해서 피가 날 때까지 발바닥의 살들을 뜯어내고 있었다. 달리기를 시작하고 2달 정도가 지났을 무렵에 나는 내 발에 상처가 없어지고 짜리 몽땅하기만 했던 내 손톱이 예쁘게 자라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평생 나를 괴롭혔던 나쁜 습관에서 벗어난 것이다.

      

달리기는 나를 계속 성장시켜 주고 종내에는 성숙한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해 준다. 달리기는 철저히 개인적인 운동이라서 언제 어디서 얼마만큼 어떤 속도로 달릴지를 내가 선택한다. 달릴 때 느껴지는 고통, 즐거움, 성취, 아쉬움 등도 남과 나누지 않는 나만의 감정이다.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또는 한계를 극복하며 오늘의 나를 어제의 나와 경쟁시키는 운동이다. 치열한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달리기가 끝난 후의 성취감과 즐거움을 기대하며 인내하고 단련하며 절제하는 과정을 통해 나는 오늘도 성장했음을 느낀다.     


쉰아홉 살에 달리기를 시작했으니 애초부터 달리기는 나에게 분수에 맞지 않는 운동이었고 시작과 동시에 퇴보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얼마큼 멀리 그리고 빨리 달릴 수 있는지를 내 욕망이나 목표가 아닌 내 무릎과 발목과 의논하는 처지이다 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앞서 달려 나가는 모습을 바라보아야 한다. 조금이라도 뒤로 미룰 수 있도록 애를 쓰고는 있지만 달리지 못하게 되는 그날에 대한 두려움도 항상 있다. 이쯤에서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왜 달리기를 시작했는지, 왜 달리고 있는지, 왜 계속 달리고 싶은지를. ‘오늘 달리면 내일도 달릴 수 있을 것 같아서 달린다.’라는 하나의 답이 나온다. ‘성숙한 인격체로서 세상의 끝 날을 맞이하고 싶어서 달린다’라는 답도 생각난다. 완주 후에 느껴지는 행복감은 소소하지 않으니 ‘행복해지기 위해 달린다’라는 답까지 얻는다.


나의 달리기에도 목표가 있다. ‘달리지 못해도 내 인생은 괜찮아!’라고 순하게 말하게 되는 그날까지 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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