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따라 길따라 3- 여주 파사성에서
한여름 장마철이라기보다 열대지역 우기에 가깝다는 느낌이다. 순식간에 쏟아붓는 집중 호우와 온 세상을 뜨겁게 달구는 폭염이 수시로 반복된다. 월악산 영봉을 가볼 생각이었는데 천둥 번개까지 동반한 소나기가 예보되어 포기했다. 대신 여주 파사성을 택했다. 둘레길 정도로 가볍게 둘러볼 수 있는 코스라 생각해서.
파사성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길을 따라 올라갔다. 생각보다 가파른 길이었다. 산성을 오르는 건 성을 쌓은 산을 오르는 거라는 걸 왜 몰랐던가? 주차장에서 파사성 남문을 지나 정상까지 가쁜 숨 몰아쉬며 올라갔다. 집중 호우의 영향으로 비포장 비탈길 여기저기로 물이 흘러내렸다. 삼십여 분 정도 올라 파사성 남문지에 도착했다. 때마침 구름 뒤덮인 하늘이 열리더니 뜨거운 햇살이 사정없이 쏟아졌다.
성벽을 따라 파사성 정상으로 가는 길, 더위 피할 수 있는 연인 소나무 그늘은 먼저 온 분들이 있어 잠시 들러 흐르는 땀 닦고 물 한 모금으로 목 축이고 올라갔다. 정상 쪽에서 내려오는 젊은 남녀가 땀에 흠뻑 젖어 내려온다. 앞선 남자를 따라 내려오는 아가씨는 얼굴도 발갛게 달아올랐다. 바람 한 점 없는 땡볕에 양산도 모자도 없이 내려가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맑고 푸른 날씨 덕에 성벽을 따라 오르며 내려다본 경치는 최고였다. 남한강과 섬강을 품고 서울로 흘러가는 여강의 휘어진 물줄기, 물줄기 가로지른 이포대교, 강줄기 따라 형성된 마을의 자태가 선명하다. 제 용도를 다한 파사성은 말이 없지만, 여강 물줄기는 여전히 서울로 흘러가며 사람들의 삶을 좌우한다. 때로는 잔잔한 모습으로, 때로는 진흙탕 물결이 되어 ….
파사성 정상에 도착하니 믿기 힘든 상황이 보였다. 중년쯤 되어 보이는 남성이 땡볕에 웃통을 벗은 채 운동하고 있었다. 햇볕에 노출된 구릿빛 상체로 줄줄 땀이 흐르고 있었다. 서 있기만 해도 땀이 나는 불볕에서 운동이라니 …. 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혔다. 얼른 시선을 성 주변으로 돌려 탁 트인 경관을 보니 숨통이 트였다.
해발 230.4m의 낮은 산이지만 성벽 아래 마을과 강줄기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요지였다. 한강 유역을 차지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던 삼국시대까지 파사성은 전략적 요충지였다. 한반도에 통일국가가 등장하면서 한강 유역의 군사적 중요성이 점차 감소했다. 이런 연유로 파 사성은 방치되었다가 임진왜란 때 승병들에 의해 복구되었다. 성이 더 이상 군사적 요충지로의 기능을 할 수 없게 되면서 파사성도 쇠락했다.
현재 파사성은 여주를 대표하는 관광 명소로 알려져 있다. 산성에서 내려다보는 여강 일대 풍경은 해 질 녘 노을 풍경, 달빛 비친 성벽 풍경, 한여름 소나기 내릴 때 풍경 등 때에 따라 다른 느낌으로 다가와 사진 애호가들의 발길이 잦다. 하지만 풍경을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이 모두 같지는 않을 터. 망국의 설움을 안고 이곳에 머물던 이색은 파사성에서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자신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하늘 뜻은 응당 만물을 살리거니와
농사일은 꼭 제때 해야 하거늘
용은 깊은 못에 오래 누워만 있고
한번 일어남이 어찌 그리 더딘가?
- 이색, 파성망우(婆城望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