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브런치나 블로그에 내가 올린 글의 조회 정보를 본다. 특이한 사항이 몇 가지 보인다.
분명 방문자 수는 10명 안팎인데 조회 수가 수십 건이 넘는다. 인터넷에서 정보 검색을 하고 들어와서 아주 오래전에 올린 글들을 조회하는 것이 보인다. 연령 분석을 해보니 나이가 아주 어린 10대나 20대다. 공부하는 학생들로 추정된다. 그들이 주로 보는 것은 영어나 독서법에 관한 글이다.
이런 젊은이들이 내 글을 볼 때면 언제나 기분이 좋다. 학교 선생이나 학원 강사는 꿈도 못 꿔 본 나로서는 아주 큰 영광이다. 정규 교과과정에서는 거의 들어보지 못한 뜨내기의 주장이지만 나름 일리가 있다는 반증의 표현으로 간주하니 왠지 어깨가 들썩여진다. 견강부회(牽强附會)나 아전인수(我田引水)라 치부해도 난 괜찮다.
아무튼, 그 기운을 받아 오늘도 내 생각을 정리해서 올린다.
나는 늘 이 블로그에서 남들이 잘 동의하지 않은 그리고 세상에 없는 나만의 주장을 펼치려고 애쓰고 있다. 읽는 분들이 내 의견을 따르던 그렇지 않던 전혀 개의치 않는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또 그 잣대를 바탕으로 내 스스로 몸과 맘과 얼을 움직이면 될 일이다.
내가 여기에서 주장한 것 가운데 대표적인 것을 다시 써 본다.
1. 우선, 나는
『인문학(문학+역사+철학)을 공부 후에 반드시 법학(민법)과 경제학(금융)으로 연결해야 실학(實學)이 된다!』고 주장했다.
2. 다음으로, 나는
『나를 둘러싼 바깥 세계를 옳게 읽고 내게 알맞은 삶을 살고자 독서한다. 그러나, 책은 삶이라는 실전문제의 연습 문제집일 뿐이다.
덧붙이면, The Economist (Financial Times) 따위에서 뽑아낸 시대정신(Zeitgeist)이 시험문제이고,
그 정답을 찾는 과정이 삶이며,
책(정치학•경제학•철학•법학)은 곧 수험서다.』라고도 주장했다.
오늘 쓸 이야기는 위의 두 번째 주장에 대한 나의 어설프고 허술한 증명책임의 이행이다.
오늘 아침에 아주 친한 친구한테서 카톡을 받았다. 그 내용은 Chat GPT가 불러온 교육현장 변화라는 제목으로 연세대 정보대학원 이준기 교수가 신문에 기고를 한 내용을 스크랩한 것이다.
내용을 간추리면,
AI의 유용성은 인정하면서도 반드시 사실 여부에 대한 검증이 필요한데 앞으로의 세상은 AI를 이용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누어진다고 한다.
이 글의 주장에 대하여 옥신각신할 생각은 없다. 그렇게 하기엔 해당 분야에 대한 나의 지적 내공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런데도 내가 이 글을 남기는 까닭은 이와 같이 급속도로 변하는 세상의 한가운데서 주요한 변화의 흐름을 읽어 내고 또 그 시대정신(Zeitgeist)을 찾아내서 스스로의 삶에 알맞게 맞추어 가는 것이 공부라는 사실을 나타내고자 함이다.
최근 들어 나는 The Economist나 Financial Times에 AI와 관련한 기사가 눈에 보이면 보이는 대로 모조리 읽어본다.
(곁에 있는 친한 사람들에게 ‘나는 대한민국에서 The Economist와 Financial Tmes를 처음부터 끝까지(from cover to cover) 다 보는 거의 몇 안 되는 사람이라 너스레를 떤다.)
그리고 AI가 앞으로 가져올 세상의 변화에 관하여 세계의 석학들의 통찰력을 눈여겨본다. 그러한 방법의 일환으로 얼마 전에 그들이 쓴 The Age of AI and Our Human Future(by Henry Kissinger, Eric Schmidt, Daniel Huttenlocher)도 사두었다. 시간을 내서 꼭 읽어볼 생각이다.
또 이들을 뛰어넘어 18세기 산업혁명 시대에 공장기계들의 출현으로 자본(Capital)에 맞선 인간 노동(Labor)의 앞날을 통찰한 Karl Marx의 Capital을 다시 펼쳐 AI가 가져올 현대 자본주의사회에서 앞날을 자본의 운동 법칙(The Laws of Motion of Capital)을 토대로 분석해 보아야겠다.
한 주일 동안 The Economist의 주요 내용을 모두 다 읽었다. 어떤 기사는 3번을 읽은 것도 있고 한 번만 쑥 훑은 것도 있고 뛰어넘은 기사도 있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의 지정학적 대결구도와 관련한 기사는 정치·경제·사회·문화는 물론 과학 기술 분야까지 모조리 읽었다.
35년 전에 비해서 이제는 사전을 찾아보지 않아도 되는 영어 단어가 많이 나온다. 가독성이 높아지니 내용에 집중하며 즐겨가며 읽는다. 여유가 생겼다. 특히, 통합적인 생각을 할 여유 말이다. 이렇게 쭉 가다 보면 웬만한 정치 경제 분석 전문가라고 사기 쳐도 모를 판이다.
영어 원서 읽기에 관심이 많은 분이 혹시라도 이 글을 본다면, 온갖 힘을 모두 모아 원서 읽기를 뛰어넘어 세상을 읽는 단계까지 훌쩍 넘어가는 공부를 했으면 좋겠다. 공부를 전문적으로 하지 않고 또 이미 상당한 나이에 도달한 나야 그 길을 꿈꿔보기에 늦은 감이 있지만 여러분은 다르지 않은가?
어쨌든, 이 글을 마무리하자면 이렇다.
나는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의 삶을 살기 위하여 The Economist와 Financial Times와 같은 잡지를 읽고 CNN과 BBC와 같은 방송을 보고 들으며 세상의 큰 흐름을 읽고 시대정신의 문제를 뽑아내어 고전과 같은 관련 문헌을 참고하여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곧 공부라고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지나간 날의 ‘고전’ 역시도 옛사람이 남긴 찌꺼기일 뿐이므로 그냥 참고서로만 활용해야 한다고 본다. 만약 고전을 숭배하며 그 속에 빠져들어 헤매기만 하다 가는 속만 좁아지거나 지적 허영만 늘지도 모른다. 현대 삶의 시대정신을 찾아 그 답을 물어보기 위한 지침서로 사용할 때만 그 가치가 빛난다.
고전이 이러한데 최근에 얄팍하게 읽은 베스트셀러 몇 권은 말해서 무엇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