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의 일이다. 친하게 지내던 여자 지점장이 부하직원이 본사로 발령 나서 여의도로 인사를 하러 온다고 했다. 기왕 온 김에 점심을 먹자고 했다. 그래서 다른 동료와 함께 약속 장소로 나갔다.
자리가 자리인 만큼 사적인 얘기를 많이 나눴다. 그러다가 금융분쟁조정 업무를 오랫동안 맡고 있으니 전공이 법학이냐고 묻길래 영어영문학과라고 했다. 셰익스피어의 대작은 한 권도 읽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그렇다고 했다. 표정을 보아하니 거의 믿을 수 없다는 눈치였다. 이어서 블로그와 브런치에 글도 쓴다고 했다. 또 묻지도 않은 MBTI는 ESTJ라고도 했다. 현장이 완전 초토화가 되었다.
나는 그들 반응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했기에 능글맞게 뭐가 문제 있냐고 받아쳤다. 그랬더니, 모두들 크게 웃기만 했다. 그래서 나도 따라 웃었다.
지난주에 도로교통공단에서 보낸 운전면허 적성검사 안내문 고지를 받았다. 적성검사는 가까운 경찰서나 운전면허시험장 그리고 온라인으로 가능하다고 했다. 최근 6개월 이내에 찍은 반명함판 사진이 필요하다 해서 디포토로 갔다. 보정이 들어가면 30,000원이고 그렇지 않으면 20,000원이라 했다. 한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이 나이에 무슨 뽀샵을 하나 싶어 그냥 하기로 했다.
여자 사진 기사가 이리저리 쳐다보고 자세를 바로잡으라 일러준다. 너무 긴장했는지 몸을 뻣뻣하게 하며 목표점을 주시하며 촬영을 끝내고 나왔다. 인터넷에서 방금 촬영한 사진을 보여준다. 사진 속 내 얼굴 생김새를 보고 흠칫했다.
3년 전 싱가포르에 여행 간다고 여권을 갱신할 때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는 여권이라 안경을 벗어야 했다. 그래서 인상이 매우 험했다. 시청 건물 1층에 자리 잡은 값싼 곳이라 대충 찍자고 한 것이 큰 화근이었다. 사진 속의 내가 불법 이민자를 방불케 하는 인상이라 나도 가족도 모두 놀랐다. 그땐 남자 사진 기사가 성질내며 목표점을 주시하라 해서 그렇게 했다. 그래서 화가 많이 나서 정말로 째려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때 과오를 범하지 않으려고 학생들이 많이 가는 디포토로 가서 안경을 쓰고 눈빛을 모두 포장했건만! 본질은 불변하는 모양이다.
사진을 찾아 집으로 돌아오며 곰곰이 생각해 봤다. 주변 사람들이 내가 문학을 전공했으며 글을 읽고 쓰고 남들과 소통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말을 하면 왜 그렇게 놀라는지를...
도대체 그들은 왜 그러는 것일까!
아무튼, 이 웃음 포인트를 잘만 활용하면 더욱더 많은 사람들을 주변으로 끌어올 수 있을 듯하다. 그래서 흐뭇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