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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풀생각 Jul 01. 2024

산전수전 공중전, 온몸으로 말하다

소비자보호팀으로 되돌아온 지 7개월이 지났다.

독서를 통한 공부와 똑같이, 내가 그려낸 틀로 금융분쟁조정 업무의 큰길을 다듬었다. 공부에서도 주인이 되었듯이 내가 하는 밥벌이 속에서도 당당한 주체적 근로자로 우뚝 선 듯하여 흐뭇하다.


앞과 뒤로, 아래와 위로, 왼쪽과 오른쪽으로 휘둘리지 않고 꿋꿋이 내 할 일을 묵묵히 하는 들풀처럼 그렇게 즐기다 갈 일이다. ​나를 둘러싼 온갖 것들과 관계를 바로잡아 그 사이를 좋게 만드는 그런 사람이 되어보려고 오늘도 배우고 묻는다.




지난 반년 동안, 금융분쟁조정업무의 전문화를 목표로 노력했다. 일단, 내가 하는 일 자체가 그냥 발령 나면 할 수없이 떠밀려해야 하는 아무나 하는 허드렛일이 아님을 밝히고 싶었다.

그 일환으로 금융분쟁조정 자문제도를 만들어 회사의 게시판에 공시하며 전 직원들에게 알렸다. 지금껏 하루 한 건 이상의 분쟁조정 자문을 하고 있으며 주요 대표 성공사례를 세 건이나 간추려 공지했다. 무권대리로 인한 계약의 무효와 취소, 책임 원인에 따른 비재산적 손해에 대한 배상과 위자료 청구 그리고 약관법상 설명의무와 선관주의 의무의 관계를 실무와 연결해 사례를 정리해서 내 전용 게시판인 금융분쟁조정 자문에 게재했다.

또한, 매주 소비자보호실 주간 회의 때 약 5분에 걸쳐 부서원들에게 금융분쟁조정업무의 근거 법령인 민법을 바탕으로 계류 중인 갖가지 민원사례를 처리하는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나무 전체로 보면 뿌리와 줄기에 해당하는 것은 민법이며 금융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이나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따위는 가지나 이파리임을 여러 사례를 기준으로 우회적으로 알렸다. 대부분 금융소비자 보호법만을 생각하고 자기가 맡은 일을 할 텐데 나의 사례 발표가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인식의 지평을 확대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배우면 말고 아니면 마는 식이다. 나는 그냥 내 지식과 경험을 알릴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늘 같은 업무를 하는 이들에게 입버릇처럼 말한다. 나는 몸으로 때우는 일을 할 터이니 여러분들은 머리를 쓰는 일을 많이 하시라. 적의 상황에 맞는 실탄과 포탄을 만들어 주시면 언제든지 총과 포를 들고 전장으로 달려가겠다고 넉살을 피운다. 어쩌면 너스레를 떤다는 표현도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금융분쟁조정업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답변서 작성과 제출과 같은 고급스러운 법률문서의 작성이 매우 난해하고 다루기 힘든 줄 안다. 그러나, 내가 겪어보니 문제행동 소비자들과 같은 민원인에 대한 직접 대응이나 지점 직원들과의 소통에 견주면 법률 문서의 작성과 제출은 새 발의 피다. 막말로 몸으로 때운다는 일은 마음의 바탕이 서야 가능하다. 머리를 쓸 줄 알 아야 몸을 효율적으로 잘 쓸 수 있다.

그동안, 현장에서 몸으로 말하는 일을 전문으로 하고자 준비를 많이 해 왔고 앞으로도 계속 실험해 볼 것이다. 이곳은 정말 무궁무진한 분야다. 그뿐만 아니라 회사 안에서 웬만큼 잘 나가고 똑똑한 직원은 말할 것도 없고 사내 변호사나 세무사 그리고 노무사와 같은 엘리트급 전문 자격사들은 감히 엄두도 못 낼 그런 일이다. 그들은 주로 몸이 아닌 입으로 말하는 경향이 있고 주로 탁상공론을 하는 경우도 많다. 왜냐면, 그들 대개는 금융분쟁 때문에 관련 당사자들과 산과 물, 그리고 하늘에서 직접 부딪히며 겨뤄 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솔직히 그들은 현장의 문제에 깊숙이 들어가는 것을 꺼려하고 두려워한다.

다행히 나는 백면서생이 아닌 저잣거리의 실학자를 꿈꾸며 그들이 감히 올려다볼 수 없는 그런 곳을 향해 팔소매를 걷어붙이며 성큼성큼 나아간다.

이런 일을 제대로 처리해야만 진짜 전문가로 거듭 나리라!




MBC 드라마 무신에서 노비 출신으로 고려 무신정권 최고 권력자가 된 김준은 천한 신분임에도 앞날을 위해 늘 책을 끼고 사는 모습이 그려졌다. 가장 내 마음에 와닿았던 장면이다. 나도 그처럼 이번 주엔 The Economist와 자본론을 펼치기 전에 Karl Polanyi의 The Great Transformation을 읽던 거마저 끝내야겠다.

The Economist야! 잠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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