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따 호쉐프 - 한국을 사랑하는 아야
드넓은 광야.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달린다. 갑갑해서 창문을 잠깐 열고 싶었지만 뒤따라오는 뿌연 흙먼지를 보고 이내 마음을 접는다. 아기는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다. 얼마나 더 달려야 도착할까. 온 사방에 막힌 곳 하나 없는 사막, 여기엔 우리뿐이다. 갑자기 외로움이 밀려온다. 눈을 감았다.
“안녕하세요, 나는 아야예요.”
적막함을 깨는 맑은 목소리. 차에서 내려 인사를 한다. 단정한 옷매무새, 움푹 패인 눈에 짙은 쌍꺼풀, 눈가를 촘촘히 메운 기다란 속눈썹의 아야가 나와 아기에게 미소를 짓는다. 머리카락 한 올 흘러내리지 않는 히잡의 매무새가 깔끔하다. 한국말을 잘하고 한복이 어울릴 것 같은 아야. 한국인이 아닌 사람과 한국어로 대화하며 계단을 올라간다. 하늘이 파랗다. 황무지 같던 고독함이 스르르 사라진다. 낯선 땅에서 낯선 사람에게 듣는 낯설지 않은 언어가 따뜻하다. 아야는 회사의 이모저모를 한국말로 설명해주었다. 가만히 듣고 있으니 피식 웃음이 난다. 이제껏 영어를 잘 하는 친구들은 많이 만났다. 영어는 세계 공용어니까. 그런데 한국말을 이렇게 한국인처럼 하는 친구는 처음이었다. 발음이나 뉘앙스나 단어 선택도 훌륭하다.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정수기 앞에서 물을 마시려고 하는데 아야가 말했다.
“루씨, 물 안가져왔어요? 여기 필터를 자주 안바꿔요. 우리는 더러운 거 별로 안좋아하잖아.”
우리라니. 한국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고 우리라고 말했다. 이 정도면 한국인인데. 그 말을 듣고 내가 깔깔 웃자, 아야가 멋쩍어한다.
“아야, 아야가 우리라고 말하니까 내가 너무 신기해서 웃음이 났어.”
Korean Wave(한류). 해외에 거주하면 한국의 위상을 피부에 와닿게 느낄 수 있다. 한 나라의 위상이 일상을 살아가는데 뭐 그리 중요하겠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해외에서 거주하는 입장에서 여기 사람들이 '한국 좋아요', '한국문화 좋아해요' 라고 말하면서 관심을 표하고 반색을 하면 나는 잘 모르는 아이돌 가수와 한국 드라마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이들이 한국을 좋아할수록 우리는 이 곳에 소속감이 더 많이 생긴다. 아야는 처음 한국을 접하고 지금까지 쭉 한국이 좋다고 했다. 학창시절 내내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일상 대화 속의 한국어를 공부하고, 아이돌을 보고 노래와 춤을 익혔다. 한국음식이 먹고 싶어서 이 곳에서 파는 음식들은 사먹고 아니면 재료를 구해서 만들어 먹기도 했단다. 한국이 너무 좋은 아야는 마침내 카이로대학교의 한국어학과에 진학을 해서 체계적으로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배웠다. 졸업 후 여기 한국 회사에서 한국인과 이집션의 다리 역할을 한다.
사물에 대한 이해는 일단 그 사물 속에 들어갔다가 거기로부터 다시 나왔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선 사로잡힌 다음에는 석방, 환각과 환멸, 성취와 설명이 필요하다.
아직 매력을 얻지 못한 자나 또는 매력에 걸려보지 못한 자는 그 자격이 없다.
- 아미엘, '아미엘 일기' 중에서
아야는 진심이었다. 아미엘처럼 자신의 진정을 다해 한국을, 한국말을, 한국문화를 이해하는 친구였다. 한 문화를 이해함에 있어 이런 진실함을 보이는 아야의 태도에 나는 고개가 숙연해졌다. 좋아하는 일이 실제가 되었다. 마냥 순수하게 좋아하기만 했는데, 그 열정과 그 끈기가 결국 직업으로 이어졌다. 여성의 지위가 그다지 높지 않은 중동 사회에서 외국계 회사에서 일하는 아야는 다른 여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매일을 열심히 꾸준하게 좋아하는 일을 했을 뿐인데 그녀의 삶은 누군가에게 기적이 되었다.
아야의 부모님은 아야가 무엇을 좋아하든 그것을 존중했다. 부모님은 아야가 너무 한국 문화에 빠지는 것 같아 걱정을 하기보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에 자신도 관심을 두었다. 한국드라마를 빌리면 같이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집트에는 한국 아이돌 사진을 파는 곳을 찾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구할 수 있는 기회만 생기면 딸에게 사진을 구해다 주었다. 아야의 부모님은 아야의 생각을 물었고, 그 생각을 들었다. 유대인 교육의 '마따 호쉐프'처럼. 이는 '네 생각은 어때?'라는 질문이다. 사람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그 사람의 생각과 의견을 묻는 존중의 태도다. 정답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생각을 기다린다. 아야의 집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충분히 좋아할 수 있는 집이었다. 질문과 생각이 연결되고 연결된 생각은 확장되었다. 그녀는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일로 승화시켰다.
종교가 삶인 중동은 여자가 결혼을 하면 남편의 종교를 가지는 것이 일반적이라, 딸을 가진 부모들은 딸이 이슬람을 믿지 않는 외국인과 결혼하는 것을 주로 경계한다. 그러나 아야의 부모님은 아이가 점점 한국문화에 심취해 행여 한국 남자를 만날까 염려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것과 되고 싶은 것의 차이를 가르쳐 주었다. 아야는 한국을 너무 좋아하고 한국인들과 한국회사에서 일하지만 한국인처럼 생각하거나 행동하지 않았다. 한국을 분명 좋아하지만 한국인이 되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이집션 무슬림의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딸 수 없고,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딸 수 없듯이 부모님으로부터 온 아야의 뿌리는 견고했다.
아들은 축구를 좋아한다. 선생님들이나 친구, 형들도 아들이 축구를 잘한다는 이야기를 내게 종종 하니 실력이 꽤나 좋은 것 같다. 학교를 다녀오고 집에서 숙제가 끝나면 형제는 어김없이 축구를 한다. 우리집 다락방은 동네 축구장이다. 예쁘게 꾸며놓은 다락방의 소품들은 축구 할 공간과 골대를 만드느라 한쪽 구석으로 다 밀어놓은지 오래다. 1시간씩 축구를 해도 늘 부족하단다. 땀을 뻘뻘 흘리고 내려와 저녁을 먹으면서 아들은 오늘의 축구경기에서 어떤 기술을 썼는지, 세계적인 선수들의 이름을 줄줄 외며 그들의 기술과 자신의 기술을 비교하고 분석한 내용을 내게 말해주느라 정신이 없다. 축구 얘기를 할 때마다 아들의 볼은 상기가 된다. 목소리는 한층 더 높아진다. 배시시 웃는다. 좋아하는 일임에 틀림없다. 진심을 다해 빠져든 일일 것이다.
아들이 축구를 좋아하니 나도 축구 박사가 된다. 어느 팀에 누가 뛰는지, 그 팀은 몇승을 거두고 있는지 하도 물어대니 안찾아볼 수가 없다. 주변에서 걱정이 많다. 이러다가 정말 축구하면 어쩔거냐, 운동 선수의 길이 얼마나 힘든지 아냐, 공부로 성공하는 게 제일 빠르더라. 이런 질문들을 들으면 나도 걱정이 된다. 정말 아들이 축구를 진로로 결정하고 싶다 말하면 난 어떻게 반응할까. 사실 나도 아직 잘 모르겠다. 그냥 다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당겨 걱정하지 않을 뿐. 그런데 그 날이 오면, 나는 아이의 생각을 묻고 그 생각을 듣고 싶다. 마따 호쉐프, 네 생각은 어떠니. 아이의 생각을 물어보는 것은 아이를 존중하는 것이다. 아이를 존중하는 것은 아이의 존재 그대로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 선택이 내가 염려할 법한 축구선수가 되는 길이라 할지라도 아이가 좋아하는 것이 연결되고 확장되는 과정을 함께 하고 싶다. 그 길이 실패로 돌아간다 할지라도 그 또한 아이의 옆에서 묵묵히 지켜주고 싶다. 모든 경험은 인생의 값진 원료가 되니까. 그리고 그 길을 아이와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축복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