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성은 사람이 많다고 길러지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 남편이 그런데 나오면 사회성 안 길러진다고 하더라고."
"아, 그래?"
"응. 안그래도 외동인데 친구가 좀더 많은 게 좋은 것 같아서 안보내려고."
학교에 지원하기 전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의 하나가 바로 사회성이다. 대안학교 가면 아이 사회성이 길러지겠냐. 학급에 애들이 그렇게 작아서 괜찮겠느냐. 반에 남학생 숫자가 그렇게 적으면 어떡하냐. 여자애들 숫자는 홀수가 되면 안된다더라. 어떻게 그리 다들 틀린 말은 하나도 하질 않는지, 듣고 있노라면 나도 그 말에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사회성의 학술적인 정의는 '사회적 성숙, 타인과 원만하게 상호작용하는 능력, 다양한 사람과 긍정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능력'을 말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친구가 많다' 던가, '학급 리더' 가 사회성의 다가 아니다. 사실 저런 지표들은 아이의 사회성의 정도를 가늠해주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사회성은 위의 정의대로 첫째, 사회적으로 성숙해야 한다. 사회적으로 성숙해야 한다는 것은 인격적으로 충분히 성숙하다는 뜻이다. 성숙한 인격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독단적이지 않고 배려와 예의가 있다. 둘째, 타인과 원만하게 상호작용 해야 한다. 이 말은, 다른 사람들의 말을 경청할 줄 알고, 다른 의견도 수용할 수 있으며, 타인의 성향과 기질을 파악해 그 사람이 원하는 대화법으로 말할 수 있다는 뜻이다. 셋째, 다양한 사람과 긍정적인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즉, 인종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종교가 다르고 신념과 가치관이 다른 세상의 다양한 사람들과 긍정적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다.
나는 저 정의를 읽고 있노라면, 과연 내가 사회성이 높은 인간인지 의심스럽다. 친구도 제법 있고, 사람들과 관계도 곧잘 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좋지만 깊은 교제를 더 선호한다. 그러나 내가 과연 성숙한 인격으로 타인의 성향과 기질에 맞는 대화법을 구사하면서 나와 정말 색깔이 다른(피부색 뿐 아니라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긍정적 관계를 매번 형성해왔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백인들이 많던 뉴질랜드에 살면서도 나는 영어가 Mother tongue 인 영어권 친구들보다는 영어가 나처럼 Second language 인 친구들이 더 편했고, 예멘과 이집트에 살면서도 나는 아랍인들보다 한국인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더 선호했다. 물론 이 관계들을 다 배척이야 하진 않아도, 과연 긍정적인 관계 형성의 수준까지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내가 그래왔다고 해서 우리 아이들도 똑같이 그러리라는 법은 없다. 아이들은 사회성의 학술적 정의의 수준까지 관계를 잘 할 수도 있겠지. 다만 공교육을 다닌다고 해서, 또는 졸업했다고 해서 사회성이 당연하게 길러지는 것은 아니라는 거다. 사실, 일반적으로 우리는 학교에서 학급의 모든 학생들과 동일한 수준의 친밀함을 갖지 않는다. 초등 때는 끽해야 반에서 두세명이 친하다. 여덟명, 열 명씩 몰려다니는 중등도 있으나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 학년마다 학급이 바뀌고, 학급에 학생들 숫자가 많아서 사회성이 길러지는 부분도 분명히 있겠으나 그에 따른 아이들의 스트레스도 적지 않다. 아이들이 매년 새로운 상황에 적응해야 하는데 그게 늘 즐거운 일은 아니지 않는가. 나도 초등부터 내년 학급 편성 발표가 나는 날에는 어김없이 전날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친구와 반이 될까봐 무섭기도 했고,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과 반이 떨어질까봐 두렵기도 했다.
대안학교도 나름대로 고충이 있다. 학급에 학생들이 많지 않고, 그 반이 그대로 다음 학년에 이어지니 행여 불편한 관계가 있는 학생들끼리는 마음이 쉽지가 않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사회성이 길러진다. 다름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관계를 하는 것이다. 친구와 트러블이 있을 때 흔히 말하는 "걔랑 꼭 안놀아도 돼. 다른 친구랑 놀아." 가 성립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쁜 아이들이 혹시 이것을 악용하진 않을까. 글쎄. 모든 대안학교를 알 수는 없지만 우리 학교는 적어도 지금까지 첫째가 학교에 다니면서 학교 폭력 사건이 일어난 것을 본 적은 없다. 아이들이 있는 곳에 문제가 하나도 없겠냐마는, 아이들끼리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자기가 지금껏 다름을 수용해왔던 방식대로 하는 것이고,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교우 관계는 중요한 문제이므로 신경쓰는 것도 한몫 할 것이다.
아이들의 사회성은 공교육이나 대안학교나 상관없이 길러진다. 그 아이들의 성향과 기질이 어디에 맞는지는 또 다른 문제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