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길을 가더라도 안정감은 없어요
"한글은 뭐, 책을 술술 읽으라는 것이 아니라 그래도 제 때 맞춰 읽긴 해야죠. 아, 받침도 그래요. 지금부터 당장 잘 쓸 필요는 없어도 일반 초등 1학년 받아쓰기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 언니, 수학은 어때요? 수학은 한 번 놓치면 따라가기 어렵다던데. 대안학교는 수학이 공교육보다는 좀 약할 수 있으니까 따로 학원을 보내거나 학습지라도 하는게 좋겠죠?"
"요즘 애들 공교육에 방과후가 정말 잘 되어 있대요. 우리는 그런거 없죠? 아, 아쉽다. 그럼 또 학원을 보내야 하나? 언니는 어떻게 했어요?"
내가 보내는 대안학교에 아이를 입학시키기로 결정한 그녀는 오늘은 기어코야 모든 것을 파헤치리라는 결연한 의지를 가지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시기도 전에 궁금증을 쏟아 낸다.
"워워. 천천히 하자. 커피 한 모금 마실 시간도 없어야 되겠니."
나는 웃으며 말했다.
"언니, 뭐 하나라도 놓칠까봐 그래요. 불안해서 그래요."
"응. 알아. 불안해서 그런 거. 그 불안감 안사라져."
"안사라져요?"
"응. 안사라져. 지금부터 공교육 진도랑 비교하기 시작하면 계속 안사라져. 비교를 안하더라도 혹시 공교육 다니는 다른 친구의 아이들을 만나게 되면 불안감은 또 스멀스멀 올라오지. 행여 걔네가 우리 아이보다 더 빨리 나가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라도 드는 날엔 다시 학비 계산 하게 될 거야."
"정말요? 그럼 어떡해요? 계속 보내도 되는 거에요?"
나는 커피를 홀짝 들이키며 웃었다.
"자기야, 공교육 가면 안불안할 것 같아?"
그녀는 말이 없었다. 나는 말을 계속 이었다.
"공교육 가도 불안해. 첫째인데, 안 가본 길을 가야 되는데 남들이 다 가서 익숙한 길이든 아니면 새로운 길이든 처음 가는 길은 다 불안해. 그 불안감을 안고 가는 거야. 1학년은 처음이라 불안하고, 2학년 3학년 될수록 학교에 대한 불안감은 사라져도 학습에 대한 불안감은 남겠지. 친구관계에 대한 불안함도 여전할 거고. 둘째는 좀 더 낫겠지. 첫째가 간 길을 가면 되니까. 중학생 되면 또 어떨 것 같아? 중학생 되면 또 새로운 불안감이 찾아오겠지. 이건 끝이 없는 거야."
나는 숨을 가볍게 쉬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대안학교라서 조금 더 불안할 수는 있지만 공교육이라서 불안함이 사라진다는 것은 아니라는 거야. 사람이 갖고 있는 성향이나 기질에 따라 불안도는 다를 수 있지만, 사람은 그냥 불안을 느낄 수 있는 존재인 거지. 그런데 불안감을 느낀다고 해서 그 원인을 전부 대안학교에 돌리면 안되겠지. 그럼 그 불안요소를 빼면 평안해야 되는데, 아이가 어느 기관에서 교육을 받는다고 해서 불안감이 100프로 사라질 수가 있을까?"
"남들이 다 가는 길이고 그게 보통 평범함의 범주라고 인식하니까 조금 덜 불안할 수 있어. 그러나 덜 불안한 것이 평안한 것은 아니잖아. 거기서도 겪는 문제들이 산적하고, 근심 걱정해야 할 일들이 많지 않을까?"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생각에 잠긴 듯한 눈으로 커피잔을 쳐다 보았다.
집으로 돌아가면서 그녀는 많은 생각을 하겠지. 불안감이 사라졌을까? 아마 아닐거다. 아이를 3년 대안학교에 보내면서 아이의 반 인원수는 단 한 번도 증가한 적이 없다. 계속 아이들은 나가기만 한다. 아이는 친구와 또 작별 인사를 하고 아쉬움을 달랜다. 학교를 그만두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학교를 그만두는데 아이들의 의견은 반영이 되었을까. 나는 알 수 없다. 내가 아는 것은 학교를 결정하는 데는 불안감이 장벽이 되지만 학교를 그만두는 데는 불안감이 조력자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불안감의 영역은 너무도 다양하다. 학교 시스템에 대한 불안, 학교 선생님에 대한 불안, 학습에 대한 불안, 사회성에 대한 불안, 졸업 후 사회제도에 적응하지 못할 것에 대한 불안, 검정고시에 대한 불안, 학비에 대한 불안, 대학 입학에 대한 불안 등. 수많은 불안감들을 표현하는 것을 보며 나는 깨달았다. 대안학교에 왔기 때문에 이 불안들이 선명해져서 이슈가 되는구나. 공교육에 있었으면 잠잠히 내재되어 있었을 불안이 이 곳에서는 터지는구나.
아기를 가지자마자 내게 양육은 최소 20년의 일, 그리고 나와 부모님의 관계를 보면 결혼 전까지 약 30년의 일이다. 양육을 하는 와중에 교육이라는 것을 만났다. 내게 양육의 끝은 대학 입시나 취업이 아니다. 내게 양육의 끝은 '어떤 사람이 되는 것'이다. 자유롭지만 책임감 있고, 독립적이지만 남을 배려하고, 올바른 가치와 세계관을 가지고 꿈을 좇아 최선을 다해 사는 사람. 아이의 첫 대학이 무엇이든 첫 회사가 어디든 별로 중요하지 않다. 위에 말한 사람처럼 된다면 아이는 어디서든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을 것이기에 크게 걱정되지 않는다. 우리 가정의 이런 양육 방식 가운데 우리가 택한 교육이 '대안교육'인 것이지, 대안교육을 한다고 해서 꼭 저런 사람이 되는 것도, 공교육을 간다고 해서 꼭 저런 사람이 안되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의 불안감은 확신없음에서 비롯된다. 모르는 길이니 확신이 없을 수 있겠지만, 모르니까 그냥 믿어버리면 어떨까. 어차피 모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