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이에게 대안학교를 제시하고야 말았다
2020년 10월의 어느 날,
나는 내년이면 1학년이 되는 첫째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내기로 결심했다.
결심(決心). 이는 어떤 일에 대해 마음을 굳게 정하는 것을 말한다.
물 흐르듯 흘러 지나가도 될 일에는 결심까지는 하지 않는다.
순서가 분명해 당연한 일에도 결심까지는 필요가 없다.
내게 결심이란
이 길의 끝이 무엇인지 희미해 한 자락의 불안함을 끌어 안을 때
이 길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마음 한 켠에 존재하는 불편함이 느껴질 때
이 길을 걸어가며 맞이하는 주변의 불완전하고도 불확실한 상황을 인정해야 할 때
이럴 때 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와 남편은 아이의 학교를 두고 몇 주간의 기도와 고민을 하다가 대안학교로 마음을 굳게 정했다.
어두운 새벽에 홀로 기도하며,
귀에 이어폰을 꽂고 산책하며,
조용한 공간에서 남편과 마음을 나누며
우리는 아이의 첫 번째 학교를 아이의 선택보다 우리의 선택으로 그렇게 정해버렸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갈 수 있는 학교가 한 개가 아니라 두 개인 것에 대해서,
그리고 각 학교마다 어떤 특성이 있고 그 학교에 아는 사람은 누가 다니는지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어느 학교가 가고 싶은지에 대해서.
아이는 계속 물어보았다.
"엄마는?"
그래.
아직 엄마의 생각이 가장 중요한 나이지.
그래서 엄마가 너무 미안한 마음이지.
엄마가 생각하는 가치대로 너를 키우고 싶어서
엄마가 고집하는 신념으로 너를 자라나게 하려고
엄마가 추구하는 이상으로 너를 양육하고 싶어서
아직 만 6세인 너에게 무거운 짐을 주었어.
귀국한지 만 4년,
우리는 약 6년 간의 해외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결혼 전부터 생각하면 나는 8년쯤, 남편은 12년쯤 되었던 해외 거주.
한국에 돌아오니 우리는 원래 한국인인데 처음인 것이 많았다.
'미세먼지'라는 단어도 처음,
'로켓배송'이라는 것도 처음,
'육아는 아이템빨'이라는 말도 처음.
온갖 것이 처음인 세상 속에서 우리는 다시 이 곳에 자리를 잡느라 고군분투했다.
나라와 지역을 옮겨 다니며 살아온 우리는 그 어느 곳에도 소속감이 없다.
한국인으로 태어나
한국인처럼 생겨서
한국말을 하고
한국음식을 먹고
한국 사람과 결혼해서
한국 아이들을 낳아
누가보아도 전형적 한국인 같지만
우리의 생각은 한국인과는 다를 때가 많고
우리의 가치는 한국문화에만 두지 않으며
우리의 삶은 한국적이지 않은 면모가 많다.
그래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아주 진하게 가지고 있으면서도 한국에 소속감이 없는,
우리는 그런 아주 애매한 사람들이다.
소속감이 없어서 한 곳에 붙박이처럼 머무르지 않고 쉽게 훌훌 털고 떠날 수 있고
소속감이 없어서 어딘가에 정착해야 할 때마다 이방인인 것처럼 느끼며 산다.
그거였다.
우리가 고민한 것.
소속감.
아이가 대안학교에 간다는 것은 보편적인 선택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한국사회에서 보편적이지 않다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고
다르다는 것은 때로는 환영받지 못하는 시선에 노출된다는 것이고
그런 시선을 곁에 두고 살아야 하는 것은 아이의 삶에 무게감을 줄 수밖에 없다.
남들과 다른 길을 걸어간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아마 아이는 한국사회에 대한 소속감이 줄게되리라.
그것을 느낄 때쯤엔 자신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우리를 향한 감정도 달라지리라.
이것을 알면서도
이것을 경험했으면서도
우리는 아이에게 대안학교를 제시하고야 말았다.
"네! 나도 좋아요!"
하고 웃는 아이를 보며 나는 나의 결심을 돌아본다.
이 길의 끝을 모르는 불확실성과
이 길을 가는 마음의 불안함과
이 길을 가다가 실패할지도 모르는 두려움을 넘어
나는 결심을 한다.
이 길의 끝이 한국에서 말하는 인재가 아니더라도 믿음의 길을 걸어왔으니 괜찮다.
아이의 어깨에 다른 길을 걸어가는 시선의 무게가 얹혀져 있으면 함께 짐을 나누어 지며 걸으면 되니 괜찮다.
아이가 소속감을 느끼지 못해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우리의 경험을 알려주며 손잡고 가겠다.
길을 가다 되돌아오고 싶을 때는 언제든 돌아올 수 있도록 아이의 결정을 응원하겠다.
아들은 그렇게 대안학교를 입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