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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호 Apr 09. 2024

새벽 한 시의 약속

영수증 플레이리스트 14p

  1 Am. 새벽 한 시.


  하루의 시작은 밝고 화창한 색이 아닌 곧 어둠에 빠질 듯한 피곤함을 그리는 칙칙한 색에서 시작한다. 어떤 이는 이를 화려하다고 생각해 기다리기만을 반복하고, 어떤 이는 이 순간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 미워도 해보고, 어떤 이는 이를 보지도 못하고 어둠을 맞이하며, 어떤 이는 이를 그리워한다.


  새벽 한 시. 그렇다. 새벽 한 시다.




여보세요? 자고 있었어요?

  잠들어 있어도 잠들지 않아도 이상하지 않을 애매모호한 시간. 새벽 한 시. 수호의 전화기가 울린다. 항상 그랬듯 '59'에서 오늘의 모든 것이 비워져 '00'이 되어야만 전화가 울린다.

  그래서 좋았다. 지나간 오늘의 수많은 일 그리고 감정을 다 비우고 온전히 그를 만날 수 있다는 마음에 한결 편하게 전화를 받았다. 온전하게 그에게 집중하겠단 뜻이었다. 약간 피곤해 보이는 그의 목소리 속 자고 있었냔 단 한 문장에도 온정은 가득했다.


    "아니요. 아직이요."

  무덤덤하게 아직이란 말을 남긴 채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하루를 공유했다. 그에게 어떠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다른 이야기는 하지 못하고, 또 다른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의 은은한 목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려왔다. 졸리냐는 서운함 가득한 물음에 어떻게 졸리겠냐는 답변으로 응수하며 다음 날의 찬란한 계획을 다 말할 때쯤 둘 모두 졸음에 취한 건지 졸음에 취한 척하며 하고 싶은 말을 꺼낸 건지 모르지만 장난스레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기에 이르렀다.


    "난 선영이 되게 좋아하지."

조금의 침묵을 견디자 선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수호를 사랑하지. 그렇지만 우리 엄마도 사랑하고 우리 언니도 사랑해. 내 친구 민지도 사랑하지."

  애매모호한 시간에 애매모호한 답변은 수호 마음의 방향을 확고히 정하기엔 충분했다. 그러나 수호는 용기가 없었던 것일까. 더 확실한 답변이 듣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자신의 마음에 확신이 없었던 것일까. 


  수호와 선영 이 둘은 첫 만남부터 간지러웠다.


    "오빠 오늘부터 저랑 다녀요."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인 수호는 수많은 인파 속 눈치만 보다 갑작스레 자신의 눈높이에 들어온 상큼한 선영의 모습에 괜스레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요. 좋아요."

  그렇게 수호와 선영은 어깨를 마주하고 걸었다. 그리고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의 하루를 응원하고 위로해 주는 시간이 새벽 1시로 자연스레 정해졌다. 하루는 웃음으로 하루는 울음으로 매일의 일상을 새벽 한 시 속에서 공유하니 서로를 이해하기도 무너진 모습도 발견하기도 위로의 말을 해주기도 했다.

  수호는 선영과 함께하는 시간이 행복해 하루는 수업이 끝난 후 버스를 같이 타려 집과 괜히 멀어져 보기도 했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애써 바쁜 척을 하며 몰래 선영에게 발걸음을 떼기도 했다. 또, 둘만의 신호를 만들기도 했다. 뭐, 그것들이 들켜 살짝 멀어지는 시간도 가졌지만, 새벽 한 시의 약속은 절대 잊는 법이 없었다.


"일 잘 다녀와요 (하트)"


  여느 날처럼 새벽 한 시의 약속을 지킨 후 긴 어둠이 걷히고 빛이 들어오기 시작한 8시 24분. 알람 소리를 세 번 정도 지나치고 나서야 눈꺼풀을 들어 올린 수호는 핸드폰 속 그토록 원했던 이모티콘을 발견하였다. 가장 원했지만 당황스러운 마음에 다시금 되물었더니 엄청난 실수라는 단어를 쓰며 지워달라는 선영의 모습을 행복 그 자체라고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정말 실수였을까 아니면 좀 알아달라고 티를 냈던 것일까. 선영은 자신의 마음에 충실했던 것이다.


아주 바빠. 말할 틈도 없고.. 연락할 틈도 없고..


  사실 질투심이 많았던 선영은 수호를 처음 알게 된 날부터 그 질투심을 드러냈다.


    "오빠는 여자 많아요?"

  적지 않게 당황한 수호는 비슷한 문장으로 되물었다. 그러자 선영은

    "나요? 남자 많죠. 근데, 이제 한 명 더 늘었네." 

  수호는 한 번 더 당황했지만, 잘 받아쳤다는 생각을 할 때쯤 선영은 최후의 일격을 날렸다.


    "대신 오빠는 여자 없었으면 좋겠다. 나랑만 놀 수 있게"


  남자 사람 친구와 여자 사람 친구가 소소하게 칠 수 있는 장난으로 볼 수 있겠으나 분명한 건 선영의 말이 수호가 선영을 궁금해 하기엔 충분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둘은 '친구'라는 이름으로 함께 서로의 삶을 공유했다. 수호가 이성을 만나야 하는 상황이면 어김없이 질투를 보였고, 이성에 대한 연락에서도 선영은 어김없이 질투심으로 수호를 당황시켰다.

  수업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보는 둘이었지만, 둘만의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어느 새 찾아온 꽃샘추위 계절의 새벽 한 시. 선영은 전화기 너머로 수호에게 서운함을 토로한다.


    "아주 바빠. 말할 틈도 없고, 연락할 틈도 없고 보고 있는데 보는 것 같지도 않아."

그때 수호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급하게 갖가지의 변명을 늘어뜨려 놓으며 토라진 선영을 달래주었다. 그 변명의 끝엔 항상 선영에 대한 애뜻한 애정이 섞여 있었다. 그러나 수호는 선영보다 그 애뜻함이 더 좋았을까? 수호는 연애의 시작을 알리지도 않았고 썸의 끝맺음을 말하지도 않은 애매모호한 태도로 일관했다.


    "내일 발렌타인데이래!"

    "오빠! 나 오빠 일하는 곳 앞이야"

    "맨날 나만 전화하잖아.."

    "내일은 나랑 같이 가자!"


  선영은 그동안 수많은 플러팅과 함께 수많은 시그널을 보냈을 것인데 단 한 번도 수호가 알아채지 못한 것에 선영은 수호가 그토록 미웠을 것이다.


  반면에 수호는 선영을 천천히 바라보았고 선영의 속도와 방법에 맞추지 못했다. 둘의 속도가 서로 달라 그랬던 것일까. 어쩌면 수호는 설렘과 애뜻한 감정에 취해 자신의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했던 건 아닐까. 아니면 확신이 들지 않아서였을까. 

  선영과 수호. 둘의 줄다리기는 꽤나 간질거렸지만 오랜 간지러움은 한쪽이 줄을 놓기에 충분했다. 


  결국 단 한 번도 사랑의 꽃을 피우지 못하고 100번 가까이 끊기지 않았던 새벽 한 시의 약속도 결국 끊겼다. 수호는 선영을 좋아한 것일까. 전화기가 울리는 시간 새벽 한 시가 좋았던 것일까.

  약속이 아닌 수호만의 이유로 몇 번의 선영의 목소리가 수호의 귓가에 닿을 수 있었지만, 첫 만남처럼 이번에도 수호를 당황시키는 선영의 말에 더 이상 수호는 선영의 목소리가 듣고 싶지 않아졌다. 아니 들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수호의 민낯까지 들춰내었던 선영의 말은 전화기가 울리지 않을 이유로 충분했다.


'몇 분만. 몇 분만.' 하면서 안 끊을 거 아니까 안 해줄 거다.


다시.

수호는 선영을 좋아한 것일까. 전화기가 울리는 시간 새벽 한 시의 간질거림이 좋았던 것일까.



PSY - 어땠을까
내가 그때 널 (내가 그때 널)
잡았더라면 (잡았더라면)
너와 나 지금보다 행복했을까
마지막에 널 (마지막에 널)
안아줬다면 어땠을까 (어땠을까)


습관적 글쓰기를 위해 하루를 기록합니다. 하루동안 제게 입력된 생각이나 상상의 순간들 어쩌면 일기일지도 어쩌면 소설이 될 수도 있는 이 글은 하루의 끝 쯤 하루를 확인할 수 있는 영수증 정도 되겠네요. 영수증을 확인하면서 음악도 소개해드릴게요. 영수증 플레이리스트 <영플리> 지금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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