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선호 Apr 07. 2024

곧 도착합니다.

영수증 플레이리스트 13p


  그럴 때가 있다. 버스를 타고 빨리 가야 하는데 지갑을 두고 왔을 때, 버스 도착시간이 기다리기도 택시를 다기도 애매해 참 어려울 때, 버스가 도착을 했지만 만차 버스라서 내 자리는 없을 때


  '곧 도착' 문구가 떴는데도 버스는 오지 않을 때.. '


  '버스가 곧 도착합니다.'




  내 갈 길은 참 멀고도 어려운 길이었다. 그래도 가고 싶은 마음에 들떠 정류장으로 한껏 희망을 품고 발걸음을 옮겼다.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쯤 매연은 뿜고 있지만 화려하고 외관이 멋진 버스 한 대가 도착했다. 줄을 서고 내 차례가 오자 버스로 올라섰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비싼 버스 금액은 날 한 번 좌절시켰다.


  그렇게 처음 버스 한 대를 그냥 보냈다. 다음 버스는 한참이나 기다려야 하기에 그 시간 동안 나는 발로 뛰고 나의 가치를 올리며 지갑을 마련하고 버스비를 낼 금액도 지갑에 채워 넣었다. 그렇게 버스를 탈 수 있는 나를 온전히 만들었다. 드디어 다음 버스가 도착했다. 이번에도 매연을 뿜고 도착한 버스는 화려한 건 마찬가지였지만 첫 번째 버스보다 외관이 조금은 허름해졌다. 줄을 서고 내 차례가 되자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에 자리가 없어 내리셔야 해요."

    "서서 가도 될까요?"

    "아니요. 내리세요."


  버스 안 좌석에는 50대~60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앉아 있었다. 몇 자리들은 나와 비슷한 또래였다. 그들은 다리를 꼰 자세를 취하며 손목은 비싼 시계로 둘렀다. 분명 서서 가도 되는 공간이었는데 버스 기사는 나를 결국 내리게 했다. 두 번째 좌절이었다.

    "다음 차를 타세요. 바로는 아니지만 금방 올 거예요."


  그렇게 두 번째 버스도 타지 못했다. 그래도 다음 버스는 금방 왔다. 이번 버스는 화려하지도 않았으며 매연을 더 많이 뿜어내는 허름한 버스였다. 이 버스는 내가 가고자 하는 도착지엔 가지 않지만 환승을 할 수 있는 버스라서 이거라도 타려고 했다. 이번에도 좌석은 꽉 차 있었지만 다음 정류장까지는 서서 갈 수 있다는 말에 환승할 계획으로 냉큼 버스에 올랐다. 허름한 버스여도 달리는 길은 탄탄대로였다. 서서 가는 동안 바깥 풍경도 보고 옆 사람과 인사도 나누고 앉아있는 선생뻘 되는 사람에게 조언도 들으며 달렸다.


  달리는 중 내게 조언을 해주던 선생뻘 되는 사람이 나의 짐을 덜어주고자 잠시 짐을 들어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그에게 내 짐을 주었다. 이윽고 옆자리가 비니 자신의 옆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그렇게 나는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앉아서 편하게 가는 도중에도 조언은 계속됐다. 편하게 앉아있지만 계속되는 조언은 나를 편하지 않게 만들었고 서 있는 사람들의 시선도 나를 불편하게 했다. 그래도 그렇게 달리는 기분은 나름 좋았고 행복했다.


  한참을 달리는 중 환승할 정류장에 도착했다. 내리려고 하는 순간 선생뻘 되는 사람이 내게 이번 정류장에서 내리지 말고 자신과 같이 가자고 하였다. 앉아서 가는 것이 좋았지만 나는 정중히 거절하며 버스에서 내렸다. 같이 가지 않아서였을까 선생뻘이지만 어린아이처럼 창문을 통해 내게 욕을 하며 그 버스는 떠났다.


  기분은 좋지 않았지만 갈 길이 멀기에 환승할 버스가 언제 오나 바로 확인해 보았다. 환승할 버스는 운이 좋게 '곧 도착'이었다. 안내판에 곧 도착이라는 문구가 있어 참 다행이었다. 그런 다행도 아주 잠깐이었다. 뭐가 문제였을까. '곧 도착'이라는 문구와는 다르게 기다림은 기다림을 불러오며 나를 한참 정류장에 있게 했다. '곧 도착' 문구는 내가 버스를 포기하지 못하게 했다. 결국 하염없이 안내판만 바라보고 있을 뿐 무언가를 할 수 없었다.


    "버스가 곧 도착합니다."


  한참 동안 기다리고 있을 때 내게 세 번째 좌절감이 몰려왔다. '더 이상 버스는 오지 않는 것일까?' 하는 걱정과 함께 도착지에 갈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든 나는 당장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꼭 안 좋은 일은 한꺼번에 쏟아진다. 무너져 내리기 일보 직전 내 어깨가 축축해지며 비가 추적추적 오기 시작했다. 저번 봄비는 가늘어서 맞아도 기분이 힘들지 않았는데 올해 봄비는 유독 굵은 것 같다.



에픽하이 - 빈차
갈 길이 먼데
빈차가 없네
비가 올 것 같은데
처진 어깨엔
오늘의 무게
잠시 내려놓고 싶어
Home is far away


습관적 글쓰기를 위해 하루를 기록합니다. 하루동안 제게 입력된 생각이나 상상의 순간들 어쩌면 일기일지도 어쩌면 소설이 될 수도 있는 이 글은 하루의 끝 쯤 하루를 확인할 수 있는 영수증 정도 되겠네요. 영수증을 확인하면서 음악도 소개해드릴게요. 영수증 플레이리스트 <영플리> 지금 시작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노란색 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