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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세 Nov 04. 2023

나를 가두는 두려움의 실체

괜찮아. 설마 죽기야 하겠어

금요일 저녁 옆 침대의 두 녀석은 오후 내내 빈둥거리다가 저녁 8시가 넘어가자 사라졌다. 불금을 즐기러 간 모양이다.  볶음밥을 해 먹으려고 쌀을 씻어 올리고 양파와 베이컨을 썰어 그릇에 담는다. 주방테이블에 한 여성이 앉아서 열심히 번역기 사용하면서 책을 보고 있다. 그러다 힐끗힐끗 나를 쳐다 보기도 하는게 느껴진다. 완성된 볶음밥에 케첩을 뿌리고 그 여성의 맞은 편에 앉았다. 한 두 숟가락 먹었을까. 호기심이 두려움을 이겼다.


“ Are you studyng now?”


책을 보여준다. 라트비아어로 된 라트비아에 관한 책이다. 관광코스를 계획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Where are you from?”


독일에서 왔단다. 라트비아에서 멀지 않다.   폴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순이다. 그래서 독일 사람을 여럿 봤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이미 안다고 한다. 어떻게 아냐고 물었더니 내 볶음밥을 가리킨다. 작년 9월에 친구와 함께 한국을 3주 동안 여행했다고 하면서 서울, 전주, 부산, 경주, 광주, 목포 이야기를 한다. 제대로 보고 온 것이다. 그리고는 한국음식 이야기를 한다. 엄지 손가락을 내밀면서 그 음식을 먹었을 때의 행복한 표정을 재현한다.  비빔밥, 불고기, 삼겹살, 김밥 등  자신이 찍어온 한식 사진을 보여주면서 추억을 떠올린다. 비빔밥의 고추장이 매웠다고. 한국에서 고추장과 고추가루는 매우 중요한 양념이라고 내가 말했주었다. 나도 지금 이 나라에서 그걸 찾고 있다고. 자연스럽게 드라마와 음악으로 대화가 이어진다. 빅뱅의 팬이었다. 나도 좋아한다고 말해 줬다 특히 “봄 여름 가을 겨울”, 자신들의 자서전 같은 노래라고


다시 한국을 방문할 거냐고 물었더니 아마도라는 답이 돌아왔다. 30분 남짓 대화를 나누었다. 그사이 나는 밥을 다 먹었고 각자의 숙소로 돌아갔다.


틈틈이 번역기를 사용해서 대화를 나누었다. 지나고 보니 아쉽다. 번역기를 사용하더라도 내가 직접 읽어 줄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부터는 꼭 나의 육성으로 대화를 해야겠다. 늘 느끼는 거지만 언어가 되면 좀 더 다양하게 깊이 대화를 나눌 수 있음을 확인한다. 생활에서 느끼는 절실함이다. 호기심이 두려움을 이긴 결과 짧지만 작은 경험을 추가한다.


두려움과 망설임은 사촌지간이다.  우리의 행동을 주저하게 만들고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용기있는 자를 부러워한다.  과연 우리 안에 존재하는 ‘두려움’ 너의 정체는 무엇이냐?


생명체가 가지는 신체적, 기질적 특징을 형질이라고 부른다. 두려움도 그 형질의 하나이다. 진화론에 따르면 모든 형질은 그 존재이유가 있다. 필요하기에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아 있는 것이다. 두려움은 본능이다. 본능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고 있고 이미 학습되어 있다. 현대과학은 본능의 메카니즘을 규명해냈다. 우리 몸 안에 두려움을 담당하는 유전자 염기서열의 조합이 들어 있다. 담당하는 신체부위는 뇌다. 뇌의 변연계가 공포영역을 담당한다. 변연계 안에 편도체라는 놈이 그 역할을 한다.변연계는 파충류부터 발생하면서 갈라져 나왔다.



두려움은 생존의 필살기이다. 원시시대에 살았던 생명체들은 두려움의 형질을 갖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 지금도 야생동물들을 보라 얼마나 조심스럽고 신중한가. 그래야만 살아남는다. 그렇게 살아온 시절이 수백만 년 이상이다. 인간문명의 역사는 길게 잡아도 한 만 년,  그리고 지난 한 2000년 동안 급속하게 도시문명을 발전시켜 왔다. 오늘날 더 이상 과거 원시시대와 같은 천적으로부터의 위험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진화의 시간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긴 시간에 걸쳐 이루어 진다



일종의 지체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위험은 존재하지 않지만 여전히 우리 몸안에는 원시시대에 작동했던 공포를 느끼는 형질이 동일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공간과 환경에 직면하면  두려움의 기제가 작동한다. 개인의 기질차이는 있지만 다 가지고 있다. 두려움이 없는 사람은 없다.



나를 주저하게 만들고 망설이게 만들고 가두는 이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하나의 방법을 제시하자면 도전이다. 인간은 두려움의 이면에 존재하는 또다른 기질인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기질도 있다. 그래서 호기심과 두려움의 대결이다. 안전을 추구하는 기질과 도전을 추구하는 기질이 서로 대립한다. 누가 이길까?



이때 필요한 것이 의지이다. 하고자 하는 마음. 내 두려움의 실체가 본능인 것을 인지하고, 현대사회에는 더 이상 내 생명을 위협하는 천적이 없다는 것을 되뇌이는 것이다. 한마디로 ‘죽기야 하겠어’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안정된 부모의 품에서 새로운 도전을 격려받은 사람들은 오히려 도전을 즐긴다. 그리고 성취감을 얻는다. 심지어는 도전에서 오는 성취감에 빠져 극한 스포츠를 즐기기도 한다. 윙슈트라는 스포츠가 대표적이다.  비행하는 영상을 보면 어마무시하다.  호르몬의 작용이다. 아드레날린, 엔도르핀, 도파민, 세로토닌 등의 호르몬이 몸에서 흘러나온다. 짜릿한 것이다.  거기에 중독된 것이다.

구소련 시절. 건축된 과학마카데미. 웅장하다

그 건물 위에 전망대가 있다. 리가 시 전경



두려움은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대상이다. 황석영의 소설 <아우를 위하여>를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우리를 위압하고 공포로써 속박하는 어떤 대상이든지 면밀하게 관찰하고 그것의 본질을 알아낸 뒤, 훨씬 수준 높은 방법을 취하면 반드시 이긴다”



명량해전을 다룬 영화 <명량>에는 다음과 같은 이순신의 독백이 있다.



“ 저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반복된 도전은 두려움의 감정을 용기로 바꿀 수 있다.  내 안에 있는  두려움의 실체를 안다면 그리고 더 이상 원시시대의 천적이 나의 생명을 노리는 일은 없다라는 사실을 안다면 한 번쯤 두려움을 뛰어 넘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첫 시도가 제일 중요하다. 그 때 이렇게 속으로 되뇌이면 어떨까?



“괜찮아 설마 죽기야 하겠어.”



내가 자주 되뇌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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