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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세 Nov 16. 2023

내 운명의 카이로스

시간의 비밀

2023년 11.12(일) 오후 1시

내일 오전 8시 드디어 발트 3국을 떠난다. 생애 첫 유럽여행의 관문이었던 발트 3국은 적응과정이었다. 큰 어려움 없이 다니고 있다. 조금 더 다양한 경험과 사람들을 만났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기회가 되어서 아르바이트라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방법을 한 번 찾아보려 한다.

생각하고 하고 싶은 일이 떠오르면 그 즉시 하려고 한다. 이번 여행의 모토가 되지 않을까. 이건 이래서 못하고 저건 저래서 못하고. 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내 안의 장애물을 제거하고 온전히 실천하는 것이 이번 여행의 목표 중 하나이다. 비록 그 과정에서 안 해도 될 고생을 사서 하기도 하고 어려움도 겪겠지만 지나고 보면 추억이고 소중한 경험이 된다. 삶의 방식을 새로 설계해 보는 과정을 통해 활력을 얻고 내가 누구인지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순간을 최선을 다해 즐기는 것, 겪어 내는 것 그것이 행복의 비결이다. 다음은 없다. 그다음은 또 다른 최초의 다음이다. 그렇게 믿고 계속 속으로 되뇌며  앞으로 간다.

탈린을 떠난 지 30시간 만에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 도착했다. 비행기를 타면 두, 세 시간이면 되지만 버스를 타고 창밖으로 다른 나라의 풍경을 보는 것도 나름 재미있다. 평소 못 보던 풍광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빌뉴스에서 하루 묵고 이틀에 걸쳐 폴란드에 들어왔다. 폴란드 국경 입국수속이 무척 까다롭다. 버스 안에 들어온 보안요원이 여권을 검사한다.  한 명이 입국 거부를 당해 바로 하차했다.
주거 불분명 뭐 이런 게 아닐까 싶다. 꼭 숙소 예약 바우처를 갖고 있어야 한다.

바르샤바에 거의 다 가서야 비로소 해를 만날 수 있었다


바르샤바는 4일 정도 머무를 예정이다. 이제 대략의 체류기간 견적이 나온다.  밀린 빨래를 했다. 6000원 정도에 건조기 사용까지 가능했다.  체류 첫날 하는 루틴이 정해졌다. 산책을 하며 마트에 들어가 가격을 확인하고 대중교통 시스템을 이해하고 주변 지리를 익힌다. 숙소 주방을 확인하고 구입할 식자재의 목록을 정한다.

내가 정리한 여행의 목표

1. 인문환경을 체험한다. 건축물, 박물관, 도시풍광 등
2. 자연환경을 체험한다.
3. 다양한 사람을 만나 교류한다.

1번은 잘하고 있다.  2번은 나라에 따라 다르다. 자연풍광이 뛰어난 나라를 아직 접하지 못했다. 3번은 여러 방법을 모색 중이다. 가까운 시일 내에 새로운 시도를 해 보려 한다.


바르샤바 왕궁과 쇼팽의 심장이 보관된

성십자가 성당.   올드타운의 야경



2023년 11월 16일 (목) 오전 5시 18분

시간의 비밀

이제 근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살던 곳을 떠나 낯선 곳으로 간 여행이 나를 얼마나 바꾸어 놓았을까?  나도 알 수 없다. 여행이 일상이 되어 조금씩 계속 변하고 있을 것이다.  한 달의 경험이 지난 5년의 경험보다 더 극적일 수 있다.  시간은 그런 거다. 의미 있는 시간, 의미 없는 시간이 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시간을 물리적 시간이라고 한다.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숫자로 표기한다. 인간이 삶의 편리를 위해 인위적으로 구분한 시간이다. 영국이 전성기일 때 그리니치 천문대를 기준으로 시간을 정했다.  한국과 바르샤바는 정확하게 8시간 차이가 난다. 한국이 더 빠르다. 영국도 8시간 차이가 난다.
물리학자는 시간을 공간과 함께 우주 안에 물질이 존재하는 방식으로 정의한다.  이 시공의 절대성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우주의 시공을 제시한 사람이 아인슈타인이다.  경제학자는 시간을 돈으로 정의한다 명쾌하다. 종교에서는 시간을 신의 선물로 정의한다.

이 시간에 대해 아주 심도 깊은 성찰을 하고 멋진 철학적 정의를 한 사람이 성 어거스틴이다. 초기 기독교 신학의 기초를 닦은 사람이다.  어거스틴은 그의 대표적 저서 <고백록> 13장에서 시간에 대한 유명한 정의를 내린다.

인간 의식 밖의 시간은 동일하지만 시간이 의식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역동적으로 변한다.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누어진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다. 오로지 우리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한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오직 우리의 기대 속에서만 존재한다. 시간은 우리의 의식 안에서

 미래로부터 와서 현재를 지나 과거로 흘러간다. 인간은 오직 현재만을 느낄 수 있다.  현재만을 직관한다.

하지만 인간의 영혼은 과거, 현재, 미래로 분산되어 시간을 느낀다. 어떤 이는 지나간 과거 속에 얽매여 현재를 흘려보낸다. 어떤 이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만을 그리며 현재를 허송세월한다.  소설 <아홉 살 인생>의 골방철학자가 대표적이다.  그렇다 어거스틴이 정의한 시간은 영혼의 분열이다.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인간 의식 밖의 시간은 물리학적으로 동일하다. 그러나 시간이 인간 의식 안으로 들어온 순간부터 시간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지나간 과거에 얽매여 살 것인가 오지 않은 미래만을 바라볼 것인가 아니면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 것인가

어떤 이에게 특정한 하루는 그의 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다. 사랑 하는 사람에게 하는  프러포즈라든가 생사를 결정짓는 외과 수술이라든가. 일 년 365일이 모두 같은 날이 아니다.  인간 의식 안에서 의미를 가진 시간이 카이로스의 시간이다. 지난 5년의 일상보다  한 달의 여행이 나에게 준 변화가 더 크다면 이 한 달은 나에게는 카이로스의 시간인 것이다. 그렇다면   카이로스의 시간은 주어지는가? 주어지기도 하고 만들기도 한다. 나는 주어진 카이로스의 시간을 운명이라고 부른다. 이건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내가 만들 수도 있다. 어떻게?  그게 도전이다.

지금을 멋지게 살아내는 것이다. 카이로스의 시간을 다른 말로  기회라고도 한다. 기회는 주어지기도 하고 만들기도 한다. 지금을 멋지게 살아내는 것. 다가오는 기회를 멋지게 낚아채는 것이다. 그래서 깨어 있어야 한다. 지금도 많은 기회가 나의 주변을 스쳐 지나가고 있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를 포착하는 안목이 있다. 그래서 기회를 잡는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엄밀하게 말하면 80년이 아니라 지금이다. 내일은 없을 수도 있다. 지금이 가장 중요하다. 물론 미래를 위한 계획은 필요하다. 그 계획이 지금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한에서.

어떤 이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가능성에 현재를 저당 잡히기도 한다. ‘다음에, 언젠가는,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라면서. 그러나  2023년 11월 15일은 다시 오지 않는다. 한 번뿐이다.

시간의 아우라

젊은 날 전쟁에 패한 왕이 도망치다가 산속에서 우연히 만난 노파가 해준 오믈렛 맛을 잊지 못했다. 나이가 들어 그 오믈렛이 너무 먹고 싶었다. 나라 최고의 요리사를 불러 그 오믈렛을 재현할 것을 요구했다. 그렇지 못하면 죽음으로 대가를 치뤄야 할 거라고. 최고의 요리사는 차라리 자기를 죽여달라고 했다. 왕이 쫓기던 절박함과 굶주림 속에서 우연히 먹게 된  오믈렛은 어느 누구도 재현할 수 없다고. 자기는 만들 수 없다고 했다. 발터 벤야민의 책에 나오는 일화이다.

예술작품에만 아우라가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에도 아우라가 있다. 매 순간이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들이다. 물론 평범한 일상도 소중하다.  한 인간의 일생은 그 사람만이 가진 고유한 시간이다.. 현대사회에는 그 시간을 빼앗아 가는 회색신사들이 너무 많다. 나는 내 시간의 주인이다.  그리고 나는 오직 지금을 산다.

“카르페 디엠”

내 운명의 카이로스를 위해


구소련 시절 건축한 문화과학 궁전과 신도시의 마천루.  한국 대기업의 이름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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