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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램즈이어 Jun 12. 2024

브런치 텃밭 학교의 결투

스프링버드 작가님  <내방식이 있다고욧!>의 댓글 픽션

 브런치 텃밭 학교에서 가장 유명한 반은 아마도 봄새 선생님 담임의 중 3-1반 일 것이다. 공부 전교권 아이들이 모인 것도 있지만 뭐니 뭐니 해도 선남선녀들이 모여서다. 미남 미녀들이 모인 만큼 해프닝도 많아 다른 반은 중2 병을 졸업하고 조금씩 무던해져 가는데 유독 이반만은 파란만장하다.

 3월이 되자마자 3학년 1반이 전교생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향 딸기양 때문이었다. 170센티가 넘는 키에 선홍색 낯빛의 1반 간판스타는 어느 날 사라졌다가 두 달 만에 돌아왔다. 소문이 무성하지만 한 줄 요약하자면 SM에 길거리 스카우트 되었다가 걸그룹 오디션 준비 중 쓰러져서 돌아왔다고 한다. (체력 미달로) 새초롬한 표정으로 복도를 지날 때 남자애들은 진짜 아이돌 소녀를 바라보는 양 좋아한다.

 그 반에는 주아라고하는 유명 재벌집 딸도 있다. 그 아이 어머니 이름은 삼동파이딸부자네 막내딸이다. 주아가 등교 길에 차에서 내릴 때도 남자아이들이 서성거리는데 조금 다른 이유 때문이다. 람보르기니 스포츠카를 보기 위해서. 팬 서비스라도 하는 듯 가끔씩 차종이 바뀐다.

 얼짱은 아니지만 진한 개성으로 이반에 유명세를 더한 여학생이 있다. 넝쿨 강낭콩양이다. 봄새 담임이 그 아이에게 싹싹 빌었다는 에피소드는 옆 학교까지 소문이 났다. 어느 날 선생님은 무심코 그녀의 길게 바글거리는 머리를 보고 한마디 했었다.

“파마할 시간 있으면 숙제 좀 하지.”

"제 방식이 있다고욧! “ 

강낭콩양이 갑자기 큰소리로 외쳤기 때문에 선생님은 좀 놀라고 무안해졌다.

“녀석 말대꾸하기는….”

 대화만 듣자면 넝쿨양이 많이 무례한 것 같지만 사실 그 머리가 타고난 왕곱슬인 것을 봄새 선생님이 모른 거였다.

나머지 애들은 외모로만 보자면 특별할 것이 없다. 하양 웃음을 남발하는 보통 딸기양, 향기로 한 몫하는 민트양, 별 특색 없이 소박한 두 여학생이다.

 야위고 책만 보는 조선파양은 조선말기 의병 출신 집안이다. 7년 전 <미스터 선샤인>의 대본작가도 애네 집안을 인터뷰했다고 한다. 고수양은 하얀 얼굴에 하늘하늘한 몸매로 수수한 매력을 지녔다.     

 5월 말, 졸업반이 수학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아니나 다를까 1반은 커다란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왔다. 여기를 가나 저기를 가나 매점에서나 문방구에서나 카톡방에서나 그 애기뿐이다. 사랑의 결투. 상추군과 비트군이 대결했다는.

 상추군은 1반 남학생 중에서 향 딸기 양에 대비되는 꽃 미남이다. 굵직한 체격에 성품도 호탕한 대인배에다 방탄의 진을 닮은 얼굴이다. 아낌없이 주고, 무슨 일에나 솔선수범하여 남 여학생 모두가 호감을 갖고 있다. 얼굴이 붉고 사방에 정맥이 튀어나온 다혈질의 비트군은 정과 의리가 넘쳐 동료 사이에 있기가 많다.

그 밖의 남자아이들은 평범하다. 이 반 남학생 사이에선 몸짱 되기가 한창 유행인데 특히 방아다리라고 하는 Y자 골격 만들기에 빠져 있다. 너도 나도 멋진 Y를 만들려고 학교 헬스장을 들락거리고 단백질 먹느라 야단이다.

 현재는 가지군이 우산처럼 넓게 퍼진 우람한 Y 다리로 가장 뽐내고 있고, 토마토군은 아무리 노력해도 일자 다리 밖에 안되어 공부로 방향을 틀었다. 그밖에 아줌마들에게 인기가 많은 외대파군, 방아다리에 첫 꽃을 피운 후 힘이 빠진 고추군이 있다.

 수학여행의 가십은 피흘림에서 시작해서 미스터리로 끝났다. 두 사람이 숲에서 결투를 벌인 후 비트군은 코와 무릎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돌아왔다. 코를 슥슥 훔치느라 양손에 피를 가득 묻힌 채로…. 숲 속의 사랑싸움에는 두 사람 이상의 남자애들이 관련돼 있다. 기타 등등의 이야기 속에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여주인공을 수 없는 것이다. 다른 반 아이들은 누구를 두고 싸움을 벌인 것인지 궁금해하고, 이런저런 상상과 추리를 했다. 1반 여학생들도 내막을 잘 모르는 같고, 모든 것을 아는 1반 남학생들은 침묵으로 일관. 

 아이들 대다수는 결투를 벌인 남학생이 고자 하는 여학생이 당근 연예인급의 향딸기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상추와 비트군이 향딸기양을 바라보는 표정을 한번 보기만 하면 금방 답이 나온다. 옆집 중닭 바라보는 눈빛이므로.

 자신만의 독특한 Y자를 만든 바질군은 일찌감치 민트양과 반 커플이 되어있으니 한 사람은 제외. 1반이든 다른 반 남학생이든 누구랑도 헤헤거릴 수 있는 보통딸기양도 제외, 톰보이 스타일 넝쿨 강낭콩양도 제외, 스포츠카가 간판인 주아양도 제외, 그럼 남은 여학생은?

 남학생들에겐 역시 가련미가 가장 호소력 있는 것일까? 가느다란 조선파양과 고수양만 남는다. 조선파양은 허약한 체형에 둘레의 측은지심을 유발하여, 학기 초부터 종종 상추군의 넓은 품을 빌리곤 했다. 그런데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은 누가 봐도 우정에 가까운 상부상조 분위기다. 여행 후에는 오히려 가지군의 도움을 받고 있고, 둘이 함께 있는 모습이 포착되곤 다.

 결국 고수양만 남는데, 흰 낯빛의 미소와 엷은 향기, 하늘거리는 몸매가 뭇 남학생을 울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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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11일 점심시간의 벨이 울리자 아이들은 왁자지껄 톤이 높아졌다. 적당한 허기를 채워줄 식사에다가 흥미진진 이야깃거리의 디저트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날 매점과 화장실과 카톡방 대화의 키워드는 '무혈 십자군'이었다. 역사 선생님은 여기저기서 들리는 그 단어에 오전의 십자군 전쟁사(戰爭史)를 복습하는군 하며 뿌듯해했고 봄새 선생님 주변 반 학생들은 그간 궁금했던 미스터리가 풀려 시원했다.

 오전 3학년 1반 세계사 수업 풍경.

 모두들 숙제를 제대로 못해 쫄아있고 예복습에 충실한 토마토 군만 여유만만이다.


선생님: 제6차 십자군 전쟁은 가장 역사적이고 의미가 있다. 인간적이고 효과적인 전투였기 때문이지. 그전 4차, 5차에서는 수많은 병사들의 희생에도 예루살렘을 못 가져왔는데. 피 한 방울 안 흘리고 협상만으로 탈환했으니까. 그래, 무혈 십자군 전쟁을 치른 주인공은 누구지?


 모두들 조용했다. 대왕 프리드리히 2세인 것을 몰라서가 아니다. 그 답을 이야기했다가는 줄줄이 이어지는 질문을 계속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답답함을 못 참고 늘 구원투수를 담당하는 토마토군을 불러 세웠다. 그런데 이번에는 모범생에게서 전혀 엉뚱한 답변이 나왔다.

"가지군입니다."

"뭐, 누구? 무슨 애기야?"

"순전히 협상만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쟁취했으니까요. 누구는 피를 철철 흘리고서도…."

 토마토군은 말 끝을 흐렸고, 여기저기 남학생들은 킥킥거리고, 조선파양은 얼굴이 빨개졌다. 여학생들도 눈이 둥그레지며 술렁거리고.

 남학생 여학생 양쪽 사정을 모두 아는 민트 바질 커플의 보충 설명에 따르면.

 남학생들은 대부분 조선파양을 연모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감을 잃어 일찌감치 포기했으나 가지군과 비트군은 일편단심이었다. 그들이 보기에 상추군이 조선파양에게 먼저 점수를 얻는 듯이 보였다. 세 사람은 수학여행 때 숲 속 회동을 했다. 비트군은 성격이 급해 상추군의 설명을 다 듣기도 전에 씩씩거리며 화를 내다가 달려가버렸다. 코피는 그 전날밤 잠자리가 불편해서 밤을 새우느라 터진 거고 무릎의 상처도 숲 속 나무 그루터기에 넘어져 생긴 것이다. 가지군은 마저 차분히 이야기를 나누고서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상추군이 조선파양을 결코 선점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집안이 친척 간이라 먼 사촌 오빠 뻘로서 도움을 주며 가까이 지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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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프링버드 작가님의 연재북 <봄새의 열두 달 텃밭 이야기>에서 6월 11일 발행  <내방식이 있다고욧!>을 읽고 써본 픽션입니다. 글 중에서 비트는 왜 이렇게 빨간색을 만들어야 했을까요?라는 대목을 읽고 생각이 떠올랐으며, 많은 단어와 표현들을 거기서 빌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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