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는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 처음 만났다. 2015년 개봉인데 AI 전문가 브런치 글벗님의 소개로 요사이 보고, 올해 나온 2편까지 이어서 즐감했다. 픽사 특유의 앙징맞은 캐릭터와 심리학적인 내용이 어른도 빠져들게 만든다. (어린이들은 부분적인 이해만 하지 않을까 싶다.)
뇌에서 감정을 칸트롤하거나 기억 저장하는 것을 의인화, 시각화, 스토리화한 것이다. 그래서 라일리라는 사람 주인공과 그녀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감정 주인공(기쁨이, 슬픔이, 버럭이, 까칠이, 소심이)이 함께이다. 2편에서는 사춘기가 되어 불안이, 부럽이, 따분이, 당황이, 추억이가 합류한다.
여러 가지 심리학적인 기제들을 영상화한 상상의 친구, 신념 저장소, 무의식의 동굴, 비아냥 협곡, 베개 요새, 루머 제작소 등을 보는 재미가 솔솔 하다. 하지만 가장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감정 소녀들 캐릭터다.
기쁨이는 아홉 가지 감정 주인공들 중의 주인공이다. 발랄하며, 밝고 긍정적으로 리더십을 발휘하여 라일리의 행복을 꾸려간다. 자연스레 관객의 스폿라이트를 받으며 인기를 한 몸에 얻는 듯하다. 깜찍한 미모의 까칠이, 키 작은 부럽이, 하품만 하는 따분이도 매력 덩어리들이다.
<인사이드 아웃 2>에서 거의 주인공 급인 불안이의 불안 불안함도, 엉겅퀴 꽃처럼 뾰족한 것들을 이고 있는 머리패션과 더불어 정겹기 그지없다.
그런데 처음에는 몰랐지만 있는 듯 없는 듯 내 마음을 내내 사로잡고 있는 소녀가 있다. 분홍색 넓은 목 스웨터와 뿔테 안경 속에서 커다란 눈을 껌벅이는 슬픔이다. 눈, 머리, 얼굴빛 모두 블루 톤이고 약간 잠긴 목소리로 조심조심 살살 이야기한다. 단발머리의 둥글넓적한 얼굴, 민짜로 뚱뚱한 체형이 내 젊을 적 모습과 비슷해서일까?
"어서 오렴 외로움아." 이런 독백 때문일까?
그 아이를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비 오는 날처럼 정돈이 된다. 안개 가득한 나무 숲 속에 있는 것처럼 푸근하기도 하다. 초록 가득한 안전한 공간에 있는 느낌이랄까? 평소에 장미가 가장 예쁘다고 말해왔으면서. 야생 들국화처럼 쓸쓸한 모습의 슬픔이에게 마음이 가는 것은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
어디선가 읽은 것처럼 슬픔은 우리를 정화시키는, 뭔지 모르게 위로와 소망을 주는 감정이어서 그런가. 기쁨처럼 언제 사라질지 몰라 단단히 각오하고 있지 않아도 되고, 더 이상 추락하지 않아도 되어 안전해서 그런가. (그 모든 것을 함유하게끔 슬픔이의 모습을 창조한 픽사의 제작진이 놀랍다.) 요즈음은 길을 걷다가도 책을 읽다가도 슬픔이만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