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뮤즈)여, 내 글을 이끄소서
배대웅 작가님 <필력의 한계> 댓글 시
글벗님이 노트북에 머리를 박고 막막해한다.
필력의 한계를 느낀다며
하루키 뺨치는 간결한 문장에
우리의 로망, 출간제의 여러 번
이미 베셀을 내신 분이
“지루하지 않으면서도 밀도 있게 쓸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이 없다.
그 정도로 긴 서사를 이끌고 갈 역량이 부족하다."
세상에나, 거짓말쟁이~
이런 엄살과 내숭이라니!
읽던 『신곡』을 다시 펼친다.
비슷한 엄살이 나타나다.
안 써진다고 뮤즈를 부여 잡는
오, 성스러운 무사 여신들이여, 나는
그대들의 것이니, 죽었던 시가 여기
되살아나고, 칼리오페가 잠시 일어나---
음악으로 내 노래를 이끌어 주소서.*
스승 베르길리우스는 어땠을까?
『아이네이스』처음 쪽에서 내숭 발견
무사 여신이여, 신들의 여왕이 신성을 어떻게 모독당했기에
속이 상한 나머지 그토록 많은 시련과 그토록 많은 고난을
더없이 경건한 남자로 하여금 겪게 했는지 말씀해 주소서.**
그러면 호메로스는?
무사의 치맛자락을 아예 놓지 않았네.
시인의 왕이라는데 엄살 왕이시다.
『일리아드』에서는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오뒷세이아』를 쓰기 전에는
들려주소서 무사 여신이여!
트로이야의 신성한 도시를 파괴한 뒤
많이도 돌아다녔던 임기응변에 능한 그 사람의 이야기를---
이 일들에 관해 아무 대목이든, 여신이여 , 우리에게도 들려주소서!***
거장을 따라 하는 글벗을 생각하며
잠이 들다.
고전을 읽어서인지 꿈속에서
파르나소스의 봉우리에 올랐다.
어떤 이를 둘러싸고 화기애애한
아홉 명의 무사(뮤즈)들
에우테르페는 피리를 불다 말고
“글을 쓴다는 건 결핍이고 그 결핍이란 부족함을 채우기 위한 욕망이나 희망이지요.”
우라니아는 하늘을 바라보며
“문학적 소양보다는 소재의 문제입니다.”
역사의 무사 클레이오는
“미래의 그분이 생각보다 훨씬 더 잘 쓸 겁니다.”
찬미의 대가 폴뤼힘니아는
“믿어 보세요. 자신의 충분한 능력을~”
풍요로운 차림의 탈리아는
“문학의 행간에서 뭘 좀 주워 먹으라는 뜻입니다.”
테릅시코레는 춤추듯 리라를 연주하며
“자신감 팡팡 채우고, 고고~~ ”
차분한 표정의 멜포메네는
“나침반도 방향을 잡기 전 흔들립니다.”
에라토는 오페라 아리아 부르듯
“여러 마리 토끼를 잡으며 끝을 보실 거예요.”
여신의 으뜸 칼리오페가
우아한 목소리로 쾅 마무리 도장을 찍었다.
“오그라듦과 싸워야 합니다!”
알람은 진즉에 따르릉
부러운 마음에 끝까지 엿듣다가
눈부신 해님과 기상, 또 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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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연옥 편 단테 알리기에리, 윌리엄 블레이크 그림, 박상진 옮김, 민음사 2007
**『아이네이스』베르길리우스, 천병희 옮김, 2007, 도서출판 숲
***『일리아드』『오뒷세이아』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2007, 도서출판 숲
배대웅 작가님의 10월 23일 발행 <필력의 한계>를 읽고 써본 댓글 시입니다. 많은 문장들을 원문과 댓글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