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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램즈이어 Nov 27. 2024

짝사랑 치료법

이젠 울지 않아요. 단테의 신곡 (8)

 단테는 지상에서 베아트리체를 떠나보낼 때 울고불고했다. 눈은 슬픔의 집이 되었고 순교라도 겪은 것처럼 다크 서클이 새겨졌다고 한다. 훨씬 전에도 꿈에서 그녀의 죽음을 예견하고 비장한 시를 지으며 슬퍼했다. 한참 후에도 피렌체를 지나가는 순례자들까지 붙잡고 “나와 함께 머물러 내 한숨소리를 들으시오”하며 함께 애도하기를 청했다.*

『신곡』의 <천국> 편에 두 번째 이별 장면이 나온다. 가장 높은 최고천(最高天)의 안내를 성 베르나르도에게 바통터치하고 베아트리체가 자신의 옥좌로 조용히 사라짐으로써. 멀리 보이는 그녀를 향해 단테가 절절한 고별인사를 하지만 두 사람 모두 눈물은 흘리지 않는다. 함께 천국 순례를 마치기까지 충만한 데이트를 했기 때문이다. 단 한 사람, 멀리서 눈가가 촉촉해진 사람이 있다. 단테 전문가 이마미치 교수님. 그 장면을 이렇게 기술했다.  

   

 그녀는 단테에 대한 자신의 사명을 마치고 그에게서 몸을 돌이켜 조용히 신이 계신 쪽을 우러르는 것이다. 이 정경은 이루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지만, 또한 비할 길 없을 만큼 슬프기도 하다. (574p) **     


 인문학 배경이 약한 나는 주로 사랑 측면에서『신곡』을 읽었기 때문에 두 사람의 데이트 양상을 눈여겨보았다. 단테 학자들은 쯧쯧 혀를 찰 것이다. 웅장한 교향곡을 지어 놓았는데, 그중 가녀린 골격 밖에 안 되는 사랑의 이중창만 주야장천 듣고 있다고. 암튼 내가 목격한 다채로운 두 사람의 교제 모습은 다음과 같다.   

   

## 연옥의 끝 부분에서 처음 재회 할 때는 낯선 만남인 듯 단테가 수줍고 떨려한다. 지상에서 단테는 베아트리체를 바라만 봤기 때문에 실제로 생애 첫 데이트다. (자세한 묘사는 지난 글 <냇물을 움키던 소년처럼>에서)     

(노래하던 여인들이)

말했다. 그대의 눈을 아끼지 마오.

예전에 사랑이 그대에게 화살을 쏘았던 곳,

에메랄드 눈앞으로 그대를 데려왔으니


불꽃보다 뜨거운 수천 가지 욕망이

나의 눈을 빛나는 그 눈에 묶었는데,          (연옥 31곡 115-119) ***     


## 어머니같이 푸근하고 안전한 사랑의 품을 느꼈다. 단테가 천국의 빛에 너무 눈부시거나 압도되는 상황을 만났을 때다. 연애 감정 안에서도 늘 모성애가 큰 부분을 차지하니까.   


그러자 그녀는 자애롭게 한숨짓더니,

헛소리하는 아이를 바라보는 어머니 같은 모습으로

나에게 눈길을 돌리고                          (천국 1곡 100-103)     


그러자 그녀는 창백하게 헐떡이는

자식에게 곧바로 달려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래 주는 것처럼                    (천국 22곡 4-6) ***     


## 놀라운 곳을 안내해 주는 다정한 친구 같은 모습도 보인다.  

   

자신의 눈으로 내 눈을 바라보면서

평온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하였다.

조금 빨리 오세요. 그대와 말할 때

좀 더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이오.

내가 시키는 대로 곁에 다가가자 말했다.

형제여, 이제 나와 함께 가면서도

왜 나에게 질문하려고 하지 않나요?」    (연옥 33곡 18-24) ***     


## 베아트리체는 신앙을 이끌어 주는 멘토처럼 자유의지와 서원에 대해 설명해 주고, 단테는 철학이나 신학 스승에게처럼 그녀에게 진지하게 귀 기울인다.    

 

사랑으로 내 가슴을 불태웠던 태양은

아름다운 진리의 감미로운 모습을

증명하고 검증하며 설명해 주었으니      (천국 2곡 1-3)     


하지만 <베>와 <리체> 소리만으로도

나를 온통 사로잡는 존경심은 마치

잠드는 사람처럼 고개를 숙이게 했다.   (천국 7곡 13-15) ***     


## 성스러움과 고결한 지성이 흐르는 분위기에서도 단테는 로맨틱함을 잃지 않는다. 연인들처럼 웃음 가득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베아트리체는 그런 나를 잠시 내버려 두더니

불 속에서도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줄 만한

웃음으로 나를 비추면서 말하기 시작했다.   (천국 7곡 16-18)     


그녀의 눈에서는 미소가 반짝이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내 눈은 나의 축복의 깊은 곳,

나의 천국을 스친 것 같았다.                     (천국 15곡 34-36) ***    

 

## 더욱 아름다워지는 베아트리체를 찬미한다. 하늘 중에서도 가장 높은 하늘인 ‘최초 움직임의 하늘’에 이르자 그 빛들에 의해서 베아트리체가 무척 아름답게 빛난다. 단테는 이런 그녀의 모습을 펜으로 담지 못하겠다며 다음과 같이 호소한다.    


지금까지 그녀에 대해 말한 모든 것이

단 하나의 찬송에 모아진다고 해도

나를 바치기에는 정녕 부족하리라.                      (천국 30곡 16-18)

여기서 나는 패배를 인정한다. 희극이든 비극이든

어떠한 시인도 지금 나만큼이나

자기가 다루는 주제에 압도되지는 않을 것이다.      (30곡 22-24) ****     


 단테는 오래전부터 갈망하던 베아트리체와 함께하는 여행을 책 속에서나마 무사히 마쳤다. 사랑의 언어를 주고받으며 지고(至高)의 선(善)을 논하고, 인간적인 성장과 신앙적인 성숙을 이뤄내면서. 빛과 사랑이 충만한 공간에서의 데이트라 밀땅이나 사랑싸움은 없었다. <천국> 편을 심혈 기울여 쓰느라 몸은 쇠약 해졌겠지만 마음은 누구보다도 행복했을 것이다. 자신에게 셀프 치유도 선사하면서.

 외형적으로는『신곡』이 역사에 길이 남는 시(詩, COMMEDIA)이자, 베아트리체에게 바치는 최고의 헌정

(獻呈)이 되었다.

  이 찬란한 열매 속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슬픔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러운 대문호의 짝사랑 치료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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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인생』단테 알리기에리, 로세티. 박우수 옮김, 민음사 2005

**『단테 신곡 강의』 이마미치 도모노부 이영미 옮김, 교유서가 2022

***『신곡』단테 알리기에리 장편서사시, 귀스타프 도레 그림, 김운찬 옮김, 열린책들 2007

****『신곡』천국편 단테 알리기에리, 윌리엄 블레이크 그림, 박상진 옮김, 민음사 2007


대문의 그림 사진: 미셀 들라클루아 전시 중에서, 한가람 미술관 특별전/파리의 벨 에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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