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는 지상에서 베아트리체를 떠나보낼 때 울고불고했다. 눈은 슬픔의 집이 되었고 순교라도 겪은 것처럼 다크 서클이 새겨졌다고 한다. 훨씬 전에도 꿈에서 그녀의 죽음을 예견하고 비장한 시를 지으며 슬퍼했다. 한참 후에도 피렌체를 지나가는 순례자들까지 붙잡고 “나와 함께 머물러 내 한숨소리를 들으시오”하며 함께 애도하기를 청했다.*
『신곡』의 <천국> 편에 두 번째 이별 장면이 나온다. 가장 높은 최고천(最高天)의 안내를 성 베르나르도에게 바통터치하고 베아트리체가 자신의 옥좌로 조용히 사라짐으로써. 멀리 보이는 그녀를 향해 단테가 절절한 고별인사를 하지만 두 사람 모두 눈물은 흘리지 않는다. 함께 천국 순례를 마치기까지 충만한 데이트를 했기 때문이다. 단 한 사람, 멀리서 눈가가 촉촉해진 사람이 있다. 단테 전문가 이마미치 교수님. 그 장면을 이렇게 기술했다.
그녀는 단테에 대한 자신의 사명을 마치고 그에게서 몸을 돌이켜 조용히 신이 계신 쪽을 우러르는 것이다. 이 정경은 이루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지만, 또한 비할 길 없을 만큼 슬프기도 하다. (574p) **
인문학 배경이 약한 나는 주로 사랑 측면에서『신곡』을 읽었기 때문에 두 사람의 데이트 양상을 눈여겨보았다. 단테 학자들은 쯧쯧 혀를 찰 것이다. 웅장한 교향곡을 지어 놓았는데, 그중 가녀린 골격 밖에 안 되는 사랑의 이중창만 주야장천 듣고 있다고. 암튼 내가 목격한 다채로운 두 사람의 교제 모습은 다음과 같다.
## 연옥의 끝 부분에서 처음 재회 할 때는 낯선 만남인 듯 단테가 수줍고 떨려한다. 지상에서 단테는 베아트리체를 바라만 봤기 때문에 실제로 생애 첫 데이트다. (자세한 묘사는 지난 글 <냇물을 움키던 소년처럼>에서)
(노래하던 여인들이)
말했다. 「그대의 눈을 아끼지 마오.
예전에 사랑이 그대에게 화살을 쏘았던 곳,
에메랄드 눈앞으로 그대를 데려왔으니」
불꽃보다 뜨거운 수천 가지 욕망이
나의 눈을 빛나는 그 눈에 묶었는데, (연옥 31곡 115-119) ***
## 어머니같이 푸근하고 안전한 사랑의 품을 느꼈다. 단테가 천국의 빛에 너무 눈부시거나 압도되는 상황을 만났을 때다. 연애 감정 안에서도 늘 모성애가 큰 부분을 차지하니까.
그러자 그녀는 자애롭게 한숨짓더니,
헛소리하는 아이를 바라보는 어머니 같은 모습으로
나에게 눈길을 돌리고 (천국 1곡 100-103)
그러자 그녀는 창백하게 헐떡이는
자식에게 곧바로 달려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래 주는 것처럼 (천국 22곡 4-6) ***
## 놀라운 곳을 안내해 주는 다정한 친구 같은 모습도 보인다.
자신의 눈으로 내 눈을 바라보면서
평온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하였다.
「조금 빨리 오세요. 그대와 말할 때
좀 더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이오.」
내가 시키는 대로 곁에 다가가자 말했다.
「형제여, 이제 나와 함께 가면서도
왜 나에게 질문하려고 하지 않나요?」 (연옥 33곡 18-24) ***
## 베아트리체는 신앙을 이끌어 주는 멘토처럼 자유의지와 서원에 대해 설명해 주고, 단테는 철학이나 신학 스승에게처럼 그녀에게 진지하게 귀 기울인다.
사랑으로 내 가슴을 불태웠던 태양은
아름다운 진리의 감미로운 모습을
증명하고 검증하며 설명해 주었으니 (천국 2곡 1-3)
하지만 <베>와<리체> 소리만으로도
나를 온통 사로잡는 존경심은 마치
잠드는 사람처럼 고개를 숙이게 했다. (천국 7곡 13-15) ***
## 성스러움과 고결한 지성이 흐르는 분위기에서도 단테는 로맨틱함을 잃지 않는다. 연인들처럼 웃음 가득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베아트리체는 그런 나를 잠시 내버려 두더니
불 속에서도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줄 만한
웃음으로 나를 비추면서 말하기 시작했다. (천국 7곡 16-18)
그녀의 눈에서는 미소가 반짝이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내 눈은 나의 축복의 깊은 곳,
나의 천국을 스친 것 같았다. (천국 15곡 34-36) ***
##더욱 아름다워지는 베아트리체를 찬미한다. 하늘 중에서도 가장 높은 하늘인 ‘최초 움직임의 하늘’에 이르자 그 빛들에 의해서 베아트리체가 무척 아름답게 빛난다. 단테는 이런 그녀의 모습을 펜으로 담지 못하겠다며 다음과 같이 호소한다.
지금까지 그녀에 대해 말한 모든 것이
단 하나의 찬송에 모아진다고 해도
나를 바치기에는 정녕 부족하리라. (천국 30곡 16-18)
여기서 나는 패배를 인정한다. 희극이든 비극이든
어떠한 시인도 지금 나만큼이나
자기가 다루는 주제에 압도되지는 않을 것이다. (30곡 22-24) ****
단테는 오래전부터 갈망하던 베아트리체와 함께하는 여행을 책 속에서나마 무사히 마쳤다. 사랑의 언어를 주고받으며 지고(至高)의 선(善)을 논하고, 인간적인 성장과 신앙적인 성숙을 이뤄내면서. 빛과 사랑이 충만한 공간에서의 데이트라 밀땅이나 사랑싸움은 없었다. <천국> 편을 심혈 기울여 쓰느라몸은 쇠약 해졌겠지만 마음은 누구보다도 행복했을 것이다. 자신에게 셀프 치유도 선사하면서.
외형적으로는『신곡』이 역사에 길이 남는 시(詩, COMMEDIA)이자, 베아트리체에게 바치는 최고의 헌정
(獻呈)이 되었다.
이 찬란한 열매 속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슬픔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부러운 대문호의 짝사랑 치료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