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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램즈이어 Nov 24. 2024

합체 아이디어의 시작은

단테일까? 단테의 『신곡』(7)

『신곡』의 <지옥편>은 무시무시한 악마들도 등장하며 잔혹한 장면들이 많아 읽기가 힘들었다. 저자이면서 책 속의 주인공인 단테마저 실신하고 가슴 아파하며 벌벌 떨곤 한다. 처음 읽을 때는 그런 부분을 휙휙 지나갔는데, 두 번째에는 찬찬히 살펴볼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지옥의 일곱 번째 구렁을 묘사하는 25곡(曲)에 피렌체의 대(大) 도둑 세 명이 등장한다. 처음에는 무차별 뱀의 공격을 받다가 돌연 뱀과 몸이 뒤섞이는데 단테는 이 부분을 매우 상세히 기술했다. 조금만 인용하자면.


두 개의 다리는 허벅지와 함께 서로

달라붙어 순식간에 접합된 부분이

아무런 흔적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지옥편 25곡 106-108)


두 팔은 겨드랑이 속으로  들어갔으며,

그 팔이 짧아지는 것만큼 짤막하던

뱀의 두 발이 길어지는 것을 보았다.

뱀이 되어 버린 영혼은 쉭쉭거리면서 구렁으로 달아났고 (112-114, 136-137)


 나중에는 변신이라는 독창적인 장면을 선보인 것에 대해 독자들의 양해를 구한다. 이런 묘사는 자신이 처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21세기의 우리는 전혀 새롭지 않건만.


그렇게 나는 일곱째 구렁이 변신하고

바뀌는 것을 보았는데, 여기서 펜이

약간 혼란해도 새로움을 용서하시라. * (142-144)


 영화에서 괴물들이 서로 합하여 변형을 일으키고, 그래서 더욱 소름 끼치는 존재가 되는 것을 종종 본 적이 있다. <트랜스포머>에서는 외계 행성의 착한 로봇들이 자동차로 변신하여 우리 곁에 남아 있기로 했다는 마지막 멘트가 좋았다. 하지만 내 생활에서 '합체'실감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손자와 브런치 덕분에. 어느 날 손자가 로봇을 가지고 끙끙거리더니 내게 도움을 청했다.

"할머니 OO 해주세요."

"뭐? 뭐라고? 파채?"

"아니~ O체. 이케 이러케 움직여가지고…."

 아이가 말을 제대로 못 할 때라 뭘 해달라는지 이해를 못 하고 있는데, 혼자 이리저리 만지더니 사람 골격의 로봇으로 갑자기 경찰차를 만들어냈다.

"와우~ 이게 경찰차가 됐네?!" 탄복하는 내게 아이는 당연함과 뿌듯함이 교차하는 표정을 지었다. 자꾸 나오는 단어는 바로 '합체'였다. 영화에서 보던 거대 로봇의 변신처럼 장난감 로봇이 합체를 통해(엄밀히는 재조립) 구급차나 트랙터등으로 바뀌는 것이 신기했다.

 나의 빈약한 합체와 변신에 대한 지식은 브런치 덕분에 조금 확장되었다. 글벗님이 <드래곤 볼> 애니메이션을 소개하고 나서다.** 보름달을 보면 커다란 고릴라가 되는 낭만과 괴이함의 변신, 퓨전이라는 고차원의 합체를 알았다. 전투력이 대등하여야 하고 각도가 맞아야 하는 등 까다로운 조건까지 갖춘, 혹은 서로 귀걸이를 차고 간단히 해치우는.

 합체를 마친(시킨) 주인공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으쓱함과 뽐냄이다. 방법상의 희한함, 결과물로 힘센 새로운 피조물이 탄생한 것에 대한 자부심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모습을 단테에게서도 보았다.

 대선배들에게 으스대는 듯한 시구가 있다. 시인 루카누스는『파르살리아』에서 무서운 독사에 물린 병사 이야기를 한 적이 있고, 오비디우스는 그의 『변신 이야기』에서 허다한 변신을 풀어냈다. 단테는 자신이 생각해 낸  변형은 두 사람의 스토리를 훨씬 뛰어넘는 방식이라고 자랑한다.

 

루카누스여 입을 다물고 이제 전개될 이야기를 들어 보시라.

오비디우스여, 카드모스와 아레투사에 대해

침묵하시라. 남자는 뱀으로, 여자는 샘으로

변하는 시구를 지었어도 나는 부럽지 않소.


왜냐하면 마주 보는 두 존재가 완전히

뒤바뀌어 두 가지 형식이 모두 질료까지

서로 바뀌도록 하지는 못했기 때문이오. (25곡: 95-102)


 단테의 스스로 대견해하는 악동 같은 마음은 퓨전 후 우주 최강(最强)이 되는 손오공이나 로봇 합체를 해낸 손자의 표정과 오버랩된다. 시간 여행으로 단테를 모셔와 요즘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보여드리면 어떨까? 다채로움에 눈이 동그레 지다가, 기어코 한마디 덧붙일 것이다.

"아이디어는 내가 원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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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단테 알리기에리 장편서사시, 귀스타프 도레 그림, 김운찬 옮김, 열린책들 2007

** 세온 작가님 브런치북 <드래곤 볼에 대해 할 말이 많아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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