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문과 커피

거장 따라 하기, 단테의『신곡』(6)

by 램즈이어

단테는 지옥문에 비명(碑銘)을 새겨 넣음으로써 (다음의 아홉 행으로 말미암아) 최초로 지옥의 정의를 시적(詩的)으로 표현한 이가 되었다. 즉 지옥문(지옥)의 자기소개서를 선보인 것이다. 그 후 700년 동안 이만큼 유력한 것은 나오지 않은 것 같다. 이마미치 교수는 이 구절을 여러 번 낭송하다 보면 지옥문의 '나'가 읽는 '나'처럼 느껴진다며, 자아 반성을 하셨다. 내 인생에서 만났던 사람을 내 말이나 행위로 고뇌의 도시로, 좌절로 인도한 적이 없었나 생각해 보는. 이것을 시의 다의성(多義性: ambiguité)이라고 덧붙였지만 참으로 겸손한 분 인 것 같다. **

나는 자기반성보다는 이처럼 강렬한 운율을 따라 시를 짓고 싶어졌다. 마침 지옥문 앞에(책 앞에) 커피를 한잔 들고 앉았기 때문에 이 물리칠 수 없는 존재를 주인공 삼았다.


<지옥문에 새겨진 글귀>


나를 지나 사람은 슬픔의 도시로

나를 지나 사람은 영원한 비탄으로

나를 지나 사람은 망자(亡者)에 다다른다.*

정의는 높으신 내 창조주를 움직였으니,

성스러운 힘과 최고의 지혜,

최초의 사랑이 나를 만드셨노라.

내 앞에 창조된 것은 영원한 것들뿐,

나는 영원히 지속되니, 여기 들어오는 너희들은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 (지옥편 3곡 1-9)

---


<커피>


나를 지나 현대인은 하루 일과 속으로

나를 지나 연인은 한 뼘어치 썸으로

나를 지나 작가는 다음 문장에 다다른다.


연민은 높으신 내 창조주를 움직였으니,

성스러운 힘과 최고의 지혜,

최초의 사랑이 나를 만드셨노라.


고달픈 인생의 낙(樂)을 위해

내 앞에 창조된 것은 오직 술(酒) 뿐,

나는 영원히 지속되니, 나를 흠모하는 자

뽀얀 피부, 하얀 이(齒), 꿀잠의 희망을 버릴지어다.


---

*『단테 신곡 강의』 이마미치 도모노부 이영미 옮김, 교유서가 2022

** 위의 책 190-193 page를 참고함

***『신곡』단테 알리기에리 장편서사시, 귀스타프 도레 그림, 김운찬 옮김, 열린책들 2007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