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는 지옥문에 비명(碑銘)을 새겨 넣음으로써 (다음의 아홉 행으로 말미암아) 최초로 지옥의 정의를 시적(詩的)으로 표현한 이가 되었다. 즉 지옥문(지옥)의 자기소개서를 선보인 것이다. 그 후 700년 동안 이만큼 유력한 것은 나오지 않은 것 같다. 이마미치 교수는 이 구절을 여러 번 낭송하다 보면 지옥문의 '나'가 읽는 '나'처럼 느껴진다며, 자아 반성을 하셨다. 내 인생에서 만났던 사람을 내 말이나 행위로 고뇌의 도시로, 좌절로 인도한 적이 없었나 생각해 보는. 이것을 시의 다의성(多義性: ambiguité)이라고 덧붙였지만 참으로 겸손한 분 인 것 같다. **
나는 자기반성보다는 이처럼 강렬한 운율을 따라 시를 짓고 싶어졌다. 마침 지옥문 앞에(책 앞에) 커피를 한잔 들고 앉았기 때문에 이 물리칠 수 없는 존재를 주인공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