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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잘 읊어 내고 시를 잘 살아내는

『꿈꾸는 낭송 공작소』를 읽고

by 램즈이어

## 소년이 노인을 만나 인생 상담하는 스토리인 줄 알았다.

“선생님! 저는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왜 혼란스럽고 막막할까요? 무엇을 좋아하는지 몰라 고민하던 때와 다른 힘겨움이 들어요. 제 길이 맞는 건지도 이제는 잘 모르겠습니다.” (p36)

첫 부분에서 이런 대화로 펼쳐지기 때문에 시낭송 하는 소년의 성장기려니 했다. 그보다는 그의 인생사를 끌고 가는 낭송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 책의 진짜 주인공은 “시 낭송”이다. 그러면서 이 분야의 大家 이숲오 작가님의 삶과 철학을 드러내고 있다. 어찌 보면 소년과 노인의 모습 모두에서 펼쳐지는 저자의 자서전 같기도 하다.

## 프루스트의『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나도 눈여겨보았던 부분이 인용되어서 반가웠다. 머리맡에서 책 읽어 주던 어머니에 대한 묘사다.

엄마는 책을 읽으면서 동사 시제에서 느껴지는 온갖 생경함을 누구러 뜨렸고, 반과거와 단순 과거에는 선한 마음이 깃든 부드러움과 다정함이 깃든 우수를 부여했다. ---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읽어가면서 길이가 다른 문장을 고른 리듬으로 만들었고, 그렇게도 평범한 산문에 일종의 감상적이고도 연속적인 생명을 불어넣었다. (p21)


이런 어머니 아래서 자라 대 문호가 된 것인지, 훌륭한 작가의 손에서 그려내니 이리 섬세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닭과 달걀의 관계일 것이다. 프루스트의 어머니는 이 책의 기준에 맞추어 보아도 프로 낭송가였다.

## 작가가 시간에 대하여, 시낭송의 현재성에 대하여 언급한 부분이 있다. (노인의 독백에서)


“그래! 이거구나. 시간에 있었구나. 시도 아니고 무대도 아니야.”

현재성이 진정성이다.

이미지보다 이야기다.

지금을 관통하고 있는…. (p129-130)


이 부분에서 언뜻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가 생각났다. 키팅 선생님이 현재에 대하여 말하는 장면이다.

로버트 헤릭의 시(詩) "시간을 버는 천사에게"를 인용하며 "시간이 있을 때 장미 봉오리를 거두라" 하는 시구와 함께. 시간을 세는 단위가 차이는 있지만 시간과 서정성을 동시에 말하는 면이 퍽 닮았다.

## 시낭송을 하다 보면 저절로 시인이 되는 걸까? 가며 가며 시처럼 아름다운 문장들을 만났다. 평소 작가님 브런치 글에서도 그랬지만.

지천에는 수많은 시들이 풀꽃처럼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고 그중에 한 송이의 시를 골라 꺾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p66)

땅속에서 갓 올라온 매미들이 이른 아침부터 골목 집집마다 우렁찬 소리를 조간신문처럼 배달하고 있었다. (p111)

## 시낭송이 예술의 한 분야로 마음에 다가왔다. 목소리를 사용하지만 성악도 창도 아니고,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판소리도 아니면서, 문학인 시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분야다. 낭송 중에는 시각과 스토리텔링이 중요한, 오롯이 독특한 한 장르로서.

세상에서 유일한 목소리로 개성 있는 감성을 사용해 시를 낭송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숭고한가? (p152)

시낭송은 새처럼 자유로운 표현 예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곳에 머무르기를 스스로 거부하고 세상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처럼 낭송하고 싶어졌다. (p212)

작가의 예술론은 참 흥미롭고 매력적이다.

애초부터 예술은 뜬구름을 잡아다가 박제하는 일이었다.

뜬구름이 존재하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박제하는 일도 실제 존재한다. 그 사이가 연결될 수 없다고 지레 판단하고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을 뿐이다. (p170)

## 중간에 소년의 내밀한 꿈에 대한 기술이 있다. 카네기 홀에서 우리말 시 낭송을 하는 것이다. 국악 등의 문화 행사와 함께 시로 이루어진 극 무대를 펼치면서. 이 장래 소망이 마치 저자의 것처럼 느껴져서 저절로 기도하며 응원하는 마음이 생겼다.


## 이 책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시낭송을 그려가면서 결국 우리 삶을 노래하기 때문이다. 신선하며 마음을 뜨끔하게 한다.


삶도 시도 제대로 감당하려면 온몸으로 관통해야 하지. 삶을 잘 읊어 내고 시를 잘 살아내는 것이 이토록 중요한 것인 줄 이제야 조금씩 알 것 같군.---

나의 존재를 소외시키지 않으면서 타인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는 것은 삶을 잘 사는 것처럼 힘겨웠지. 어쩌면 한 편의 시를 읊듯이 살아낸다면 결코 실패한 삶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어.

(212-213)

## 읽기를 마치니 낭송과 낭독에 대한 한줄기 호기심이 생겨 나도 한번 시낭송을 해 보았다.

천상병의 <귀천>, 키츠의 <나이팅게일에게 부침>, 테니슨의 <율리시스>등을.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었고, 내용들이 또 다르게 살아 움직였다. (제대로 된 낭송일지는 의문이지만)

앞으로는 좋아하는 시나 문장들은 가만히 낭독을 해 봐야겠다. 색다른 차원이 펼쳐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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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숲오 『꿈꾸는 낭송 공작소』 문학수첩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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