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경은 아름다워라
오후 시간에 병원 대기실에서 청소년 여학생들의 호호거림이 들리면 뭔가를 가늠할 수 있다. 적어도 그중의 한 명은 생리결석 소견서를 끊으러 온 아이다. 화기애애한 수다로 어디론가 놀러 가려는 분위기라 아무래도 아픔보다는 이날 덕에 쉬고 싶은 것 같다.
십여 년 전부터 생리통으로 등교가 어려운 경우 출석으로 인정해 주는 제도가 생겼다. 해가 지날수록 이 규율을 이용하는 학생들의 반응도 조금씩 바뀐다. 초기에는 이 일로 오는 경우가 흔치 않고 증세를 이야기하며 좀 쑥스러워했다. 점점 늘어나더니 요즘은 꽤 자주, 당당하게 이용한다. 때로는 한 달에 두 번씩이나 와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장래 귀한 아기를 낳을 기둥들이라 되도록 마음 편히 끊어주려 마음먹으니 친구까지 데려오기도 한다. (다른 곳은 엄격한 분위기인가?) 인구 절벽이 심해지는 기사를 접하면 더욱 잘해 줘야 할 것 같다.
이 또한 격세지감이다. 우리 때는 월경의 고통을 겪는 여학생의 건강과 인권을 위한 이런 제도를 상상이나 했던가? 힘듦을 감수하는 것을 넘어, 표시를 안 내려 애쓰며 태연하게 학교 시간표를 따라갔다. 중요한 생리 현상이건만 뭔가 감춰야 하는 일로 생각하면서.
중 2 때 초경을 맞이할 때의 난감한 마음이 생각난다. 일곱 형제의 중간이라 부모님의 살뜰한 배려는 기대할 수 없었고 언니들 도움으로 어찌어찌 꾸려 나갔다. 낯설고 불편한 마음을 친구에게 토로했을 때 뜻밖에 들은 이야기가 있다.
“그렇게 부끄러워하지 마. 기뻐할 일이야. 외국에서는 파티까지 한단다.”
“뭐?”
동네방네 다 떠들며 자랑하고 남녀 친구들을 모아 축하 파티를 한다니. 참으로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감당하기 벅찰 것 같은 문화였다.
내가 부모가 되었을 때 둘레에서 얼핏 딸을 위한 초경파티 소식을 들었다. 아들밖에 없어서 자세히 묻지는 않았지만 자녀의 성숙을 격려해 주는 멋진 엄마로 여겨졌다. 축하 선물 보따리에는 뭐 뭐가 들어 있었을까?
개원의로서 십 대 소녀들의 초경 지도보다는 중년 여성의 갱년기 증세에 대한 상담을 더 많이 했다. 세월이 가며 적극적인 대처로 처방이 달라졌는데, 밖에서는 인식의 변화가 더 크다.
우선 2000년대 초반부터 등장한 ‘완경’이라는 용어다.
폐경(閉經)'의 '폐(閉)'는 '닫히다', '멈추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 여성의 인생에서 자연스러운 변화를 마치 '기능의 상실'이나 '끝'으로 여기는 뉘앙스다.
이런 부정적인 인식에서 벗어나고자 '완료하다'라는 의미의 '완(完)'을 담았다. 하지만 '폐경'이 아직 의학 전문용어로 사용되고 있으며, '완경'이 공식적으로 의학 분야에서 통용되고 있지는 않다.
영어 단어와 서구의 어원은 변함이 없다. 갱년기의 climacteric 은 사다리를 뜻하며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완경기의 menopause는 달(month, mois)과 멈춤, 쉼(cessation)을 혼성해서 만든 것이다. 유럽에서 menopause라는 용어대신 ‘도로를 통과한다’ 거나 ‘해의 변화’를 뜻하는 단어를 사용하는 나라들이 있다. 이렇게 완경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 문화권의 여성들은 갱년기 증상으로 덜 고통받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한다.*
요즘은 월경의 마침을 여성으로서 한 과정을 마무리하고 새 삶의 단계로 나아가는 '완성'의 의미로 해석한다. 여성을 '생식'의 측면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에 저항하며. 완경기를 잃어버린 젊음, 허약함, 가치 하락과 연관 짓는 이야기에서 벗어나 우리 몸에 대한 정당한 몫, 주체성, 긍정적인 목소리를 가다듬고 퍼뜨리고자 한다.*
이제 둘레에서 완경 파티에 대한 이야기를 심심찮게 듣는다. 폐경을 앞둔 여성들이 블로그에서 우리 함께 완경 파티 하자거나, 어버이날에 딸이 어머니의 완경파티를 해 주는 등. 여성 단체에서 ‘세계 월경의 날’을 맞아 완경 당사자들을 위해 완경 파티를 한다는 소식지도 보았다. ‘월경의 날’은 생리를 존중하는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평균 5일간 지속하고 28일 주기의 의미를 담아 5월 28일로 정했다. 2014년 처음 독일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오래 동안 여성의 몸과 관련된 여러 가지 현상을 쉬쉬하며 부정적으로 바라봤다니. 이제라도 인류 생존의 중심 역할을 하는 생리의 시작과 완결을 기념하는 분위기가 참 좋다.
나도 둘레의 후배들을 위해 그런 순서를 한번 만들어 보고 싶다. 완경 파티에는 어떤 선물이 좋을까? 오십 대의 운동 생활을 위한 아령이나 어깨 스트레칭 기구? 글쓰기 꿈을 키워 보라는 필사노트? 비타민디나 칼슘이 담긴 항산화 건강식품? 이모저모로 멋지게 축하해 줄 궁리를 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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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경 선언: 팩트와 페미니즘을 무기로 내 몸과 마음을 지키는 방법』 제니퍼 건터 지음 김희정 안진희 정승연 염지선 옮김, 생각의 힘,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