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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즈칸의 어머니처럼

폐경이론의 할머니 가설

by 램즈이어

예비 할머니였을 적에 친구가 귀 뜸해 준 이야기가 있다. 신생아실에서 아기를 보자마자 먼저 사돈댁의 손을 덥석 잡고 판세를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부인, 이제부터 얼마나 수고가 많으실까요!”

할머니들의 뜨거운 감자인 육아에 대한 조언이지만(일찌감치 발뺌을 하라는) 실제로는 각 가정의 고유한 사정에 따라 일이 나누어진다. 일하는 시어머니라 적당히 용돈을 보내는 선에서 넘어가려 했는데, 다시금 친구의 따끔한 일침이 있었다.

“그렇게 손 하나 까딱 안 하면 안 돼. 주말에 다만 몇 시간이라도 봐줘야 할걸?”

며느리가 전업 주부인 덕에 주말에 아주 가끔 돌보는 것으로 시늉만 내었다. 전문직 딸을 둔 지인은 도우미와 함께 힘겹게 손주를 키운다. 몇 년 전까지 시부모를 가까이서 섬겼던 우리는 만나기만 하면 끼인 세대 하소연을 나눈다. 부모님 공경이 끝나니 이어서 손주 돌봄에 참여해야 하고 우리의 노후는 자녀에게 기댈 수 없다며 스스로 연민에 빠지곤 한다. 하지만 조금만 둘레를 살피면 결혼과 출산이 드문 요즈음 손주의 육아로 지지고 볶는 일은 행복한 고민임을 알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워킹 맘이 많아진 요즈음 풍속도라고 생각했는데 수전 P. 매턴의 저서 『폐경의 역사』에 의외의 내용이 나왔다. 현재 유력한 폐경이론인 ‘할머니 가설'(Grandmother hypothesis)이다. 출산을 마친 나이 든 여성(할머니)들이 영아기의 손주 돌봄에 기여하고, 식량을 채집해 딸과 손주들을 먹여 살림으로써 손주들의 생존율을 높였다는 것이다. 그 결과 딸들이 더 많은 자녀를 낳을 수 있게 해서, 궁극적으로 자신의 유전자를 가진 후손을 더 많이 번식시켰다. 즉 여성의 폐경은 종의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한 진화적 적응이라는 것이다.

딸의 갓 태어난 아기를 함께 끙끙거리며 돌보는 친구는 영아 생존율을 높인 선사시대의 할머니에 맞닿았고, 직장에 나가며 용돈을 도운 나는 산열매와 뿌리를 채집한 나이 든 여성을 잇는다. 인류 종족 보존을 위해 먼 옛 시대부터 내려온 전통이니 끽소리 말고 씩씩하게 잘 감당해야 하나보다.

그 귀감으로 칭기즈칸의 어머니가 등장한다. 그녀는 출산을 끝낸 인생 후반에 오히려 놀라운 역사를 썼다. 그것도 남편이 없는 상황에서.

칭기즈칸의 어머니는 7명의 자식(훗날 칸이 된 테무친 포함)과 함께 몽골의 오논강 강둑에 버려졌다. 1170년 그날 아침 번식 이력이 끝나고 미래가 암울해 보였을지언정 허엘룬은 역사상 생물학적으로 가장 성공한 여성 중 한 명-놀랄 만큼 많은 현존 인구의 시조-이었다.

남편 예수게이가 죽은 후 혼자가 된 허엘룬은 야생 뿌리와 산딸기를 채취해 다섯 자식과 두 의붓자식을 먹여 살렸다. 하엘룬한테는 자신의 아들들을 통해 3500만여 명의 직접적인 남계 후손이 있는 셈이다. 만일 허엘룬이 남편의 부족으로부터 추방당한 어두운 시절에도 계속해서 자식을 낳았다면 그 성과는 훨씬 덜했을 듯싶다. (13p)


서구 문화가 거의 침투하지 않은 채 살았던 치치밀라의 마야족 이야기도 나온다. 완경은 마야족 환자에게 아무런 생리적 혹은 심리적 문제를 초래하지 않았다. 열감을 호소한 적도 없다. 심지어 많은 이들이 마치 성인기의 과중한 부담이 있기 이전의 생애 단계로 되돌아간 것처럼 완경기에 ‘젊음과 자유로움’을 느꼈다.

태국의 시골 마을 여성들에게도 영어의 hot flash (열감), hot flush(안면홍조)에 가까운 용어는 없다. 1980년대 일본 중년 여성은 주로 가타코리 증세-어깨의 통증-를 호소한다며, 폐경 증후군이 문화적 증후군과 공통된 부분이 있다고 했다.

폐경 개념과 중년의 문제는 근대화하고 있는 사회에서 농장도 없어지고 집안의 자식도 없어지자 자신들에게 규정된 역할이 지극히 적다는 것을 알게 된 여성의 취약성과 혼란을 반영하는지도 모른다. (421p)

완경은 개입이 거의 필요 없는 정상적이고 심지어 건강하기까지 한 발달로 보는 게 훨씬 적절하단다. 완경을 약으로 관리해야 하는 의료 질환으로 생각한 것은 18세기 이후라며.

갱년기 증상이 문화적 산물이라면, 우리나라에서도 서양 의학이 발전하여 요사이 유별나게 이야기하는 증세란 말인가? 이 증상이 내게 유난히 힘들었던 것은 폐경 상담醫 로서 오히려 의학지식이 많아서였을까? 사회적 요소가 빙산의 아래 부분처럼 그렇게 커서 21세기를 사는 내게 도드라진 증상을 느끼게 한 걸까?

하지만 내 몸은 생생하게 힘들었다. 어떻게 자연스럽게, 별일 아닌 발달의 한 단계처럼 잘 지나갈 수 있을까? 내 경우를 생각하면 결코 수긍이 안 가지만, 갱년기 증후군 어쩌고 없이 잘 살아낸 어머니 세대를 생각하면 맞는 이론 같기도 하다.

할머니 이론을 생각하면 오십 초반에 여러 증상으로 야단 법석 했던 자신이 좀 머쓱하다. 순적하게 넘어가는 사람도 꽤 있는데, 문제를 느끼지 않는 사람들은 병원에 오지 않으므로 내가 잘 몰랐던 걸까?

갱년기는 대수롭지 않게 감당하고 굳세게 인생 후반을 살아야 하나보다. 그런데 우리는 석기시대 할머니들보다 훨씬 일이 많다. 손주 보살피는 일과에다 자아실현의 욕구를 좇느라 "바쁘다 바빠" 하면서. 힘과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으려 헛둘하고 스스로를 다잡는 모습이 칭기즈칸의 어머니 못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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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경의 역사: 과학에서 의미까지』 수전 P. 매턴 지음 조미현 옮김, 에코리브르 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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