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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돌이 아빠 Jul 08. 2023

고추와 눈물

<매일 다른 기분> 시리즈

<너는 너만 생각해 시리즈: 출렁 01> 종이에 과슈, 23 x 16 cm, 2023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우리나라에서는 '-하지 마라'는 식의 금기가 참 많다. '문지방 밟지 마라', '비 올 때 해조류 먹지 마라', '머리맡에서 서서 아기가 거꾸로 올려보게 하지 마라', '밤에 휘파람 불지 마라', '빨간색으로 이름 쓰지 마라', '다리 떨지 마라', '한숨 쉬지 마라' 등 해야 할 것보다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떠올리다 보면 행동에 제약이 많아진다.


 나는 겁도 많고 눈물도 많다. 사소한 일의 인과관계를 부풀리는 상상을 하다 보면 거의 세상이 멸망할 정도의 무시무시한 일이 떠오른다. 그리고 별거 아닌 일에 상처를 받아 몇 날 며칠을 가슴앓이를 하는 만큼 작은 호의나 인사치레에도 대단한 의미부여를 하며 감동받기 십상이다. 이런 일들에는 늘 빠지지 않고 눈물이 울컥 차오르거나 몸이 부르르 떨리며 몇 방울 뚝뚝 떨어지기도 한다.


"징징거리고 울지 마! 할머니가 고추 떨어진다고 그랬지?!"

"이이이... 할머니 내가 싫어하는 말 하지 말랬지!! 끄이이이 끅끅..."


 오늘도 하원 후 콩돌이를 돌보아주는 엄마네 현관문에서는 한바탕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나 역시도 엄마의 막무가내식의 육아와 온갖 토속신앙의 의미를 겪으며 컸기에 콩돌이가 느끼는 짜증에 크게 동감하고 있었다.


"이이... 아빠! 할머니가 자꾸 싫은 말 해! 아빠가 울어도 괜찮다고 그랬지?!"

"응- 괜찮아, 울어도. 아빠도 많이 울었는데 고추 안 떨어졌어."


 사춘기에 몇 번,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도 고추가 (마치 조립식 장난감처럼) 빠지는 꿈을 꾼 적이 있다. '고추가 떨어진다'는 표현보다 레고나 건담의 관절부위가 '뽁'소리와 함께 분리되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 같은데, 벌써 몇 년에서 십여 년 가까이 지난 꿈인데도 당시 꿈에서 느낀 당황스럼이 꽤 생생히 남아있다. 생활에서 느끼는 불안의 표현이겠지만 문자 그대로 '고추가 떨어진다'는 끔찍한 협박을 평생 겪으며 설마 설마 했던 일들이 총 천연 꿈에서 펼쳐진 것 같다. 어쩌면 평소에 너무 많이 울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 정말... 알지? 정말 가고 싶었는데... 흑흑..."

"괜찮아, 어떻게 더 최선을 다해 거기서. 잘했어, 충분히."


 아내 옆에서 또 한바탕 눈물즙을 짰다. 너무 이뤄지길 바란 일정과 전시가 무산되자 해머로 마음을 내리 찧은 것 같이 욱신거렸다. 정처 없이 어두컴컴한 한강변을 걷고 이튿날 콩돌이가 등원을 한 사이 아내를 붙잡고 질질 눈물을 흘리며 속상해했다.


"울어도 괜찮아. 아빠도 만날 울지만 고추가 그대로 있어."


<너는 너만 생각해 시리즈: 출렁 02> 종이에 과슈, 23 x 16 cm,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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