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참으로 빠르게 말을 걸어왔고, 언뜻 보아선 알 수 없도록 말 속에 거짓의 차가움을 담아 함께 건네었다. 아마 알아채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말에 꽁꽁 싸매어 알아챌 수 없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교묘하게 가로지르는 화살일지라도 그 끝이 뾰족하다는 것을 숨길 수는 없었다.
제발 선을 넘지 말기를 바라는 사람은 어딜 가나 있기 마련이었다. 적당한 예의를 지키며 밀어냈지만 밀어낸 만큼 다가오는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마 모르는 거겠지,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았으니 이것이 경고임을 모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 눈치채고 있었음에도 눈치 없는 척 연기하는 것을 언제까지나 봐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교묘하게 피해 가는 표정들과 말들이 헷갈릴 때도 있었지만은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그럼에도 나아지지 않는 기분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무례함에 상처받고 싶지 않았지만 그 순간에 한번, 곱씹어 보며 한번, 어이없고 화가 나서 한번. 최소 세 번은 상처를 받아야만 했다. 기분이 나쁘다가도 잘못된 사람들의 잘못된 말에 왜 이렇게까지 아파해야만 하는 것인지, 왜 이렇게까지 나의 기분과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인지. 되려 나를 탓할 때도 있었다.
상처를 주는 말에 가깝고 멀고의 거리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고, 상처를 받는 말에 가깝고 멀고의 깊이는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거리와 깊이는 외부에는 드러나지 않을 때가 많았으니, 막아내고 밀어내다 끊어진, 이미 보이지도 않을 만큼 사라져버린 상대방이라는 것은 나만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일방적인 조언은 필요하지 않았으나, 언제나 위한다는 이유로, 대화라는 명목으로 말을 걸었고, 그렇게 남들에게 과시하고 싶어 하던 본인의 존재감은 결국 나에게는 가식으로 드러나게 될 뿐이었다.
피하고 싶은 것들에 대하여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어쩌면 살면서 제일 피하고 싶은 것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떻게 겪어보지 않고 알 수가 있겠는가. 결국 결과는 둘 중 하나였다. 피하지 못하고 맞닥뜨리게 되어 상처 입고, 그로써 상처를 주고 싶어 하며 싫어하는 존재가 될 때가 있는가 하면, 설령 피했음에도 안도가 아닌 더 큰 허탈감을 가져오게 될 때도 있었다. 정작 무례한 사람은 아무렇지 않은데 나만 버둥거리고 있었다는 것이 굉장히 창피하고, 억울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의 작은 천 조각은 화살을 막아내지도 못했고, 뾰족한 경고장을 날리지도 못했다. 그래서 집중을 해야만 했다. 내가 말이 없는 건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없는 것이고, 내가 앞만 보는 건 당신에게 듣고 싶은 말이 없어서였다. 예민하다고, 어딘가 차갑다고 괜히 흘기기 전에 본인이 어떤 대화 방식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 보길 바란다. 나는 나의 작은 틈새를 지키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