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복의 첫 번째 조건이 물질적 안정이라는 조사결과가 나왔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 순서라면 나는 기준에도 한참 못 미치지만 대체로 행복하다고 느낀다. 심지어 사업을 하며 여유 있게 살고 있는 한 친구는 나를 세상에서 가장 부럽다고까지 치켜세우기도 한다. 물론 어떤 의미에서 그런 말을 하는지 알고 있지만 내가 그 친구보다 나은 점이 애써 찾아보자면 행복하다는 것 하나라도 있으니 다행이라고 웃어넘긴다.
내가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적은 용량의 기억과 낙천적인 성격 덕분인 것 같다. 부끄러운 과거의 기억 몇 개쯤이야 왜 없겠냐마는 대부분 잊어버리고 세월이 흘러 무뎌진 탓에 지금까지 괴롭히는 것은 별로 남아있지 않다. 게다가 미래에 대한 걱정도 별로 하지 않는 편이라 나도 모르게 동서양을 막론하고 철학자들이 말하는 행복에 가까워지는 방법을 실천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위의 그림은 작은 터치, 점들로 벚꽃을 형상화한 작업인데 내가 맡고 있는 그림 수업에서 이런 작업을 해보면 어떤 회원은 지겨워서 못하겠다 하고 어떤 회원은 적성에 잘 맞다고 한다. 점 하나를 찍을 때마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어서 괴로운 사람도 있을 테고 점을 찍을수록 생각이 사라져서 자신을 잊어버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삶의 고통을 줄이는 방법 중 하나가 몰입을 통한 망각이라고 하는데 그림이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점 하나하나에 그리움을 담고 있다는 김환기 화백의 점화는 깊은 명상을 통한 성찰의 결과라고 한다. 대가의 철학적 깊이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작업을 하는 과정이 저마다의 행복으로 가는 길이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