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항해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토리 Mar 16. 2024

지독한 장거리 연애,
세 번째 이야기

결국에는 헤어짐으로

이럴 거면 우리 헤어지는 게 맞겠다




메일이 아닌 다른 수단 '방선'


방선, 말 그대로 배에 방문하는 것이다.


배가 항구에 들어가면 배의 업무에 관련된 많은 사람들이 배에 방선을 한다. 배는 단순히 생각하면 기름 공급하는 걸 빼면 다른 지원이 필요 없을 것으로 보이는데 절대 아니다! 큰 상선들은 그 크기만큼 손도 많이 간다.


입항을 하게 되면 화물 관련된 사람들, 고장 난 기기를 고치기 위해 올라온 서비스 엔지니어들, 연료유나 윤활유 수급 관련 작업자분들, 선용품이나 기부 속 그리고 부식 업자분들, 배의 안전성을 검사하기 위한 항만국 직원이나 선박 검사원들 이렇게 짧은 시간 정박에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배에 올라오고 내려간다.


이 많은 사람들 중에 가장 선원들이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 바로 가족이나 연인이다. 물론 배에 해외 항구에 입항하게 되면 불가능하지만 부산, 광양, 인천, 목포 등 우리나라에 입항하게 되면 선원의 가족이나 연인들도 배에 방선할 수가 있다. 실제로 보지 못하고 메일과 영상통화만으로 몇 달의 시간을 견뎌내는 건 정말 쉽지 않다. 그래서 정말 시간도 오래 걸리고 방법도 불편함에도 두 손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사랑하는 사람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방선을 한다. 그 힘듦을 알기에 선원들은 사랑을 받고 그걸 바탕으로 또 승선 생활의 원동력으로 삼아 하루하루 승선기간을 채워나간다.


내 흑역사 중에 하나인데 실습 기관사 시절 같은 실습생 동기인 실습 항해사 부모님께서 방선오 신 걸 보고 방에서 부모님께 보고 싶다고 전화를 했던 적이 생각난다. 그 전화를 받는 부모님 심경은 얼마나 찢어지셨을까... 참 철이 없었다. 올해로 실습을 마친 지 딱 10년 차인데 그 친구는 벌써 선장이 되었다.


이렇게 좋을 것만 같은 방선이지만 이 방선이 우리 커플의 길었던 연애에 단 한번 있었던 헤어짐의 원인이 되었다.



긴 연애의 끝


이기사로 첫 번째 진급한 배였다. 

중국에서의 유일한 사치였던 과자 쇼핑

기존에 다니던 회사는 파산했고 새로운 회사에서 처음 승선한 배였다. 내가 지금까지 승선했던 배들과 비교해 가장 작고 컨디션도 최악이었다. 싱가포르로 날아가 중고선을 인수해서 간신히 그 배를 중국으로 끌고 가서 독*에 들어가 수리만 두 달가량을 진행했다. 독 기간 동안 정말 주말에 쉰 적도 없었고 야근도 잦았다. 몸은 지칠 대로 지쳐있었고 처음 하는 이기사 업무에 마음도 지쳐 있었다. 이 기간이 나의 승선 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기억 중 하나다.

미얀마 선원들에게 인수인계받은 나의 작고 소중했던 방

간호사였던 여자친구도 사회 초년생 때는 병원에서 주는 대로 3교대 근무를 했지만 이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이제 오프 신청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처음 오프 신청을 했다고 메일이 왔고 나는 내심 방선을 와주기를 바랐다. 하루를 꼬박 기다려 받은 메일을 열어봤는데 여자친구는 오프 신청으로 방선을 오는 게 아니고 친구와 수영장을 간다고 했다. 몇 달 동안 너무 지쳐 있었고 내가 유일하게 기댈 구석이었는데 내 상실감은 이로 말할 수 없었다. 사실 여자친구 입장에서도 몇 년 만에 스스로 얻은 휴가였는데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이런 걸 헤아리지 못할 만큼 지쳐있었다. 결국 이 작은 서운함이 헤어짐까지 이어졌다.


너무나도 이기적인 판단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스스로에게 너무 지쳐 다른 생각은 할 수가 없었다. 남은 승선 기간 동안 난 지칠 대로 지쳐 있었고 그렇게 하선할 때까지 두 달간 나는 여자친구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이별 후 두 달


시간이 꽤 지나서 그런가 아니면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그런가 사실 내가 어떻게 다시 연락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한 건 하선을 하고 내가 여자친구가 사는 지역으로 찾아가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여자친구가 대단하다. 메일로만 연락이 가능한 나를 몇 년을 기다려줬는데 오히려 자기가 화를 내며 헤어지자 말하고 몇 달간 연락을 안 하니 여자친구 입장에서는 기가 찰 노릇이었을 것이다.


돌아온 나를 이해해 주고 담담하게 받아주던 그 모습에 난 다시 한번 반했다. 나의 결혼은 어른 같은 내 여자친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결혼에 성공한 지금에서 보면 정말 그때의 나는 이기적인 사람 그 자체였던 것 같다. 그래서 지금도 항상 그 일이 나오면 나는 벙어리가 된다. 


네 번째 이야기에서 계속



중국 산하이관 조선소에서 두 달간의 도크

* 도크 : 배가 항구에 들어와 잠깐 수면 위에서 받는 연차검사와 달리 선박의 2~3년 차 중간검사, 5년 차 정기검사에는 배의 하부를 볼 수 있는 Docking 검사가 병행되어야 한다. 그래서 배를 Dock에 두고 물을 제거하여 배의 수면하 부분에 대한 수리를 하는 것을 말한다. 대게 2주 이상의 장기간의 기간을 두고 해수로 인해 평상시에 수리하지 못한 부분까지 많은 수리를 하게 된다.

나의 경우 중고선을 인수했기에 정말 배의 모든 부분에 대해 수리에 임하게 되어 두 달이라는 엄청 긴 시간이 소요되었다. 도크를 경험하지 못하는 선원도 많지만 나의 경우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3 기사, 2 기사, 1 기사 각 한 번씩 도크를 경험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독한 장거리 연애, 두 번째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