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초페스토파스타
겨울이 오면 주부들은 섬초, 포항초, 보물초라는 이름이 붙은 시금치를 산다. 노지에서 해풍을 맞으며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여 단맛이 극대화된 시금치이다. 겨울 시즌에만 먹을 수 있는 달콤하며 짭짤한 그 시금치의 맛에 모두들 빠져버린다. 추위를 이겨내고 수확한 섬초의 맛은 밥도둑이기에 가격이 어느 정도 내리면 너도나도 대량으로 산다. 많은 양을 한 번에 먹을 수는 없기 때문에 섬초를 데친 후에 냉동실에 쟁여두고 봄 에도 여름에도 섬초를 해동시켜 먹는 게 주부들 사이에서 트렌드다. 작년에는 3kg, 5kg 섬초가 엄두가 나지 않아 망설이다가 포기했었다. 작년에 시금치 한 단에 8천 원 넘게 올랐을 때 기필코 올겨울에는 시금치 쟁이기에 동참할 것이라고 마음 먹었다.
우리가 보통 마트에서 한봉지 사면 250g정도가 들어있는데 5kg을 일단 겁 없이 주문했다. 보통 동네 마트에 가보면 큰 박스에 시금치만 담겨서 원하는대로 봉지에 담아서 사간다. 우리집에 도착한 섬초는 내가 바로 마트에서 봤던 그 커다란 박스였다. 5kg이 이정도나 많을 줄 정말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어쨌든 일을 저질렀으니 데쳐서 소분해서 냉동실에 저장해야한다.
1차관문은 세척이다. 겨울에 찬물에 섬초를 머리감기듯이 흔들흔들을 무한반복 하다보니 손이 얼어 감각이 없을 정도였다. 마음속 외침은 한가지였다. 다시는
이렇게 무식하게 쟁이지 않기로. 2차 관문은 데치기다. 큰 곰탕 냄비에 물을 끓이는 동안 섬초의 보라색 뿌리를 칼로 4등분 해서 손질을 한다. 물이 끓으면 뿌리부터 넣어서 대충 30초 후에 건져내서 찬물 샤워를 시킨다. 바닷가에서 나는 시금치이기에 제대로 세척을 하지 않으면 뻘이 엄청 나게 많이 나온다. 3차 관문은 소분하기이다. 한 끼 먹을정도 담아서 지퍼백에 차곡 차곡 탑을 쌓는다. 지퍼백에 12봉지나 나왔다. 두시간이 훌쩍 지나고서야 섬초지옥이 끝났다.
과정은 너무나 힘들었지만 막상 소분해놓은 섬초를 보니 든든했다. 이제 섬초 팍팍넣고 김밥, 잡채, 섬초 무침 등 다양한 요리를 해내리라 메뉴를 구상했다.
섬초 다듬고 세척하는 과정은 비록 무수리 같았지만 식사는 우아한 여성처럼 먹고싶었다. 포크로 또르르 말아서 작게 입을 벌려 한 입 쏘옥 먹는 파스타가 제격이었다. 바질페스토처럼 섬초페스토를 만들어 파스타 만들기를 시작했다.
냉동실을 보니 잣, 아몬드, 그라나파다노 치즈가 있어 꺼냈고 올리브유도 꺼내왔다. 항상 엄마가 잣은 냉동실에 늘 있어야 한다고 떨어지면 채워두라 하셨었다. 의외로 잣이 쓰이는 일이 나에겐 많이 있었다.
다 넣고 올리브유 듬뿍 넣고 마늘도 조금 넣어주고 한번에 갈아준다.
그렇게 어려운 음식이 아닌데 그렇다고 번거로운 일도 아닌것 같다. 점점 형태가 페스토로 변화는 과정을 지켜보면 완성작이 어떻게 나올 지 너무 설레인다.
초록초록한 빛깔을 보니 꽤나 그럴듯 해 보인다. 쉐프가 별거있겠는가? 나도 집에서 부지런 떨면 쉐프 될 수 있지. 물론 부지런의 과정에서 손이 시려워서 감각을 잃을?정도였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에 어려움은 금방 잊고 결과물을 향해 달려간다.
씻어놓은 잼병에 담아놓으니 감격스러울 지경이다. 심지어 병안에 딱 맞게 들어가서 양 조절이 완벽했다. 이럴 때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반찬 해서 통에 넣었을때 딱 맞는 순간!
노동의 시간이 길었으니 면을 삶고 파스타를 해서 이 작업을 어서 마무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파스타 삶을 때마다 물이 끓어 오를 때 넘칠까봐 살짝 긴장하는데 딱 저만큼 올라오고 말았다. 오늘의 두번째 희열이 여기에서 왔다.
레시피랄것도 없고 면넣고 면수 넣고, 페스토, 토마토, 소금, 후추, 치킨스톡 조금 넣어주면 고급스러운 섬초페스트파스타가 완성이다.
화룡점정으로 치즈까지 갈아주면 내 집이 레스토랑이지.
잣과 아몬드의 고소함과 섬초의 달달하고 짭짤한 그 맛이 이렇게나 잘 어울리다니 감탄 그 자체이다. 누구든 집에 오면 간단하게 해주고 싶은 요리이다.
이렇게 또 한 끼 해서 먹었다. 밥 챙겨 먹기는 싫고 맛있는 식사를 하고 싶을 때 딱인 것 같다.
더군다나 섬초가 가득이니 나름 건강식인 것 같다고 생각하며 먹으니 마음이 편안했다.
섬초파스타를 먹으며 내년에는 절대로 박스로 주문하지 않겠다 다짐하며 식사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