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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리아 Mar 09. 2023

오늘부터 꽃을 좋아해도 된다고 허락했다.

엄마는 꽃을 싫어해.

둘째 아이의 첫 생일에 남편이 처음으로 꽃을 사 왔다. 연애할 때부터 난 늘 말했다. "난 꽃 싫어하니깐 앞으로 돈으로 줘. “ 그래서였는지 연애부터 결혼생활동안 남편은 나에게 꽃을 사주지 않았다. 그런데 처음 사온 그의 꽃다발은 싫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예뻐서 계속 보고 또 보았다. 오랜 시간 동안 싱싱함을 유지시켜 주기 위하여 매일 물도 갈아주고 줄기도 조금씩 잘라 주는 정성까지 보였다. 매일 식탁에 앉아 차를 마시거나 책을 읽을 때 꽃은 마치 나와 함께 소소한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아 마음속이 풍요로워졌다.

남편이 사 온 첫번째 꽃다발

  나는 왜 꽃이 싫다고 했을까? 곰곰이 이유를 생각해 보니 꽃에 대한 나의 첫 이미지가 떠올랐다. 초등학교 졸업식이었는데 엄마가 꽃은 금방 죽는다고 아까우니 조화를 사서 엄마가 직접 꽃다발 포장해서 가져온다고 했다. 엄마는 그래도 결혼 전에 꽃꽂이도 배우고 나름 세련된 안목이 있으니 자신감 넘쳐 보였다. 엄마는 노란 프리지어 조화를 한 아름 사 왔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조화도 그리 싼 편은 아니다. 다만 생화와는 다르게 영원히 그 상태를 유지한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프리지어라는 꽃을 알게 되었다. 엄마는 전날 밤 프리지어 조화를 묶었다 풀었다 분주하게 준비를 했다. 그리고 졸업식 당일이 되었는데 다른 친구들 손에는 장미, 프리지어 등과 안개꽃으로 꾸며진 풍성하고 향기 나는 꽃다발이 들려 있었다. 그때 나는 나의 조화와 생화의 차이를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향기가 나지 않는 가짜꽃 꽃다발. 어린 마음에 다른 친구들것과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꽃다발이 부끄러워졌다. 사실 들고 있기 싫을 정도였다. 왜 엄마는 남들처럼 생화를 안 사줬을까? 꽃은 금방 죽으니 돈 주고 사기 아깝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였고 시들면 쓰레기가 되어버린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였다. 크면서 생화에 대한 나의 생각은 엄마의 가르침과 일치했다. 꽃은 아까우니 나는 그 돈으로 다른 것을 사겠다고 나 스스로가 엄청난 실용주의라고 굳건하게  믿었다.

 

결혼하고 얼마 후에 친정에 갔는데 식탁에 하얀 장미 한 다발이 꽂혀 있어서 나는 궁금했다. “엄마! 이 장미 뭐꼬?” “어, 그거? 내가 내 생일이라 한 다발 사 왔다. 이쁘제?” 엄마가 돈 주고 꽃을 사다니. 그러고 보니 집 안에 화초들도 엄청 많아졌다. 그러더니 엄마는 하나하나 이름과 특성들을 소개해줬다. 사실은 엄마는 꽃을 싫어했던 게 아니었다. 엄마는 누구보다 화초들을 좋아하고 아꼈던 것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에는 그런 것들을 아껴서 교육비, 생활비 등에 쓰느라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고 살았던 것이었다.

생일에 받은 꽃다발

내가 남편의 첫 번째 꽃을 너무 좋아했는지 남편은 내 생일에도 꽃을 사 왔다. 봉오리에서 꽃을 피워내면 그렇게 기특할 수가 없었다. 그중 한줄기의 꽃이 다음날 시들어서 고개가 꺾였길래 플로리스트 침구에서 사진을 보여주고 구조요청을 했다. 열탕처리(줄기를 뜨거운 물에 잠시 담갔다가 찬물에 두면 물 흡수를 잘해서 생명력이 2배나 연장된다.)를 해주고 나서 죽어가는 꽃을 팔팔하게 살려내니 너무 뿌듯했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나도 꽃을 싫어하는 게 아니었다. 어린 시절 나는 졸업식 이후로 꽃을 좋아하면 안 된다고 꽃을 외면해 왔다. 꽃을 좋아해도 된다고 내 마음에게 허락을 해주니 꽃을 보기만 해도 설레고 집 안이 이리도 화사해질 수가 없다. 그렇다. 나도 꽃이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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