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컨버세이션 #시나리오
에듀케이션의 개봉시기를 배급사와 함께 11월 즈음으로 얘기하고 있던 2020년 여름. 한정된 예산과 촉박한 일정 안에서 만들었던 영화를 정말 개봉까지 하고나면, 마무리를 짓겠구나, 위안이 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초조해지기도 했다.
[에듀케이션]까지 개봉시키고 나면, 이젠 내게 남은 큰 숙제라는 게 없네? 당장 뭔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 그도 그럴 것이 [에듀케이션]을 촬영했던 게 2018년 여름이었건만 개봉까지가 오게 된 여정이 거의 2년이었다. 지금 바로 촬영을 한다고 해도 2년 후면 2022년이라니. 2020년의 여름의 마음가짐에서 2022년은 아득히 멀었다.(그리고 컨버세이션은 2022년에 개봉을 못해, 현재 2023년 2월을 개봉시기로 잡고 있다. 아악)
그래도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영화를 계속 하고 있어’ 라고 말하고 다녔으면서, 영화를 만들지도 않고 있으면서 무슨 “영화인” 이람. 라는 자책.
당시에 써 둔 시나리오가 2편 정도 더 있었지만, 일정의 예산을 필요로 하는 규모였고 내는 제작지원마다 1차 탈락을 계속하고 있었기에 희망이 없어 보였다. 그 시나리오들을 일단 보류한다 치고 제작지원 없이 영화를 만들 수는 없을까? 한번 해볼까? 라는 시작.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 라는 치기 어리고 자격지심 같은 발로가 참 우습기도 하지만 솔직하게 그것이 [컨버세이션]의 시작이 맞다.
카페들을 전전하면서 일단 뭐라도 해야지, 하고 쓰기 시작하는데 처음부터 장편을 염두에 두고 쓴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단편영화 시나리오를 목표로 쓰기 시작했고 일정의 모티브라 할까? 뭔가 꽂힌 모먼트라고 할까? 그런 것은
대낮의 아파트에서 마흔살을 경계로 한 여성들이 수다를 떠는데
그것이 너무 '건전한 대화' 여서 오히려 이상하게 보이는 상황
그리고 좀 더 욕심을 부려보자면
그 세 여성이 어떤 계기로 인해 외국어로 즐겁게 수다떠는 상황이 있었으면 좋겠다 정도가 있었다
그래서 그 단편의 제목을 짓는다면 [건전대화] 정도면 어떨까? 하고 생각을 했다.
좀 오버하자면 현 시점에서 건전가요 를 듣는 느낌을 자아낼 수 있을수도???
어느 다큐멘터리에선가(어떤 다큐멘터리인지 생각이 잘 안남, 논픽션 다이어리 같기도 하고 버블패밀리 같기도 하고) 대표적인 건전가요 중 하나인 아! 대한민국 의 노래에 화창한 서울과 한강의 영상 푸티지를 사용해 편집한 소스가 있었는데- 보면서 아, 저런 긍정, 희망 100% 의 파이팅은 오히려 현 시점에서 매우 기이하게 보이는구나, 란 생각을 했었다.
일정의 모티브는 있으니 일단 써야한다. 맘이 급해져 캐릭터 이름도 없고, 상황 묘사도 없이 일단 대사를 쓰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제법 빠른 속도로 휘갈겼던 것 같다.
처음엔 말의 경쟁전. 나중에 화합하더라도 초반엔 인물들이 각자, 좀 허구맹랭한 얘기. 인생의 의미 같은 얘기로 두둥실 떠오르는 얘기부터 쓰여진다. 쓰여졌다고 표현할 수 밖에 없던 것이 카페 한 구석에서 나오는대로 쓰려지는대로 막 휘갈겨 썼던 기억이 있다. 그렇다고 파인딩 포레스터 처럼 신들린 듯 썼던 것은 아니고, 산만한 태도 그래도... 좀 쓰다가 디저트도 먹고, 좀 쓰다가 인터넷 쇼핑도 하고, 좀 쓰다가 카톡도 보고 그러면서...
특별히 어떤 관계망을 형성해야 할 필요도 없고, 캐릭터의 어떤 일면을 강조해야 할 필요도 없고, 서사적 어떤 국면에 위치해 있어 어떤 기능을 수행해야 할 필요도 없으니 굉장히 자유로웠다.
이런저런 내 생각과 사람들이 이런 생각 갖고 있지 않을까? 하는 개똥철학을 막 쓰다보니 꽤 길어진다. 초고는 이렇게 쓰더라도 뭐, 나중에 고치면 되니깐.
하지만 결과적으로 초고 때 쓰인 게 촬영때까지 크게 바뀐 건 없었다고 한다...
원래 그런거잖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