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다 촉각
칼을 쥐고 사과를 깎으려고 하다가 문득, 눈을 감고 이 사과를 깎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눈을 감았다. 깎여진 부분과 깎여지지 않은 부분을 왼쪽 손가락의 촉감으로 느끼며 칼을 중간에 한 번도 떼지 않고 사과를 다 깎은 후 눈을 떴다.
응?
놀랐다.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정상적으로 깎여있다. 우연인가? 하고 두 번째 다시 시도를 했다.
두 번째 역시 첫 번째와 별반 차이가 없다. 흠... 이게 원래 이렇게 쉬운 일이었나? 어째 눈 뜨고 깎은 것보다 더 매끈하게 깎여진 것 같은.... 저녁에 가족들한테 한 번 해보라고 할까?
세 번째 시도를 해 본다.
역시 깎인 상태가 일정하다.
그러니까 우연히 잘 깎인 건 아니라고 결론을 내리고. 내가 특별히 잘하는지는 저녁에 가족들이 해 보면 알겠지. 만약에 손가락의 촉각을 사용할 수 없었다면 이렇게 정상적으로 깎진 못했을 것이다. 깎인 부분과 깎이지 않은 부분의 경계선을 촉각으로 알 수 있으니 그 경계선의 모양을 따라 느낌으로 칼을 움직이는 것이다. 촉각이 시각을 대신해서 칼의 움직임을 가이드하는 것이다.
촉각이 있음에 감사한다. 비록 여러 감각 중에 시각을 관장하는 대뇌 부위가 가장 넓지만, 태아가 모체 내에서 가장 일찍 형성하는 감각은 바로 이 촉각이다. 태아가 8주쯤에 벌써 입과 코등 얼굴에 촉각을 감지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나! 생물로서 가장 원초적인 감각이 촉각이 아닐까. 갑자기 헬렌 켈러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혼자 어둠 속에 격리되어 있던 헬렌 켈러를 세상으로 나올 수 있게 이끈 것은 7살 때 그녀의 손바닥으로 떨어진 차가운 물의 느낌이었다. 헬렌 켈러는 그녀의 삶이 이 전환점을 경험한 7살에 시작된 것이라 믿었단다. 삼중고를 겪던 헬렌 켈러가 말하는 것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은 촉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그녀는, 손가락의 촉각을 이용해 상대방의 목의 떨림, 입술의 움직임과 공기의 마찰되는 느낌, 코의 울림등을 구별함으로써 말하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촉각이 없다면 압각, 냉각, 온각, 통각등을 통해 느끼는 모든 감각을 느낄 수 없다.
촉각의 손상이나 부재는 그 임팩트가 일상생활에서 시각과 청각처럼 압도적이지는 않다. 물론 통증이나 뜨거움 등을 느끼지 못하므로 생기는 여러 안전 또는 건강 관련 문제가 발생하기가 쉽지만 다른 4개의 감각의 정보를 이용해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위험을 방지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런 생존에 관련된 기본 문제만큼 중요한 또 다른 중요한 촉각의 역할이 있다.
갓 태어난 아기들의 손과 발을 만질 때 느끼는 감동은, 그 작고 귀여운 모양과 함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여리고 부드러운 피부의 느낌에 기인한다. 병원에서 첫 아이와 처음 마주한 순간, 아이의 손과 발을 만지면서 너무도 여려 만지기가 두려웠던 기억이 난다. 이 십 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그 여리고 부드러웠던 감촉이 기억난다.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의 느낌, 안아 줄 때의 포근한 느낌, 기운 내라고 등을 두드려 줄 때의 느낌, 힘든 손을 잡아 줄 때의 따스한 느낌, 얼린 손을 녹이려 입김을 불어줄 때의 느낌, 아픈 상처를 호호하고 불어줄 때의 느낌.
시원한 바람이, 내리는 빗물이, 하얀 눈이 내 피부에 닿는 느낌, 맨발로 잔디밭을 걷는 느낌, 바닷물에 발을 담그는 느낌 등등.
촉각이 없다면 이 모든 인간의 다양하고도 세밀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영역들 즉, 인간을 다른 생물들과 구별되게 하는 문화, 예술, 정서적인 고차원의 영역들이 심각하게 축소되는 것이다. 그 결과는 건조하고 기계적인 삶이다. 촉각은 인간의 삶을 풍성하게 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필수적인 감각이다. 그러나 5가지 감각 중에서 가장 당연시되고 다른 감각들에 비해 존재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 이 촉각이다.
시원한 가을바람을 온몸으로 느낄 때, 햇살의 따뜻함을 피부에 느낄 때 이 기분 좋은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것을 감사하자.
인간에게 이 다양한 촉각을 주신 창조주에게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