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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색시계 Nov 21. 2023

포근한 눈이 내리는 추운 겨울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2022)


 겨울이 오면 생각나는 드라마 중 하나. 『나의 해방일지』 하면 눈이 내리던 밤 화려한 클럽 앞에서 어딘지 애처롭게 옷깃을 여미는 구 씨의 모습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본방송은 작년 봄에 했었는데, 필자는 이상하게 이 드라마를 떠올리면 겨울이 생각난다. 이 드라마가 이야기하는 사랑이 의외로 고독을 품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무더운 여름은 지나가고 차디찬 겨울에서 끝을 맺었기 때문은 아닐까. 필자는 드라마를 보고 몇 개월 후 대본집으로 『나의 해방일지』를 다시 만났다. 드라마를 보고 난 후 남아있던 기억과는 달리, 이 작품은 두 사람의 마음이 같은 크기로 교환되는 사랑보다는, 일방적으로 주는 사랑을 그려내고 있었다. 그래서 드라마의 톤이 언제나 조금은 쓸쓸하다. 하지만 동시에, 인물들이 필사적으로 주려고 애쓰는 그 사랑 때문에 내내 조금은 따스하다.





1. 경기도민 - 사랑의 중심으로 뛰어들고 싶은



 삼 남매는 엄마가 돌아가시고서야 비로소 서울로 들어간다. 작은 궁금증도 든다. 세 남매는 서울로 ‘못’ 가는 것도 있었겠지만, ‘안’ 가는 마음도 혹시 있었을까? 아무튼, 삼 남매는 경기도에 머물며 서울이라는 중심으로 들어가기를 호시탐탐 노린다. 서울이라는 계란의 노른자를 감싸고 있는 흰자, 사람들이 이름조차 한 번에 기억하지 못하는 삼포에 머무르며 삼 남매는 농사도 돕고 무더운 날에는 마당에서 등물도 친다.

 삼 남매는 서울에 쉽사리 포함되지 못한 채 서울에 들어가고 싶어 몸부림친다. 이는 그들이 사랑의 외곽에서 중심으로 뛰어들고자 하는 모습과도 닮았다. 기정은 “난 할래. 난 할 거야. 아무나 사랑할 거야 (1권 106면)”라고 내내 외치지만, 정작 미정이 구 씨와 만나는 것을 눈치챘을 때에는 그녀에게 동네 남자랑 만나냐고 타박을 주는 모순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어쨌거나 그녀는 내내 닳고 닳은 세상에서 순진하게 상대의 의사도 상관없이 온 마음을 다 내어줄 상대를 열심히 찾아다녔다.

기정 : 남녀가 사귈 땐, 뭔가 가득, 충만하게 채워져야지, 줄 듯 말 듯, 찔끔찔끔...    
  그게 무슨... 밥도 그렇게 주면 살인나요. 그런데 왜 애정을 그렇게 얄밉게 줘야 돼요? (3권)

철부지처럼 보이기도 하는 기정은 “단계 없이 관심이 가는 순간 바로 사랑이 되어버린다”(2권 53면)며, 사랑을 애타게 외치다가 마침내 태훈을 찾아낸다.

 

 원하는 대로 사랑을 하지 못하는 인물들은 스스로를 사랑하기도 쉽지 않다. 무던해 보였던 창희에게서도, 초반부 사랑의 상처가 살짝 드러난다.

창희 : (...) 내가 영화를 혼자 봐서 헤어진 걸로 만들고, 걔가 새벽에 다른 남자랑 톡해서 헤어진 걸로 만들어야 돼.
절대로 내가 별 볼 일 없는 인간인 게 들통나서 헤어지는 게 아니라! (울컥!) (1권 170-171면)

삼 남매에게 사랑이란 무엇일까. 미정이 구 씨에게 대뜸 다가가서 “추앙해요”라고 말하기 직전, 그녀는 구 씨에게 “할 일 줘요?”라고 묻는다. 서로 바라만 봐도 심장이 뛰고 서로를 애틋하게 원해서 사랑하자는 것이 아니다. 더는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나지도 않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서, 공허하고 텅 빈 지 이미 오래된 나 자신을 가득 채우고 싶어서, 아이러니하게도 타인을 가득 채우려는 시도를 해보자는 것이다.


 추앙(미정), 받는 여자(기정), 장례지도사(창희)와 같이, 회차가 이어지며 무조건적인 사랑에 기꺼이 뛰어드는 삼 남매의 모습은 한편으로는 헌신적인 희생을 이야기하는가 싶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자신을 위한 생존 출구인 듯하다.

기정 : (...) 이렇게 가벼울 수가 없어요. 증오가 이렇게 무거운 거였구나... (...) (3권)

기정은 태훈의 모든 상황을 품는 사랑을 시작하며 이렇게 말했다. 삼 남매는 왜 서울로 가고 싶어 했는가. 밤늦게 귀가할 때, 시간을 초조하게 확인하지 않아도 되니까. 직장 동료에게 사는 곳을 몇 번이고 다시 말해주지 않아도 되니까. 여자친구와 싸우고서 “... 그놈은 서울 사냐?(창희)”(1권 34면)고 묻지 않아도 되니까. 구질구질하고 답답한 현실에서 그래도 조금 더 떳떳하고, 자유롭고 가득 차고 싶은, ‘나’가 누구인지 안정적으로 자리 잡아보고 싶은, 자기 자신을 위한 욕망으로 인해, 삼 남매는 서울을 끊임없이 바라보았고 사랑을 주기를 택했다.  




2. 개를 키우는 마음 – 대가 없이 주는 사랑



 이들의 사랑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마음과도 닮은 듯하다. 특히 미정과 구 씨 사이에서 계속해서 나오는 들개 이야기가 있다. 미정은 구 씨가 떠나고 나서, 키우던 개를 잃어버렸다며 (키우던 개도 없었으면서) 펑펑 운다. 사람은 동물을 키울 때 그 동물에게 무엇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건강하고 즐겁게 잘 살아가길 바라며 밥도 주고 집도 주고 사랑도 준다. 미정은 구 씨에게 자신을 추앙함으로써 자신을 가득 채워지게 해 달라 했지만, 사실 미정은 구 씨를 추앙함으로써 스스로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미정 : 다신 그런 짓 안 해. 잘돼서 날아갈 것 같으면 기쁘게 날려 보내 줄 거야. 바닥을 긴다고 해도 쪽팔려하지 않을 거야. 세상 사람들이 다 손가락질해도,
인간 대 인간으로, 응원만 할 거야. (2권 87면)
미정 : (...) 당신이 미워질 것 같으면 얼른 속으로 빌었어. 감기 한 번 걸리지 않기를, 숙취로 고생하는 날이 하루도 없기를 ...(4권 203면)
구 씨 : 야. 빨리 나 이름 지어줘. 이름 지어줘! 잡아먹지 못하게! (3권)

정말 절실히 필요한 순간에도 구 씨는 미정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지만, 미정은 구 씨를 끝까지 외면하지 않으려는 결심. 그녀는 그것으로 스스로를 채워가는 사람이었다. 구 씨의 이름도 몰랐고 끝내 이름을 붙여주지도 않았지만, 미정은 묵묵히 구 씨에게 사랑을 주며 세상을 버틴다. 구 씨가 취한 채 개들에게 소시지를 주려 하고 개들은 구 씨에게 적대적으로 짖어댈 때, 미정은 그런 구 씨를 지키기 위해 개들에게 나뭇가지를 마구 휘두른다. 미정이 지켜야 할 개는 오직 구 씨였을까?



 이렇게 미정이 구 씨를 위하는 모습이 있는 한편, 구 씨가 들개를 챙기는 모습도 있다. 구 씨는 뜨거운 햇빛을 그대로 맞고 있는 개들을 위해 어느 날 파라솔을 꽂아준다. 결국에 개들은 잡혀가지만 말이다. 구 씨에게 들개는 어떤 의미였을까. 필자는 들개를 챙기는 구 씨의 모습이 나중에 자신의 뒤통수를 치고 도망가는 형을 환대하기로 결심하는 구 씨의 모습 같았다. 덜 불쌍한듯한 사람이 더 불쌍한듯한 사람을, 미정이 구 씨를, 구 씨가 개를 품는 것 같기도 하다.


  개를 사랑하는 것 같은 희한한 서로의 ‘추앙’ 속에서, 미정의 개는 이따금 미정에게 최고의 사랑을 준다.

현아 : 미정인... 우는 데도 용기가 필요한 아이니까... (4권 108면)
구 씨 : 옆구리에 칼이 들어와도 꿈쩍 안 해. 근데.... 너 날 쫄게 해.
(...)
구 씨 : 니가 눈앞에 보이면 긴장해. (...) 짜증나는데, 자꾸 기다려(2권 173면)

회사 직원들은 미정의 외모가 지극히 평범하다며 떠들고, 그 말은 들은 미정은 아무런 항의도 하지 않는다. 그녀는 한편으로는 우는 데도 용기가 필요한 그런 사람이다. 하지만 그녀는 구 씨 앞에서만큼은 자신의 개를 지키기 위해 막대를 휘두르는 전사가 된다. 그리고 구 씨는 그녀가 얼마나 강한 면을 가진 사람인지 알아본다. 어쩌면 위의 말들은 구 씨가 미정에게 보내는 최고의 찬사가 아니었을까.



3. 염창희



 창희는 작품에서 필자가 가장 흥미롭게 보았던 캐릭터이다. 그와 함께 일하던 옆자리 정 팀장은 모두가 피하고 싶어 하는 상사다. 창희 역시 매일같이 정 팀장을 욕하며 그녀의 옆자리를 벗어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차 노래를 부르던 창희가 구 씨의 값비싼 차를 몰게 되면서, 얼떨결에 그는 정 팀장을 너그러이 품는 마음을 갖게 된다. 회식 자리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그녀의 옆자리에 앉으며, 누가 참치를 김에 싸 먹냐고 대놓고 타박을 주는 정 팀장에게도 웃으며 그럼 어떻게 먹어야 되냐고 의견을 묻는다. 어쩌다 보니 그는, 모두가 외면하는 자리를 결국 지켜내는 담당이었다.



 창희가 ATM기에 줄을 섰을 때, 그는 누구 하나 잘못 걸리면 때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그의 뒷사람은, 자신이 먼저 돈을 뽑아도 될지 창희에게 묻는다.

창희 : (E) 어떤 말도 도-저히 곱게 안 나갈 것 같은 거야. 결국, 미소를 띠며 물러서며, 앞서시라고 정중히 손을 내밀어 보이는.
남자가 고맙다고 하며 앞에 서고.  뒤로 물러선 창희가 왠지 더 불쌍해 보이는데 (2권 110면)
창희 : ‘양보하길 잘 했다...’ 마음이 풀리더라.
(...)
창희 : 5만 원도 없어서 못 뽑았는데, 버스까지 놓쳤으면 얼마나 그랬겠냐.
가뿐하게 양보해 준, 가뿐하게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양보해 준 나 때문에, 버스는 놓치지 않고 가셨을 테니까.... (2권 112면)

5만 원도 잔액 부족으로 출금하지 못한 앞사람의 사정을 알게 되는 순간, 창희는 그래도 버스는 놓치지 않게 해 드려 다행이라며 뿌듯해한다.

창희 : 내가 희한하게 그런 타이밍을 귀신같이 안다. 물러나야 되는 타이밍.
미친놈처럼 막 폭주하다가도 희한하게 제자리로 돌아와. 주변이 그렇게 흘러. (2권 112면)

창희는 사람들이 가장 피하고 외면하고 싶어 하는 자리를 지켜주는, 삼 남매 중 가장 희생적인 인물이다. 그는 할머니의 죽음, 현아 전 남자친구의 죽음, 어머니의 죽음까지도 홀로 지켜주며, 마지막에는 결국 장례지도사 수업을 원치 않게 듣는다. 그 과정에서 큰돈을 벌 수 있었던 편의점 고구마 기계 사업을 포기하기도 한다.

창희 : 솔직히 전.... 깃발 꽂고 싶은 데가 없어요. 돈, 여자, 명예... (...) 없는 욕망을 억지로 만들어서 굴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4권 42면)

창희는 주변 사람들에게 직설적인 말을 스스럼없이 던지기에 냉소적이거나 이성적으로 보이기도 하며, 차를 원하고 편의점을 원하는 등 지극히 평범한 정도의 속물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계속해서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그는 자꾸만 자신이 짊어지게 되는 희생을 점차 받아들이는 것 같다.


 비싼 차를 타며 혼자 있을 때 여유와 행복을 느꼈던 창희는, 결국에는 1원짜리라도 온전한 개인이 되지 못하고 1원짜리들을 품는 산이 된다.

창희 : (E) 내가 사람들 틈에서 오바하고 있었나 봐. 혼자 있으니까...되게 차분하고...다정해져. (3권 177면)
창희 : 형, 난 1원짜리가 아니고, 그냥. 저 산이었던 것 같애. 저 산으로 돌아갈 것 같애. (4권)

창희라는 인물이 매력적인 이유는 그가 처음부터 희생을 원하거나 그 길을 적극적으로 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이 못난 사람이라는 사실이 드러날까 두려워 이기적으로 굴었던 찌질한 남자, 구 씨네 차를 좋다고 으스대며 몰고 다니는 평범하디 평범한 창희가 때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사실은 모든 순간 자신의 선택으로, 일종의 희생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스스로를 채운다. 그는 삼 남매 중 가장 넓은 대상들에게 사랑을 준다. 옆에 있는 한 사람만이 아닌, 자신을 필요로 하고 자신이 메워줄 수 있는 많은 이들에게 기꺼이 자신을 내어준다.



 창희가 두환에게 하는 이야기에서는, 같이 마리화나를 했던 사람이 사형 위기에 처했을 때 양심 있는 척하던 놈은 도망가고, 외면하겠다던 놈은 교도소에 갇힌 채로 사형이 집행될 때 그에게 열심히 소리쳐준다고 한다. 창희는 이에 대해 친구도 아닌 사형수의 마지막 몇 분을 함께 지켜주기 위해 자신은 기꺼이 교도소에서 2년도 썩을 성싶다는 말을 한다. 감옥에 가지 않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사실은 가장 끝까지 감옥에 남으며, 그 사람은 바로 염창희다.


 일상적이고 평범한 사람이 왜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답게 만들고 있는가. 누군가 죽을 때 창희 아닌 다른 누구도 지켜주지 못하는 현실, 죽음을 지켜내느라 창희 자신의 것을 포기하는 과정이 바로 자신을 만들어가는 일이 된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창희에게 매우 가혹하고도 원망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사람을 살아가게 한다는 세상 속 온기의 자취 끝자락, 그것이 창희는 아니었을지. 여전히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다.



4. 현아



 삼포시의 삼 남매는 경기도에서 통근을 하는 것에 대해 매일같이 투덜대지만, 그래도 그들은 항상 엄마의 따뜻한 집밥을 먹고 서로 택시비를 나눠 내며 옹기종기 살아왔다. 그 가족의 울타리에도 끼지 못하는 인물은 바로 현아다. 그녀를 보호해주는 무언가는 드라마 그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녀는 가장 보호받지 못하며, 가장 질 나쁜 사랑에 내던져진 인물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는 오히려 삼 남매를 보듬어준다.


현아 : 난, 니가, 말로 사람을 홀리겠다는 의지가 안 보여서 좋아. 그래서, 니가 하는 말은, 한 마디 한 마디가, 다 귀해.
입꼬리 올라가게 미소 짓는 미정. 눈물 나게 감동적이고 좋다. (1권)
현아 : 용감하게 다 줘, 전사처럼 다 줘. 사랑으로 폭!발해 버려!
(...)
현아 : 절대, 나처럼 갈구하지마(1권)

그녀는 자신이 주는 것과 같은 총량의 사랑을 받기를 갈구하는가. 아니다. 사실 그녀는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 없는 순간에도 언제나 사랑을 주고 있다.

창희 : 학교 때 걔 좋다는 남자들이 한둘이었냐. 정말 빙신 같은 놈들까지 다 좋다고 했는데, 그런 놈들한테도 진짜 상냥했다. 까도 얼마나 상냥하게 깠는데. (2권163면)
현아 : 내가 원래 개 같은 기지배거든. 그래서 조금만 잘해줘도 죽을 때까지 몸 바쳐 충성해. 골수도 빼줘!
나한테 말 한마디만 잘해줬어도 니 수발도 들었을 거야. 근데 왜 그 조금을 안 줘? 왜? (3권)
현아 :  ...밧데리가 0이 될 때까지 날 소진시켜야 제대로 산 것 같애. 조금이라도 에너지가 남아 있으면 무거워.
...되는 일은 없고, 이룬 것도 없지만, 어쨌든 죽을힘은 다했다.... (그런 마인드) (4권 222면)

그녀는 전남자친구가 아프다고 하면 새벽에도 그에게 달려간다. 남들이 보기에는 위태롭고 평범하지 않은 사랑을 하는 인물이지만,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자신을 바쳐 사랑을 주는 인물이다. 그렇게 해야만 제대로 산 기분을 느낀다고 한다.



 

 이 작품이 왜 마냥 따뜻하지 않은가? ‘우리’가 함께 마음을 나누는 순간이 있더라도 사랑은 기본적으로 철저히 ‘나’ 혼자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꽤나 낭만적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절망적이다. 쌍방향적인 완전한 사랑은 기대조차 하지 못하는가? 사랑을 ‘주어야만’ 살아갈 힘이 나는 세상은 도대체 어떤 세상인가? 너무너무 힘들어도 전화 한 통 없는 상대가 감기에 걸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은 얼마나 뜨거우면서도 얼마나 외로운 것인지. 그래서 이 작품은 마지막까지도 따뜻하면서 쓸쓸하다.


톡이 울려서 보면, 기정의 톡. [태훈 씨, 외투 단추 어긋나게 채웠어요.]
한 손으로 힘들게 하나하나 푼다. 취했고, 지쳤고, 슬프지만 빙긋이 미소로 창밖을 보며.
그리고 다시 하나하나 채우는데, 또 어긋나게 채우는... (4권 236면)

필자가 참 좋아하는 대목이다. 기정이 태훈을 사랑한다고 해서, 그에게 ‘받는 여자’가 되어준다고 해서, 태훈의 어긋난 셔츠 단추까지도 직접 다시 채워줄 수는 없다. 그녀가 태훈에게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랑은, 단추를 어긋나게 채웠다고 말해주는 것, 딱 거기까지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준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인생을 통째로 손에 쥘 수는 없다. 단추를 올바르게 채우는 것은 이제 태훈의 몫이다. 결론적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수도 있다. 기정의 말을 듣고 단추를 올바르게 채우려 해도 결국 다시 어긋나게 채우는 태훈의 모습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사랑을 주는 것은 그 어떤 의미도 없는가, 그렇지 않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음에도, 결국 태훈은 단추를 또 어긋나게 채웠음에도, 태훈도 그것을 바라보는 시청자도 미소 짓게 되는 그 무언가가, 바로, ‘사랑을 주기’가 세상에 미치는 힘이다.


 사랑을 주는 일은 따뜻하지만 고독하고, 고독하지만 따뜻하다. 아주 모순덩어리다. 카드 회사에서 일하면서도 남의 카드빚을 떠안고 있는 미정처럼, 삶도 세상도 사랑도 모순적이다. 인물들은 그 모순적인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랑을 퍼준다. 인물들이 스스로를 위해 타인에게 주는 사랑은 이 세상에서의 좌절인가 혹은 위안인가? 그래서 필자는 이 드라마를 떠올리면, 포근한 눈이 내리는 추운 겨울이 생각난다. 고통을 극복할 수 없을지라도,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현아 : (...) 좋은 드라마란, 주인공이 뭔가를 이루려고 무지 애쓰는데... 안 되는 거래. 그거 보고 접었어. 인생하고 똑같은 걸 뭐 하러 써. 재미없게. (3권)
현아 : 똑같은 인간을 놓고도, 사랑하지 못할 만한 이유 천 가지를 대라면 대고, 사랑할 만한 이유 천 가지를 대라면 또 대. 염창희 몰라? 정아름 써클렌즈 낀 거까지도 욕하는 거. 나도 껴. 나를 사랑하는 이유 천 가지에 써클렌즈가 들어가고, 정아름 미워하는 이유 천 가지에도 써클렌즈가 들어가. (결론) 이유 같은 게 어딨냐. 그냥 미워하기로 작정하고, 좋아하기로 작정한 거지. (3권)


 한 줄 평 : 나를 위해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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