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은 새로운 시작
오늘의웹툰은 웹툰 에이전시이자, 데이터에 기반해 웹툰 제작업을 혁신하고 있는 스타트업이기도 합니다.
만화 제작이라는 전통적인 산업과 데이터 기반 방법론이라는 접근 방식 사이에서 오늘의웹툰 멤버들이 겪고 있는 다양한 고민과 어려움에 대해서, 그리고 그 고민을 어떻게 헤쳐나갔는지에 대해서 비정기적으로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첫번째 이야기는 데이터 기반 웹툰 공모전인 ⌈과제부활전⌋을 기획, 운영했던 안수현 마케터의 <오늘의웹툰 과제부활전 기획기> 입니다. 업무과정에서의 자연스러운 사고과정을 담기 위해 이하 본문은 평어로 작성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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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풀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과제부활전 기획을 시작한 것이 작년 11월 24일. 공모전 성격에 맞춰 12월 안으로 작품 접수를 마무리하기로 하니 늘 시간에 쫓겼다. 깊은 생각에서 나온 대응보단 날아오는 공에 반사적으로 대응하는 것처럼 일을 마무리해갔다.
그 과정에서 마케터로써 경험하고 생각한 바에 대해 회고해보려고 한다.
홍보 채널을 결정할 때 학원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네트워크 효과가 있고 접근성이 좋은 채널은 학교뿐이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학교에서 타깃팅 할 수 없는 이들을 놓치는 일이기도 했다.
과제부활전은 대학교/고등학교 졸업 후 2년 이내 학생까지도 참여가 가능했다. 웹툰 작가를 희망하는 이들에게 더 많은 참여의 기회를 주고 싶어 대상자를 확대했다. 학원은 이 조건에 해당하는 이들이 가장 많이 모여있는 장소였다.
공모전 기획 목적이었던 ‘새로운 Pool의 발굴’ 목표를 완전히 망각한 결정이었다.
공모전 진행 중엔 홍보만 하고 있을 순 없었다. 매일 내가 결정해야 하는 새로운 케이스들이 발생했다. 내가 가진 리소스를 이젠 홍보가 아닌 다른 업무에 쏟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엔 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회고할 땐 다른 생각이 든다.
눈앞에 닥친 상황을 해결하는 게 급하다고 판단하면 차분함을 잃는다. 머릿속에서 떠오른 해답이 가장 옳은 답이라고 생각해버리기 쉽다. 그때 내가 학원 채널 홍보에 더 집중하고, 다른 일을 다른 사람에게 위임했더라면 지금보다 더 좋은 결과물을 마주했을 수 있다.
그래서 난 미래의 내가 다시 비슷한 상황에 맞닥뜨리면 이런 생각을 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모든 일을 혼자 처리하려 노력하지 말자
내가 가진 리소스의 한계를 인정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라
찾아낸 해결책이 정말 최선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일을 더 쉽게 풀리도록 만들어줄 다른 방법은 없는지 곰곰이 생각해봐라
“우린 잡부잖아.”
대학에서 같이 미디어를 전공한 동기들과 전공에 대해 회고하면 웃으면서 하는 이야기다. 제안서도 쓰고 디자인도 하고 사람들 설득도 하고… 음… 지금 나랑 별로 다른 게 없네?
내가 생각하는 마케터란 직업은 남들은 뾰족하게 한 부분만을 파내며 자신만의 공간을 만드는 동안, 어느 정도 깊이가 생겼으면 자리를 옮겨 다니며 여러 부분을 파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과제부활전에 필요한 모든 이미지 작업과 대내외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운영 및 CS까지 담당했던 것처럼 말이다.
회사에 들어와선 한동안 나만 뾰족한 무언가를 만들지 못한다는 생각에 슬펐다. 학교에서 했던 것처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뭐든지 즐겁게 했던 제너럴리스트가 되는 게 즐겁지 않았다. ‘나는 스페셜리스트가 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 요즘은 이런 답을 내린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무엇이든 한다’도 나만의 뾰족한 공간이지 않냐고
‘작가 유입’이라는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했던 일들을 기록하는 <과제부활전 기획기> 같은 기록이 쌓여가면서 나만의 깊은 공간을 만들었으리라 상상해본다.
처음 회사에 들어왔을 땐 업무보단 업무 마감을 지키는 게 더 어려웠다. ‘조금만 더 하면 좋아질 것 같은데’라는 생각에 기획서 제출을 미루고 또 미뤘다. 그때 상사님께 이런 말을 들었다.
진짜 프로는 퀄리티가 아닌 시간을 맞추는 사람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일에 있어서 스스로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정해진 마감은 무조건 지키자! 라고 다짐했다. 과제부활전을 준비하면서 공모전 기간 내의 일정은 어떻게든 지켜냈어야 했다. 하지만 접수 마감일 이후의 일정 관리에는 해이해졌다.
상패 디자인이 밀리면서 제작 일정이 설 연휴와 겹쳤다. 본래 계획은 상패를 발송하고 나니 수상 작가들과 인터뷰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상패를 발송하고나니 벌써 2월이었다. 너무 늦은 감이 있어서 인터뷰를 포기해야 했다. 특정 분야의 스페셜리스트가 되려 욕심부리기 전에 일을 대하는 기본적인 소임을 갖춘 사람이 돼야지.
과제부활전을 회고하면서 ‘마케터’란 직업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처음 가졌다. 나는 남들보다 사소한 것에도 크게 기뻐하고 슬퍼했다. 그런 내 모습을 인정받지 못하는 일이 잦았다. 그런 경험들 사이에서 가끔 사람들이 내 생각에 공감해주고 동의해주는 순간을 좋아했다. 그래서 난 내 의견으로 남들을 설득하는 직업을 업으로 삼은 것 같다.
내 기획을 실행시키기 위해 나는 오늘도 누군가를 설득하고 또 설득한다. 이득을 설명해도 상대방이 납득할 수 없으면 그 마케팅은 실패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것은 이익이 되는 일에도 사람들은 냉담한데, 내가 어릴 적 받았던 사람들의 거절은 너무 당연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일을 하며 거절에 익숙해지고 업무적 성장은 물론 성숙한 어른이 돼보려 한다.
과제부활전은 특정 주제를 위해 새로운 원고를 제작할 필요 없이 있는 원고를 그대로 투고하면 되는 접근성이 좋은 공모전이다. 웹툰 PD의 감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데이터로 작품을 평가하며 작품의 장기 연재 가능성과는 상관없이 수상할 수 있는 공모전이다. 이런 점에서 과제부활전은 기존 웹툰 업계의 행보와는 전혀 다른 시도를 해본 공모전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우리는 웹툰 생태계에 좋은 영향을 미치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계속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