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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리 Feb 21. 2023

소갈비찜과 기다림의 미학

우리 아빠는 내가 만드는 갈비찜을 참 좋아한다. 조금 더 보태서 3일에 한 번꼴로 저번 생일에 먹은 갈비찜을 먹고 싶다고 1년째 말하는 중이다. 진심 귀에서 피날 것 같다. 그렇게 어려운 요리는 아니지만 시간과 정성이 절대적으로 들어가야 하는 음식이라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귀찮은 음식이다. 밑 준비부터 최소 5시간은 생각해주어야 한다.


사실 갈비찜만 만든다면 그렇게 번거롭지 않을지도 모른다. 갈비찜을 빛나게 해 줄 잡채와 무쌈말이까지 동시다발적으로 하려니 자칭, 타칭 장금이도 정신이 혼미하다.


특히 이날은 요리에 집중하지 못했다. 요리뿐만 아니라 다른 일도 함께하느라 너무 정신이 없어서 새 밥도 못했고, 생일날의 시그니처인 미역국도 끓이지 못했다. 그래도 맛있게 먹어준 아빠에게 고맙다.


재료

- 찜용 소갈비

- 사과

- 배

- 양파

- 밤

- 무

- 당근

- 마늘


기타 조미료

- 간장

- 맛술

- 설탕

- 참기름

- 후추


소갈비 핏물 빼기

굉장히 중요하다. 내가 마트에서 사 오는 아무 갈비로도 맛을 잘 내는 이유 중 하나이다. 핏물만 잘 빼주더라도 고기 잡내가 나지 않는 깔끔한 소갈비찜이 완성된다. 먼저 뼛가루 같은 불순물을 털어내는 정도로 흐르는 물에 씻는다. 씻은 고기를 3시간 정도 찬물에 담가두고, 30분~1시간마다 물을 새로 갈아주어야 한다. 뼈가 잘린 단면으로 세워서 담가두면 피가 더 잘 빠진다고 하는데 사실 잘 모르겠다. 냉동보다는 냉장 고기를 사서 하는 것이 나름의 노하우라면 노하우.


야채 손질하기

핏물을 빼면서 작업하면 좋다. 밤은 깐 밤을 사면 된다. 손목과 손가락 감각을 잃고 싶지 않다면, 생밤을 깔 생각은 하지도 않은 편이 좋다. 다른 야채들은 밤과 비슷한 크기로 손질해준다. 당근은 도톰한 반달형으로 잘라주고, 무도 비슷한 크기로 토막 내준다. 날카롭게 잘린 모서리는 돌려 깎기를 해주어 익는 동안 부스러지지 않고, 예쁜 조약돌이 되게 해주는 것이 포인트.


과일야채즙 내기

사과, 배, 양파... 한식 고기 양념에 빠질 수 없는 조합이다. 각 1개씩을 껍질을 벗기고, 투박한 조각으로 잘라서 블렌더에 물 1컵과 함께 갈아준다. 면포로 즙만 짜주면 갈비찜 양념 베이스 완성이다. 찌꺼기는 사용하지 않는다. 면포에 들러붙은 찌꺼기를 설거지해주는 게 참 귀찮다. 그래서인지 인터넷 레시피를 보면 '갈아 만든 배'를 추천하더라.


소갈비 애벌 삶기

고기가 잠길 정도로 맹물을 넣고 겉면만 익도록 후루룩 끓여준다. 통후추를 조금 넣어주면 기분상 잡내가 없어진다. 애벌로 삶은 고기는 찬물에 벅벅 닦아주어야 하는데, 이때 뼈 사이 찌꺼기를 잘 씻어내주고, 고기에 붙은 지방은 가위로 손질해주어야 한다.


소갈비 양념

앞서 짜둔 과일야채즙에 나머지 양념(간장, 맛술, 설탕, 참기름, 마늘, 후추)을 미리 섞어준다. 섞은 양념을 고기 냄비에 넣어주고, 처음에는 센 불로 끓여주다가 끓기 시작하면 중약불로 낮추어 뭉근하게 조려준다. 여기서부터 무한한 기다림이다. 양념이 절반 정도로 줄어들 때까지 졸여줘야 하는데, 1시간 정도 걸린다고 생각해주면 좋다. 양념이 당도가 높아 금방 탈 수 있어 냄비 바닥에 눌어붙지 않도록 잘 저어주고, 양념이 골고루 배도록 고기도 잘 뒤집어 줘야 한다.


이건 내가 맨날 까먹어서 기억하려고 적어두는 양념 비율. 

- 간장 8큰술

- 맛술 6큰술

- 설탕 2큰술 (과일 당도에 따라 가감)

- 참기름 2큰술

- 마늘 다진 거 1큰술

- 후추 톡톡톡톡톡


시간이 촉박하다고 핏물을 덜 빼면 고기 누린내가 난다. 당근 모서리 다듬는 것 뭐 중요한가 싶지만 국물이 탁해지지 않고, 먹음직한 모양새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과정이다. 양념을 맛있게 배어들게 하기 위해서는 중약불에 뭉근하게 졸여줘야 한다. 시간이 급하다고 덜 졸여주면 맛이 안 나고, 센 불로 두면 양념이 탄다.


이 중 뭐 하나라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면 완성된 갈비찜을 먹으면서 '30분 더 걸리더라도 조금 더 졸일 걸'이라며 결국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갈비찜을 할 때 기다림의 미학을 배운다는 게 좀 엉뚱해 보여도 사실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당장 내 마음이 조급하다고 서두르면 일을 그르치게 될 거라고. 지금은 여유를 가지고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차분히 정리하자고. 만족스러운 성과를 위해선 적절한 시간과 공을 들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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